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그 동아리 떴다 배꼽 잡는 캠퍼스 | news | 2008-07-16 |
 |
| 세종대학교 개그동아리 개퍼(GAPER)의 1, 2학년 학생들이 포즈를 잡고 있다. /photo 조영회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과거 대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주도했던 밴드동아리, 댄스동아리, 연극동아리의 자리를 ‘개그 동아리’가 대신하고 있다. 이들은 웃기기 위해서라면 쫄쫄이를 입고 거리공연을 하는 창피쯤은 기꺼이 감수한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수염이나 겨드랑이 털을 붙인 채 거리를 활보하고, 애써 기른 머리를 삭발하는 투혼을 보여주기도 한다. 단 한 차례 개그 공연을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만 사람들을 웃길 수만 있다면 ‘그깟 품 좀 들이는 게 무슨 대수냐’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밥을 먹을 때도, 수업을 들을 때도, 심지어 화장실 갈 때도 오직 개그만을 생각한다는 대학 개그동아리 회원들에게 개그는 이미 생활의 일부분이다.
예전에도 개그동아리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과거 이름난 개그동아리 대부분이 직업개그맨을 꿈꾸며 시험을 준비하는 예술대학 재학생에 한정돼 있었다면 요즘 앞다퉈 생기고 있는 개그동아리엔 그런 ‘목적의식’이 없다. 이들에겐 개그맨이 되겠다는 생각도, 남들에게 주목 받겠다는 욕심도 없다. 그저 남을 웃기고 자신도 웃으며 즐겁게 살기 위해 개그 아이디어를 짜내고 공연 무대에 선다.
각 대학마다 학풍이 다르듯 개그동아리의 성격 역시 뚜렷이 구분된다. 톡톡 튀는 개성으로 대학생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주목 받고 있는 3개 대학 개그동아리를 찾아가 직업 개그맨 못지않은 그들의 ‘개그 사랑’을 취재했다.
행사·방송 섭외 1순위
세종대 개 퍼
연 2회 정기공연… 한 달 전부터 매일 10시간 강행군
결성 10년에 개그맨도 여러 명 배출
 |
| 개퍼 13회 정기공연 중에서. /photo 개퍼 |
“늘 웃으며 살 수 있으니 우린 행운아”
지난 5월 8일 세종대 우정당 만남소극장에서 이 학교 개그동아리 GAPER(개퍼·‘개그’와 ‘퍼포먼스’의 합성어)의 정기공연이 열렸다. 공연 주제는 ‘피터팬’. 연출은 이 학교 이상협(23·지구정보학과)씨가, 조연출은 구자명(23·나노공학과)씨와 문성혁(20·컴퓨터공학과)씨가 각각 맡았다.
1시간30분 남짓의 길지 않은 공연이었지만 이날 무대를 위해 개퍼 회원들은 1개월 전부터 매일 6~10시간씩 강행군하며 연습에 구슬땀을 흘렸다. 개그 공연이긴 했지만 마냥 웃기기만 한 ‘킬링 타임용’은 아니었다. 연출자 이씨는 “이번 공연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늙고 싶지 않은 모든 이에게 바치는 몸짓’”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저희에게 아직도 어린애인 줄 아느냐며 핀잔을 줍니다. 네, 저희는 아직 어려요. 더 자라야죠. 이번 공연은 아직 어린 철부지인 저희들이 오래 생각하고 준비해 더욱 소중하고 각별합니다.”
개퍼는 세종대가 정식으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중앙동아리다. 1999년 영문과 과내 소모임으로 출발해 이듬해 중앙동아리로 ‘승격’됐다. 창단 멤버를 0기로 지칭한 동아리의 현재 막내는 9기, 08학번들이다. 개퍼의 정기공연은 1년에 두 차례 열린다. 총 회원은 60여명이지만 실제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서는 인원은 20명 남짓이다. 공연의 총감독 역할을 하는 연출은 학번이 높은 선배가 맡지만 실제 개그 연기를 펼치고 음향, 소품 등 스태프 역할을 맡는 이들은 대부분 1~2학년 재학생이다.
올해로 결성 10년차에 접어든 중견 동아리인 만큼 개퍼엔 재미있는 사연도 많다. 개퍼를 거쳐간 선배 중엔 현역에서 활동 중인 개그맨도 있다. 홍장원(0기)·송왕호(3기)씨의 경우 현재 SBS 개그 프로그램 ‘웃찾사’에서 활동 중이다. 순수 아마추어 개그동아리를 지향하면서도 개퍼 회원들에게 ‘개그맨 선배’의 존재는 큰 자랑이다. “바쁜 와중에도 자주 학교에 들러 후배들도 챙기고 밥도 사주는 멋진 선배”라는 게 이들의 귀띔.
