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아요” | news | 2008-03-10 |
 |
| ◇ <데일리안>은 6일 전도사로 활동중인 청각장애인 양흥석씨(좌)와 전업주부 김현경씨(우)를 만나 청각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데일리안 박항구 |
조용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른 세상이 나타났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김현경씨(32)와 양흥석씨(34), 그리고 통신중계센터장인 반희진씨는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소리없는 말이 공중에서 오가며 함박 웃음이 터지는가 하면 이내 진지한 얼굴로 손을 바삐 움직인다.
침묵 속에서 흐르는 말은 들리지 않지만 경쾌하고 평범했다. 세상 고민을 다 떠안은 듯 무겁고 심각할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고 편견이었다.
7일 인터뷰 대상자인 김현경씨와 양흥석씨를 만나러 가는 내내 ‘소리가 없는 세상이란 어떨까. 회색빛 모노톤의 세계가 아닐까’란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밝고 단단했으며 길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데일리안>이 한국정보문화진흥원(원장 손연기)과 공동으로 진행한 ‘말 못하는 장애인, 대통령에 말하다’ 이벤트의 연장선상에서 만난 김씨와 양씨는 수화를 하기 전까지는 청각언어장애인임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평범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아요. 사랑도 하고 직장도 다니고 좋은 사람 만나 아들 딸 낳고 알콩달콩 살아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를 무시하거나 동정하는 눈빛으로 보거든요. 들리지 않는다고 신체의 다른 부분들이 뒤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예요.”
김씨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 조금 서운함과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장애인이니까 넌 안돼 라거나 니가 뭘 할 수 있겠냐는 식의 태도로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는 그녀는 “폐쇄적이고 음침한 성격이라고 생각하는 건 비장애인의 시선일 뿐”이라고 말했다.
 |
| ◇ 청각장애인 양흥석씨 ⓒ 데일리안 박항구 |
그는 “예전에 주차문제로 동사무소를 찾았다가 담당자가 듣는 둥 마는 둥 하길래 관련 법을 찾아 보여주고서야 주차 스티커를 발부받은 적이 있다”며 “장애인들이 누리는 권리 등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 무용지물이 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고 씁쓸해했다.
백인백색(百人百色). 일란성 쌍둥이나 납량영화에 나오는 도플갱어가 아니라면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취향, 생각을 가진 사람은 없다. 일란성 쌍둥이라 할지라도 생김새만 같을 뿐 내면의 모양새는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다름’에 관대하지 않다. ‘다름’이 ‘틀림’이 되고 ‘차별’이 되는 현실에서 눈에 보이는 ‘다름’에 대해 획일적인 시선으로 별나게 대하는 게 대부분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는 단지 몸이 조금 불편한 정도에 있지 않다. 다른 세상에 속하는 사람이거나 불쌍하고 동정해야 하는 사람으로 보는 선입견에 장애와 비장애의 벽이 존재한다.
두 사람은 “장애인이 폐쇄적이고 음침하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들은 “의사소통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청각언어장애인들이 다소 성격이 급한 면이 있을런지는 몰라도 대부분은 자신에게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해 왕성한 호기심과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기자가 만난 그들은 굉장히 활발했다. 김씨는 여성스러운 수줍음과 밝은 미소로 시종일관 재잘대는 손짓을 보여줬다. 아직은 소년같은 인상이 남아있는 양씨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이에 가로놓인 벽은 무엇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들은 “상대에 대해 서로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 ◇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아요. 그런데 비장애인들은 그렇게 보지 않죠” 청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설명하는 양흥석씨(좌)와 김현경씨(우). ⓒ 데일리안 박항구 |
“비장애인들은 청각언어장애인과 대화를 나눌 때 ‘필담으로 하면 되지 수화가 꼭 필요하나’고 물어봅니다. 음과 뜻이 일치하는 우리말의 특성 때문일까요, 청각언어장애인들은 문장력과 표현력에 있어 일반인에 못 미치는 면이 있습니다. 필담은 기본적으로 글을 다루는 능력을 기초로 하는데 문자에 익숙치않은 우리들에게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필담은 청각언어장애인에게 제2 외국어와 같다”고 정의한 양씨는 “나 역시 꾸준히 노력해왔지만 필담은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필담이 쉽지 않은 것은 김씨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청각언어장애인들은 수화를 국어처럼 쓴다”면서 “필담은 수화처럼 내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는데다 길게 얘기를 나누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모두 비장애인인 부모를 둔 청각언어장애인으로 김씨는 2급 청각언어장애인이고 양씨는 1급 청각언어장애를 지녔다. 때문에 독순(입술읽기)나 독화(말읽기), 필담에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그들도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표현’이 자유롭지 않은 데서 오는 오해와 갈등을 겪었다고 말했다. 특히 가족 간에도 충돌하는 면이 있었다는 것.
