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족구회 12년 장수 비결은 '부드러운 분위기'
 

▲ 족구 ⓒ 이민선 갈뫼족구회

 

'족구 아자! 빨랑 나오세요. 족구공이 기다리고 있어요. 맛있는 홍어회와 막걸리 준비 했습니다.'

부지런한 총무 덕분에 주말이 흐뭇하다. 문자 메세지 하나에도 정성이 가득하다. 안양시 석수2동 갈뫼 놀이터 터줏대감 '갈뫼족구회'는 석수동 생활체육 명가로 자리 잡았다. 난 갈뫼 족구회 '불량회원'이다. 참석율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짤릴만하니까 나왔네 이번에는 위험했어. 야, 가끔은 얼굴 좀 보자. 그동안 바빴나 보네."

모처럼 나가니 인사말도 가지각색. 지난주 토요일(4월19일)날 석달 만에 족구장에 나갔다. 모처럼 만나는 회원들에게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막걸리 한 잔씩 돌렸다. 회원가입 하면서 성실하게 참석할 것을 약속했는데 여태껏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그것이 늘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다.

이곳(갈뫼 놀이터)에 족구 바람이 처음 불기 시작한 것은 약 12년 전이다. 석수동 토박이 서정근(55)씨와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 갈뫼 놀이터에 족구 네트를 치면서 시작됐다. '갈뫼 족구회'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지난 2001년이다. 회원 수가 늘어나면서 모임을 재정비 할 필요성이 생겼고 내친 김에 '갈뫼 족구회'라 이름 짓고 창단식까지 했다. 현재 회원 수는 33명이다.

갈뫼 족구회 원조 서정근씨는 현재 감독직을 맡고 있다. 서 감독에게 갈뫼 족구회가 장수하는 비결을 물었다. 작은 스포츠 동호회가 10년을 넘기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글쎄요. 분위기 때문인 것 같아요. 철저하게 친목 위주로 모임을 운영하다 보니 분위기가 좀 부드럽지요. 우린 승부가 걸린 대회에 참석하지 않아요. 승부가 치열해지다보면 이기고 싶은 마음에 모임 분위기를 깨는 경우가 있거든요."

일리 있는 대답이었다. 갈뫼 족구회 특징은 운동신경 둔한 회원들에게 친절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심하게 헛발질해도 누구 하나 탓 하는 사람이 없다. 설사 팀이 경기에서 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을지라도. 그러다 보니 분위기가 항상 부드럽다.

각종 동호회 대항 경기에 참석하지 않는 것도 모임 분위기에는 순기능이다. 물론 서운한 회원도 있겠지만. 경기에서 이기려 하다 보면 정예 멤버를 뽑아서 경기에 투입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정예멤버에 끼지 못한 회원들은 자연스럽게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이 때문에 각종 동호회 대항 경기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것.

서 감독은 헤딩(heading) 하나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가 헤딩을 하면 족구장 전체가 뒤집어 진다. 헤딩솜씨가 좋아서?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다. 절대 헤딩하지 않다가 다급해지면 한번씩 하기 때문이다. 그는 대머리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애지중지 하다 보니 머리로 공을 치는 일이 거의 없다.
 

▲ 2006년 가을 가족 운동회(맨 왼쪽이 서정근 감독) ⓒ 이민선 갈뫼 족구회

먹을거리가 푸짐하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과장된 표현을 빌리자면 '화려한 먹을거리'라고 해야할까? 오리탕, 오리 로스구이, 해물탕, 옻닭, 삼겹살, 뼈다귀 해장국, 홍어회, 오징어 회, 비빔국수 등, 갈뫼 족구장에 등장하는 음식은 실로 다양하다. 족구하는 날(토요일, 일요일 오후)은 늘 잔치가 열리는 셈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하려는 분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일이다. 사실 나도 이것이 불만스럽다.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 해도 체중이 줄지 않고 오히려 불어나는 느낌이다. 족구 한 날은 저녁 식사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배가 든든하다. 반면, 체력단련이 목표인 분들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잘 먹고 적당히 운동하는 것이 체력단련에는 역시 최고다.

회원들 연령은 5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하다. 초창기 멤버들이 대부분 50대고 요 근래 들어온 회원들은 30~40대가 많다. 회비는 월 1만 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회비가 저렴하다는 것도 갈뫼 족구회가 장수하는 비결 중 하나라고 회원 김덕순(42)씨는 전한다.

하루 운동을 마무리 하면서 꽤 진지해 보이는 의식이 진행된다. 부드럽고 자유로운 족구장 분위기에 비하면 꽤 진지한 편이다. 회원들이 빙 둘러서서 그날 운동을 정리한다. 마침 신입회원이 있으면 참가한 소감을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고 힘찬 박수를 보내준다.

경기 중 서운했던 일도 이 시간에 털어버리고 고쳐야 할 점도 이 자리에서 간단하게 토론한다. 마지막은 힘찬 "파이팅"이다. "갈뫼 갈뫼 파이팅!"이라고 외치며 하루 운동을 마무리 한다. 따뜻한 봄, 운동이 필요한 분들에게 족구를 권한다.

"민선아 내일도 꼭 나와, 너만 나오면 우리 회원들 다 나오는 거야."

집으로 돌아오는 등 뒤로 이 말이 꽂혔다.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