개퍼의 활동무대는 세종대의 울타리를 벗어난 지 오래다. 각종 행사장은 물론, 지역방송과 공중파를 망라해 공연 초청과 출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극장 공연 땐 자리가 없어 서서 보는 관객도 적지 않다. “여러 곳에서 찾아주시니 고맙죠. 하지만 아직 학생이니까 학업이 무엇보다 우선이에요.” 회장 이용현(8기·컴퓨터공학과)씨는 “아무리 욕심 나는 무대라 해도 시험기간이나 학교행사 일정이 겹치면 참석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쉬워했다. 공연을 자주 하다 보니 고정 팬도 많아졌다. 개퍼의 공연사진으로 블로그를 꾸민 팬도 있었다. 자신의 사연을 개퍼에 메일로 띄운 이 팬에 대해 부회장 문성혁씨는 “개퍼 공연을 항상 챙겨보고 있으니 힘내라며 응원해준 게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개퍼는 관객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특별한 방법’으로 보답하고 있다. 매년 어린이날 한양대학교병원을 찾아 소아암과 백혈병 환자를 위한 무료 특별공연을 열고 있는 것.
2000년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벌써 9년째에 접어든다. 개퍼 회원들은 하나같이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부른다. 한 회원은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좋아하는 개그를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고, 그게 개퍼의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
| 개판의 수원역 공연. /photo 개판 |
‘수원의 명물’
수원대 개 판
길거리 퍼포먼스… 우리 모르면 수원사람 아니죠!
신입 가입 조건은 지옥의 마라톤 회의 통과
아이디어 나올 때까지 집에 못 가
유동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수원역 광장을 걷다가 운이 좋으면 수원대 개그동아리 ‘개판’의 공연을 만날 수 있다. ‘개판’의 활동은 수원 사람이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들의 인기는 모 인터넷 포털 지식검색 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수원대학교 개그동아리 개판이 어째서 화제가 되고 있죠?”(아이디 poloksm)란 질문에 수원에 산다는 한 네티즌은 “개판에 대해 질문하시는 걸로 보니 수원에 사시는 분은 아닌 것 같네요. 개판은 수원대에서 시작된 개그동아리지만 수원 시내에서 게릴라 퍼포먼스를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란 답변을 달았다.
개판의 창단 멤버는 연극영화과 학생들이었지만 요즘은 전자공학과, 프랑스어과, 아동복지학과 등 각기 다른 전공을 가진 20여명의 회원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가입할 때 특별한 자격요건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회원 모두의 인정을 받으려면 반드시 ‘마라톤 회의’란 독특한 신고식을 통과해야 한다.
마라톤 회의는 공연 1주일 전부터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합숙하며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는 것. 일단 회의가 시작되면 적절한 아이디어가 나오기 전까지 아무도 집에 가지 못한다. “개판의 명성에 혹해 문을 두드리는 학생 중 상당수가 바로 이 마라톤 회의 체제를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낙오한다”는 게 한 회원의 설명이다. 회장 박병현(24·연극영화과)씨는 “작년엔 후배 녀석이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왔는데 때마침 마라톤 회의 기간에 딱 걸려 친구도 못 만나고 꼼짝없이 아이디어를 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라톤 회의에 대한 회원들의 자부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 회원은 “우리 중 상당수가 집에 있는 시간보다 공연 준비로 학교에서 밤 새는 시간이 더 많다”며 “수업은 안 들어도 마라톤 회의는 빠질 수 없다며 꼬박꼬박 참석하는 회원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
개판의 주요 활동은 단연 개그공연이다. 학교 축제는 물론이고 외부 행사와 공연 무대에도 종종 선다. 특히 ‘거리 게릴라 공연’은 개판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거리 게릴라 공연이란 길거리에서 단시간 내 펼치는 깜짝 퍼포먼스를 일컫는 말. 개판의 경우 학교 축제 기간 중 단 하루, 한 차례에 걸쳐 10분간 게릴라 공연을 갖는다. “일부에선 (10분의 공연 시간이) 너무 짧다고 아쉬워하지만 그만큼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어 개판의 이미지를 알리는 데는 더없이 좋은 공연 방법”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게릴라 공연 외에 수원역 광장에서 갖는 정기공연도 개판의 주요 활동 중 하나다.
개판의 명성이 입소문을 타며 최근엔 방송 출연도 잦은 편이다.
그러나 이들의 방송 출연엔 원칙이 있다. 게릴라 공연이나 수원역 광장 공연 등 정기공연을 하기 위한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만큼만 하자는 것이다. “사실 방송 쪽 일보다는 길거리 공연이 훨씬 보람있습니다. 다만 거리 공연을 하려면 의상이나 소품 등을 준비하는 데 돈이 들게 마련이고, 그 비용을 벌면서 계속 공연하기 위한 방법으로 방송 출연을 선택한 거죠. 색색의 쫄쫄이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저희를 보고 인파가 몰려들면 얼마나 자랑스러운데요. 창피하냐고요? 전혀요!”
