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드 라디오 스타'가 왔다?…라디오 방송 '인터블루' 화제 | news | 2008-03-04 |
"노래가 있어 인생이 즐겁습니다. 노래가 있는 마을. 안녕하세요. 노래가 있는 마을의 안혜옥입니다"
헤드폰을 쓴 채 볼륨을 조절하는 두 할머니의 손끝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콘솔(볼륨 조절기)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능숙한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전문 라디오 진행자에 비하면 아직은 어색한 말투지만 그 속에는 방송에 대한 짙은 애정이 묻어 있다.
▲ DJ부터 기기 작동까지…'모두 노인들이 합니다'
지난 2월 28일 서울 관악구의 노인종합사회복지관. 한 평 남짓의 스튜디오에서 라디오방송 시험제작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국내최초 프로듀서와 엔지니어, 진행까지 노인들이 직접 담당하는 인터넷 라디오방송국 '인터블루'의 개국이 불과 2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낯선 방송 기기들을 접한지도 어느덧 1년. 젊은 사람도 익히기 어렵다는 방송작업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라디오방송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사랑 때문이었다. 예산도 부족했지만 인근 노인종합복지관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스튜디오와 장비를 빌려 가까스로 방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돌아서면 까먹고 또 배우고. 수도없이 반복했지. 그래서 이렇게 여기까지 배워서 만족스럽고 행복해. " (한혜정 할머니(78))
노인방송이라 고리타분한 방송을 생각했다면 큰 착각. 삶의 경험이 녹아든 할머니들의 구수한 입담은 청취자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이 날의 방송주제는 숭례문 방화사건. DJ를 맡은 할머니의 입에서는 숭례문에 대한 수십년 전 생생한 옛이야기들이 거침없이 흘러나온다.
"숭례문에서 새벽에 장사하고 했던 기억들. 남들도 그렇겠지만 참 숭례문이 나에게는 남 달라요. 내 생활의 터전이었으니까..."(한혜정 할머니)
숭례문을 서울구경하다 처음 봤을때의 감회, 남대문시장에서 35년간 장사하면서 겪었던 할머니의 숭례문에 대한 추억이 흘러나오자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숭례문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하다.
▲ '실버'가 아니라 인터'블루'입니다
인터블루 방송단의 창립 멤버는 15명. 하지만 도중 폐암으로 건강이 악화되거나 며느리가 아이를 출산해 아이를 돌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빠지는 경우 등 1년 사이 6명이 중도 하차했다. 남은 9명 모두도 방송이라고는 경험해 본 적도 없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라디오방송을 하며 이들의 삶도 많이 달라졌다.
30년 넘게 주부로서 가정을 돌봤던 안혜옥 할머니(68)는 "이제야 자기계발을 통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찾았다"고 기뻐했다. 주변 친구들이나 손자 손녀들의 반응은 벌써부터 뜨겁다.
당장 달라진 것은 친구들의 대접. 한혜정 할머니는 "주변에서 노래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방송도 무척 잘 한다고 부러워했다"며 "방송을 하면서부터 머리회전이 잘되고, 삶의 태도도 적극적으로 바뀌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인터 블루'라는 방송국 이름을 지은 이유도 이채롭다.
나이든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인을 연상시키는 '실버'라는 단어 대신에 젊은 이미지의 '블루'를 일부러 택한 것.
이렇게 만들어진 방송물은 인터넷 라디오 '인터블루'를 통해 오는 17일 오전 6시부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 시간 동안 방송되고, 서울 한 지역의 소규모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도 같은 시간에 본 방송을 청취할 수 있다.
안 할머니는 "고령화사회가 되니까 노인들의 목소리를 내야하는데 노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목소리 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라며 개국 소감을 밝혔다.
'인생은 지금부터'라며 젊은이들 못지 않은 이들에게서 이미 시작된 고령화시대를 풀어나갈 해법이 엿볼 수 있었다.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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