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우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아름다운 동행' | news | 2008-04-21 |
"재호야, 그냥 휠체어로 갈래?" "목발로도 올라갈만 해요. 괜찮아요"
보기에도 험준해 보이는 금강산 구룡폭포 가는 길, 재호(22)는 이날따라 웬일인지 고집을 부린다.목발만으로 산길을 오르겠다는 것. 자원봉사자들의 걱정에도 재호는 씩씩하게 걸음을 계속했다.
비장애인도 숨이 차오르는 산행길인 터라 금세 재호의 얼굴에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힘든 기색도 역력하다. 그런데도 묵묵히 목발을 고집한다.
간신히 산 중턱 쉼터에 도착한 재호, 그제야 숨을 돌리고 웃으며 말한다.
"자주 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기회가 될 때 직접 걸어봐야죠. 걸을 만 해요"
▲ 장애인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아름다운 동행'
첫 금강산 길. 한국교회희망연대에서 장애인들을 상대로 1박2일 동안의 나들이를 준비했다는 소식에 재호는 처음에는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다. 다리가 불편한 터라 집 밖을 나서기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들이 첫날부터 한국의 3대 폭포라는 금강산 구룡폭포를 오르게 된 재호. 막상 올라보니 상쾌하게 불어오는 산바람에 마냥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같이 도와주시는 분들께 너무 감사해요. 좋은 경험인 것 같아요"(재호)
재호와 같은 지체장애인 110여 명은 지난 14일부터 이틀 동안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금강산 나들이 길에 올랐다.
첫날 구룡폭포 산행길은 지체장애인들에게는 힘든 여정이었지만 동시에 즐거운 동행이기도 했다.
이들을 옆에서 지켜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짊어지고 산길을 오르던 자원봉사자 이시정(65) 씨. 땀이 범벅이 돼 언뜻 봐도 무척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다. 그래도 뭐가 좋은지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못 걸으시는 분들을 도와 가보지 못한 곳에 데려다 주는 일, 생각보다 보람 있는데요. 아주 좋아요"(이시정 씨)
장애인들의 땀 흘리는 모습은 북한 현지 관광 안내원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 안내원은 "무척 감동됩니다"라고 운을 떼고 나서 "한쪽 팔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그 팔이 되어주고 하는 그런 모습이 우리 민족의 전통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바다,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어요"
교단을 초월해 봉사활동을 벌이는 한국교회 희망연대가 지난 14일부터 이틀간 마련한 이번 행사에는 지체장애인과 자원봉사자 등 2백 50여 명이 참여했다.
둘째 날, 북한 해금강(海金剛). 빼어난 절경으로 바다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이곳에도 장애우들의 발길이 닿았다.
모처럼 만의 바다 향기에 흠뻑 취한 장애우들의 얼굴에는 행복함이 묻어났다.
7년 전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은 정상례(52)씨. 앞은 비록 보이지 않지만, 자원봉사자 예은씨를 통해 전해듣는 해금강의 절경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7-8년 전에 교통사고로 중도 실명했어요. 바다는 한 3년 만에 나왔습니다. 바다가 느껴져요"
"보이지 않는데 느껴지신다고요?"
"느낄 수 있죠. 바닷소리, 철썩거리는 그런 것들, 소리를 느끼고 바다 냄새도 느껴집니다. 감개무량해요"(정상례 씨)
희망연대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오는 21일에도 장애인 100여 명과 함께 다시 금강산을 찾을 예정이다.
서울 나들목교회 박원영 목사는 "장애인들을 데리고 쉽게 오기 어려운 금강산에 올 수 있었다는데 보람을 느낀다"며 "2차로 21일에도 다시 장애인들과 함께 금강산을 찾아 감동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1박 2일 동안의 짧은 여정.
그러나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자연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지체장애인들의 마음속엔, 금강산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노컷뉴스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