개판 회원인 박영규(21·연극영화과)씨는 직업개그맨을 꿈꾸며 개판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이미 개그맨 시험에 응시, 3차 전형까지 갔다가 낙방한 경험이 있다. 그는 “도저히 개그를 포기할 수 없어 재수까지 하며 연극영화과에 들어왔고 개판에도 가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씨는 특별한 경우이고 개판 회원 대부분은 “개판 활동을 통해 ‘개그 이상의 것’을 얻었다”고 입을 모은다. 개판 회원들은 “비록 ‘마라톤 회의’란 지옥 훈련을 견뎌야 하지만 그 관문만 잘 통과하면 여기만큼 좋은 곳이 없다”며 “돈독한 선후배 관계와 웃음을 언제나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행복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사툰’으로 뜬
서울대 샤 개 동
사진·만화 접목한 카툰, 인터넷서도 화제
매주 치열한 아이디어 회의
 |
| 서울대 개그동아리 샤개동의 실사툰 ‘수시모집’편. |
“왜 하냐고요? 이유 없어요, 그냥 재밌으니까”
서울대와 개그의 조합. 언뜻 고개가 갸우뚱거려지지만 서울대에도 엄연히 개그동아리가 있다. 이름하여 ‘샤개동’. 비록 규모는 열 명 남짓으로 크지 않지만 교내에서 시작된 이들의 활동무대는 점차 넓어지며 유명세를 타고 있다.
샤개동을 만든 이는 이 학교 인문대에 재학 중인 이진환(25)씨. 초창기 샤개동은 그와 친구 2명이 전부인 ‘초미니 동아리’였다. 샤개동이란 명칭은 서울국립대학교의 대표 초성 ‘ㄱ’ ‘ㅅ’ ‘ㄷ’를 본떠 만든 정문 조형물이 재학생 사이에서 ‘샤’라고 불리는 것에 착안해 탄생한 것.
대부분의 대학 개그동아리가 공연을 통해 이름을 알리는 데 반해 샤개동은 일명 ‘실사툰(실제 사진에 카툰을 합성한 것)’을 자체 제작, 학교 게시판에 연재하며 인기를 끈 경우다. 이들이 만든 실사툰은 각종 유머사이트에도 진출, 화제가 됐다. 네티즌에게 특히 인기 있는 사이트 ‘웃긴대학(www.humoruniv.com)’에서 샤개동의 작품은 추천수가 400여건에 이른다. “샤(서울)대생들의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아이디 ‘부레옥잠’) “서울대식(式) 개그라 부티 난다”(아이디 ‘제갈’) 등 이들의 게시물을 접한 네티즌의 반응도 다양하다.
지금은 샤개동의 실사툰이 서울대생뿐 아니라 네티즌에게도 널리 인정 받고 있지만 현재 위치에 오르기까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저희도 예전엔 개그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역할 분담도 해보고, 학교 내 공연장을 빌리려고 이것저것 알아보기도 했어요.
회의는 많이 했지만 결국 공연을 올리진 못했어요. 저희도 아쉽죠.” 사진과 만화를 접목한 ‘실사툰’이 탄생한 것은 지난해 여름. 현실 여건상 직접 공연하지 못하는 한계를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돌파해 그들만의 독특한 개그 코드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일반인의 눈엔 그저 사진 여러 장을 이어 붙인 게 전부인 것 같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철저한 사전준비와 자로 잰 듯한 타이밍 끝에 탄생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촬영 전까지 완벽하게 정리된 대본이 완성돼야 하는 건 물론이고, 촬영일엔 각자 맡은 소품과 카메라를 빠짐없이 챙겨 작업에 임해야 해요. 그중 한 가지라도 미흡하면 그날 작업은 엉망이 되는 거죠.” 촬영 이후에도 작업은 계속된다.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상에 띄워 편집하고 말풍선을 넣는 등의 절차를 마친 다음에야 비로소 학내 인터넷 게시판인 ‘스누라이프(www.snulife.com, 서울대 재학생 인증을 받아야 게시물을 올리고 감상할 수 있다)’에 작품을 올려 학생들의 ‘심판’을 받는다.
학창시절 공부에 쏟았던 열정 못지않게 개그를 향한 이들의 열정도 남다르다.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주 1회 열리는 점심 모임을 통해 나온다. 3시간여에 걸쳐 진행되는 이 모임에선 다음 작품 대본을 의논하고 회원 간 친목도 다진다. “입담 좋은 사람들이 많아 늘 주제가 엉뚱한 곳으로 튀고 서로 발언의 주도권을 잡으려다 시간이 다 흘러가지만 오히려 개개인의 사소하고 재미있는 경험담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개그 소재가 나오곤 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준구 교수는 샤개동의 실사툰 ‘수시모집’편을 만드는 데 이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이 교수는 대본을 직접 짜는 건 물론 실사툰 작업 땐 필요하다면 자진해서 미키마우스 머리띠를 착용할 정도였다.
샤개동 회원 중 직업개그맨이 꿈인 이는 한 명도 없다. 그럼에도 개그를 대하는 이들의 자세는 진지하기 그지없다. “이유 같은 건 없습니다. 재미있으면 그걸로 된 거지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어요. 남들이 웃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우리가 재미있고 즐거워야죠. 그게 샤개동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고요.”
조선닷컴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