| 13명 아이들 저금통마다 새해 희망 가득 채워주죠 | news | 2008-0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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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예배당에 들어서자 집안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은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배꼽인사를 했다. 대학입시 때문에 서울에 있는 둘째 다솜이(19)를 빼고, 맏딸 빛나(21)부터 다드림(16)·모아(16)·들(13)·바른(11)·이든(9)·라온(8)·뜨레(7)·소다미(5)·나은(4)·가온(2), 그리고 갓난아기 온새미까지 모두 12명의 아이가 반겨주었다.
엄마 엄계숙(44)씨는 지난 20여 년간 12명의 아이를 자연분만으로 비교적 순산했다. 하지만 이번 출산만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과다출혈 위험이 있어 고심 끝에 처음으로 제왕절개 수술을 선택했다.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하나님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으니까 온새미를 보내주신 거라 믿어요. 아이들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온새미는 말할 것도 없고요.”
엄씨가 환한 웃음으로 온새미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아기도 생글생글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이 온새미를 너무 예뻐해요. ‘고양이처럼 귀여워’라고 말해요. 어찌나 고맙던지.”
올 설은 다둥이네 집에 더욱 각별하다. 새 생명의 탄생에 즐거움이 넘친다. 하지만 그들의 설날 준비는 여느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로 만두 빚기로 시작한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 기독교 집안이라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지는 않지만, 만두만큼은 꼭 빚는다. 가족이 함께 만드는 재미가 남다른 까닭이다. 고사리 손까지 달려들어 만두를 빚으면 30분도 안 걸려 뚝딱 해치운다.
“설날에는 아이들 모두 한복을 입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댕기머리까지 곱게 땋고요. 그렇게 차려 입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죠.”
매년 설날 아침, 아이들은 차례대로 줄지어 서서 김 목사 부부에게 세배를 한다. 거의 ‘장관’이다. 부부는 두툼한 세뱃돈 대신 진심 어린 덕담을 들려준다. 은근히 용돈을 바라는 아이들이 볼멘소리를 할 만도 하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불만이 없었다고 한다. 이어서 치러지는 가족 윷놀이 대회는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메인 이벤트. 열다섯 식구가 삼삼오오 팀을 꾸려 윷놀이를 즐기다 보면 예배당 밖으로 시끌벅적 정겨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식구가 많은 만큼 평소 집안은 북적댄다. 특히 아이들이 지켜야 할 몇 가지 생활규칙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큰 아이들이 먼저 세수를 하고, 자고 있는 동생들을 깨운다. 또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치운다. 집에 컴퓨터가 한 대 있기 때문에 ‘한 사람당 하루 20분 사용’을 지켜야 한다. 간혹 동생들이 형이나 누나에게 버릇없이 굴거나, 주먹다짐을 하면 엄마가 회초리를 든다. 엄씨의 엄격한 교육 덕분에 형제 간에 ‘하극상’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13명의 자녀를 매끼 먹이고, 입히는 것도 쉽지 않은 일. 식사는 최대한 간단하게 해결한다. 달걀 프라이나 찌개 한 가지, 그리고 밑반찬으로 차린 단출한 상차림이지만 아이들이 반찬 투정을 하는 법은 없다. 청소도 다른 집에 비해 ‘양’이 몇 배 많을 뿐 힘들진 않단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빨래다. 하루에 나오는 빨랫감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많게는 하루에 네 번씩 빨래를 한다. 그래도 엄씨는 “아이들이 많아 도와주는 사람이 넘쳐난다”며 즐거워했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건 어떻게 아이를 열셋이나 낳게 됐냐는 것. 엄씨는 “아이를 많이 낳겠다는 욕심은 없었는데, 셋째 이후부터는 임신하는 것에 자신감이 붙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입덧이 심할 때는 피를 토할 정도로 고생을 하지만 아이를 낳고 5~6개월이 지나면 또 아이 소식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임신 소식이 없으면 오히려 어디 몸이 아픈 건 아닌지 걱정까지 된다고 하니 역시 다둥이 엄마답다.
다둥이네 집에도 위기(?)가 있었다. 김 목사는 10여 년 전 예비군 훈련장에서의 일을 최대의 고비로 생각한다. “어느 날인가 훈련소에서 정관수술을 받으려 했어요. 이유도 없이 그냥 ‘묶어야겠다’ 생각을 했죠. 그런데 하루 종일 보건소 차량이 안 오더라고요.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나 싶어요(웃음). 앞으로도 아이를 주시면 감사히 받으려 해요.”
떠날 채비를 하자 아이들이 또다시 우르르 몰려 나와 예의 배꼽인사를 했다. 13명의 아이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동네 한 바퀴 돌며 새해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떠올리니 미소가 절로 번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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