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소년병이었던 윤한수(왼쪽)씨가 1951년 1월 경기도 임진강 근처에서 분대장과 함께 찍은 사진.

나 태어난 이 강산에… 소년병으로 기억되고 싶소

한국전때 병역의무 없었지만 소년병 입대

2만5천여명 참전… 현재 생존은 1만여명

국방부 기록물엔 '소년병 명칭' 아예 없어

서울 봉천동에 사는 윤용갑(74)씨는 오른쪽 다리에 58년 전 입은 총상이 있다. 6·25전쟁 때 참전한 그는 1950년 12월 29일 강원도 춘천 시내에서 중공군이 쏜 기관총 총알에 복숭아뼈 관통상을 입었고, 부서진 뼈 조각을 제거한 자리는 보기 흉하게 움푹 들어가 있다. 이 부상으로 그는 평생을 한쪽 다리를 절며 살아 왔다.

"그래도 후회는 없어. 나라를 위해 몸 바쳤다가 입은 영광의 상처잖아."

윤씨는 군번 '0100349'가 선명하게 새겨진 군번표를 꺼내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

윤씨는 만 16세이던 1950년 8월 초 입대했다. 미성년이어서 병역 의무가 없었으나 자원해서 입대한 '소년병'이었다.

군 관계자는 "6·25전쟁이 터지자 14~17세의 수많은 소년들이 자원해 군에 입대했다"며 "소년병들은 간신히 총을 쏘는 정도의 훈련만 받고 전장에 투입돼 성인인 정규 군인에 비해 전사·전상자가 많았다"고 말했다.

6·25참전소년병전우회(이하 소년병전우회)는 최근 '6·25 참전 소년병(정규군) 보고서'를 펴냈다. 소년병전우회가 파악한 6·25 참전 소년병은 2만5000여명. 이들 중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소년병 전사자는 2268명이다. 그러나 소년병전우회측은 "우리 군 당국은 참전 소년병 숫자조차 정확히 모르고 있으므로 확인되지 않은 전사자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생존해 있는 소년병은 1만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년병은 '학도의용군'과도 약간 개념이 다르다. 학도의용군은 학생의 신분으로 학교에서 곧바로 전장에 뛰어든 병사들을 뜻한다. 이들은 1951년 3월 이승만 대통령의 복교 조치 특별담화를 계기로 대부분 학교로 돌아갔지만 당시 18세 이상이었던 일부 병사는 군에 자발적으로 남아 정식 군인이 되기도 했다.

이와 달리 소년병은 주로 개인 자격으로 군에 입대한 17세 이하의 어린 병사들이다. 이들 중에는 학생 신분이 아닌 병사들도 많았다. 일부는 군번을 받아 정식 군인으로 활약한 경우도 있지만 군번 없이 전장(戰場)에서 사라져간 병사들도 많았다.

3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6·25참전 소년병전우회의 윤한수 사무총장이 당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전우의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재우 기자 jw-lee@chosun.com

이들이 전장에 처음 등장한 건 국군이 낙동강 전선을 놓고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던 1950년대 8월 전후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나라를 본 학생들과 소년들은 책가방과 농기구를 던지고 총을 들었던 것이다.

윤한수(73) 소년병전우회 사무총장은 "전쟁 초기엔 주로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자원한 소년병이 많았지만 나중엔 서울과 경기, 충청 등 전국 각지에서 어린 소년들이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소년병들은 충분한 훈련을 받지 않고 배치됐기에 대부분 소총병으로 활약했다. 중·고등학생 연령대였던 이들은 요즘 학생들보다 발육도 좋지 않았다. 키가 150~160㎝대밖에 안됐던 이들은 소총을 들기에도 버거웠다.

축구 선수 출신으로 소년병 중에서는 신체조건이 좋았던 윤한수씨는 15세에 입대해 다부동전투에 참여했다. 그는 "당시 나는 165㎝ 키에 몸무게는 60㎏ 정도였다"며 "그 몸으로 90㎝가 넘는 칼빈 소총을 들고 22㎏나 되는 총과 탄약을 온몸에 메고 싸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들 소년병을 '참전 유공자'로 인정해 월 8만원의 참전명예수당을 주고 있다. 또 사망했을 때는 '호국원'에 안장할 수 있도록 하고, 병이 생겨 보훈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에는 본인 부담금의 60%를 감면해준다.

국가 보훈처 관계자는 "소년병은 나라를 위해 전장에 나선 군인이기 때문에 성인인 참전 군인과 똑같이 대우를 받는다"고 말했다.

일부 소년병 출신들은 "정부가 다른 지원병과 달리 홀대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제기한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다 전쟁에 참전한 뒤 한·일 관계 때문에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재일학도의용군'의 경우 매달 110만원의 연금을 받는 데 비해 소년병들에 대한 지원이 취약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생존해 있는 소년병들은 '마지막 바람'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국가가 자신들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정해 줬으면 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전쟁사나 한국국방전서 등 국방부에서 낸 공식 기록물에는 '소년병'이라는 용어가 없다.

군 관계자는 "학생 신분이었다가 참전한 학도의용군은 1994년 육군본부가 공식적인 책자를 낼 정도로 인정했지만, 소년병이란 개념은 공식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소년병 출신의 이봉갑(75)씨는 "어린 나이에 나라를 구하겠다는 생각만 갖고 입대했다"면서 "그런 우리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후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6.25참전 소년병전우회 윤한수(尹漢壽)사무총장이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찾았습니다. 6.25전쟁 당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전우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석을 바라보면서 조국은 풍전등화의 조국을 지켜낸 이들에 대한 진정한 명예를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80세를 바라보는 참전 소년병들은 우리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맥아더 원수의 유명한 연설과 같이 노병은 죽지 않고 단지 사라집니다. /이재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