 |
| ◇ 청각장애인 김현경씨. ⓒ 데일리안 박항구 |
양씨는 “일상생활에서 청각언어장애인들이 불편한 점이 있기 때문에 비장애인 가족에게 의존하는 경우도 많다”며 “의사소통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화가 단절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오해가 더욱 깊어지는 사례도 종종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청각언어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가족’의 이름으로 살다 보면 구성원 간의 인내와 배려가 더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러나 바쁜 일상은 그런 세세한 부분들을 충족시키기 어렵게 만들고 장애에 대한 따가운 시선은 장애인 가족을 방임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두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속도는 더디지만 차근차근 의견을 조율해 나가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꽤 담담한 어조였지만 서글픔 같은 것도 묻어났다. 자매나 형제끼리 TV를 보거나 연예인 사진을 보며 나누는 일상적 대화도 어려웠을 것을 생각하니 그들의 복잡한 감정이 가슴에 울렸다.
하지만 두 사람은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부모가 되면서부터”라고 말했다.
김씨는 “말 배울 기회가 적기 때문에 말수가 적어지거나 말이 늦는 경우도 있다”며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놓을 수 없고 말을 일부러 자주 시켜 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장애인 친구들도 본다”고 전했다.
비장애인 자녀에 대한 장애인 부모의 걱정은 세 아이의 아버지인 양씨도 느끼는 것이다. 그는 “울음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아이를 어떻게 잘 돌볼 수 있냐며 부모에게 맡기라는 권유도 받았었다”면서 “수화에 익숙해져 말이 더딜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비장애인과 더 많이 만나게 함으로써 그런 부분은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그러면서 아이를 낳고 보니 내 아이에게 더 잘해주고 보듬어주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고 기억을 되새겼다.
청각언어장애인 부모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부모로서 내 아이에게 많은 것을 해 줄 수 없다는 박탈감과 자괴감이다. 미술전시회나 음악회, 놀이동산 등에 가려 해도 예기치 않은 일에 대처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해당 장소에 찾아가는 길도 험난하기만 하다.
양씨는 “모르는 길이라 사람들에게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고 글로 써서 물으면 대부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피한다”고 씁쓸해했다. 김씨도 “피하기만 하면 그나마 낫다. 어떤 여성들은 비명을 지르며 못 볼 것을 본 것 인양 도망가더라”고 말했다.
소리가 없는 세계에서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담아 왔던 그들에게 통신중계서비스는 신세계로 가는 계단같은 존재였다. 양씨는 “통신중계서비스가 없을 때는 장애의 한계를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게 참 무기력한 느낌을 줬다”면서 “그러나 하나의 인격체로 자립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대화가 부족한 탓에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특별한 것을 해주려 해도 의사소통이라는 벽에 부딪히곤 했다”며 “큰 건 아니지만 피자파티나 자장면파티를 열어 아이들을 깜짝 놀래주는 이벤트도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웃어 보였다.
 |
| ◇ 통신중계서비스를 이용해 비장애인과 통화를 하고 있는 양흥석씨. ⓒ 데일리안 박항구 |
김씨에게 통신중계서비스는 더 애틋하다. 직장일로 바쁜 친정어머니에게 마음을 전하는 매개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얼마 전 만삭임에도 출혈이 보여 친정에 찾아뵙지 못했는데 통신중계서비스를 이용해 어머니와 통화할 수 있었다”며 “‘우리딸 건강하고 사랑해’라고 문장을 써지는 걸 보면서 내내 울었다.
한번도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진 못했지만 마치 자상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모니터를 어루만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살아가는 방식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장애인들이 열심히 성실히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양) “청각언어장애인에게 섣불리 생각을 갖지 말고 있는 그대로 봐달라”(김) 그들의 요구는 나직했지만 힘있었다.
처음 그들을 만날 때 청각언어장애인 속에서 ‘장애’의 소외감을 어렴풋이 느꼈었다. 수화를 하는 그들 사이에서 기자는 답답하고 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그런 감정이 비장애인이 주류인 세상에서 장애인이 받는 인상이리라 생각하니 많이 미안해졌다. 카루베 준코의 만화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를 보면서 막연히 수화가 아름답다고 느꼈던 청소년기, 그것이 얼마나 어린 생각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 속에 뒤틀림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어쩌면 장애인들의 그것은 종류가 다른 장애에 지나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장애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장애인을 바라보고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특혜가 아니라고 여기는 사회는 비장애인의 숙제일 것이다.
데일리안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