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노동자 로사린의 '눈물바다' 가족상봉기 | news | 2008-09-22 |
유치원 선생이 되고 싶었던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꿈을 버리고 대학에서 장래희망과 다른 회계학을 선택했다. 취직이 잘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결국에는 돈을 벌기 위해 낯선 한국까지 찾아오게 됐다. 안산 ‘삼위정밀’에 재직 중인 태국 아가씨 로사린(25)씨의 이야기다.
어렵고 힘들 때 부모님 생각 간절해져
“부모님은 항상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있어요.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면 기운이 나죠. 아버지 어머니 앞으로는 편히 쉬세요. 이제는 제가 열심히 일을 할게요….”
로사린씨의 모습이 무대 왼쪽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통해 비춰졌을 때, 그녀의 어머니 감판 터숭는(45)씨는 딸의 모습을 쳐다보다가 손등으로 오래오래 눈가를 쓰다듬었다.
낯선 타지에서 생활하는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쉽게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인 듯했다.
9월 4일 저녁 안산 감골시민홀에서 열린 ‘제2회 모범외국인근로자 가족초청 행사’ 환영만찬에서 로사린 부모님의 마음은 오랜만에 딸을 만난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보다는 기쁨이 더 컸을 것이다.
경기도가 주최하고 안산시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선 도내 31개 시군에서 추천된 14개국 29명의 모범 외국인 근로자가 가족들을 만났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초청된 가족은 50여명이었다.
무대 위에서 사회자가 태국 가족상봉을 위해 태국출신 근로자들의 이름을 호명했을 때, 무대 아래의 분위기는 숙연했다.
로사린씨는 부모님께 힘껏 안겼고, 그녀의 어머니는 반가운 마음에 손바닥을 펴서 눈가를 훔쳤다. 힘껏 다문 어머니의 입술은 나뭇가지에 남겨진 가을낙엽처럼 파르르 흔들렸다.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서였다. 세 가족의 상봉장면은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 같았다. 로사린씨 가족 옆에 선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밝은 얼굴로 그들을 환연히 맞이했다.
무대 위에 설치된 화면에선 로사린씨 가족의 모습이 크게 클로즈업 된다. 로사린씨는 부모님의 손을 맞잡았고, 그녀의 어머니는 오른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너무나 좋고 행복하다. 가족 가운데 부모님 생각을 많이 했다. 어렵고 힘들었을 때마다 부모님이 옆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기운이 났다.”
부모님을 오랜만에 만난 로사린씨의 말은 기쁨보다는 애잔하게 들렸다. 그녀에게 낯선 타지 생활은 얼마나 힘겨웠을까.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엄마가 해주는 말’ 때문에”
로사린씨에게 한국은 생전 처음 와보는 나라였다. 그녀는 한국의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안산시 시화공단에 위치한 ‘삼위정밀’이라는 회사이다. 내년이면 한국에 온지 횟수로 3년째가 된다.
타국 생활이 외롭고 힘들 때마다 그녀는 ‘엄마가 해주는 말(키안캄메손)’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태국 가수 ‘시리번’이 부른 노래였다.
“세상사는 일이 힘들 때마다 엄마가 가르쳐준 말을 생각하라는 노래이다. 노랫말 속에서 엄마가 해주는 말은 ‘참고 견뎌라’라는 말이다. 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이 노래를 부르며 지냈다. 아니면 고향집으로 전화를 해서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르기도 했다.”
한국서 내일을 꿈꾸다
로사린씨가 매달 태국의 가족들에게 보내는 돈은 태국 돈으로 3만 바트(Baht). 우리나라 돈으로 약 1백만원 정도이다.
그녀의 고향은 수도 방콕에서 북쪽으로 364km 떨어진 페처분 시(市)이다. 고향에는 부모님 외에도 아직 공부를 하고 있는 여동생이 둘이 있다.
큰 동생은 간호사로 일하면서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고, 작은 동생은 공업계 전문대학에 다니고 있다. 그래서 로사린씨는 동생들의 학비와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자신은 학업을 못 마치고 한국에서 여동생들의 학비를 벌고 있어 착하다는 생각을 한다. 딸이 한국으로 일을 나간다고 했을 때 많이 걱정했다. 로사린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보내야 했다.”
로사린씨의 아버지 덩군 터숭는(47)씨가 이야기하는 딸에 대해 생각은 쓸쓸하게 들렸다. 로사린씨를 만나게 된 소감에 대해 그녀의 부모는 “너무나 기쁘고 행복하다”고 연실 대꾸했다.
태국에 계신 부모님이 그리워 종종 콜링 카드를 구입해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었던 로사린씨.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좋고 행복하다”며 “부모님을 많이 그리워했다”고 말했다.
어머니 감판씨는 “정부(경기도와 안산시)가 이번 행사를 열어줘서 너무나 감사하다”며 “대한민국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로사린씨는 현재 두 가지의 꿈이 있다. 하나는 돈을 벌어 태국으로 돌아가 학업을 마치는 것이고, 두 번 째는 자신이 일하는 회사 인근의 직장에서 일하는 남자친구 타나메르(28)씨와 결혼을 하는 것이다.
그녀는 학업을 마치면 타나메르씨와 결혼을 할 계획이다.
부모님과 지금 가장 하고 픈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로사린씨는 “서울랜드에 놀러가서 기차를 타고 싶다”며 “재미있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날 자리에서 만난 주한 태국대사관 나타폰 송싸누 행정관은 “(외국인근로자들을 위해)경기도와 안산에서 이런 기회를 줘서 감사하고 너무 기쁘다”며 “특히 안산시가 대사관과 잘 협조를 해주고 있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환영사를 통해 “여러분들이 경기도에 와서 열심히 일 해줘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며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한국에서 좋은 구경을 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올해로 2회째를 맞는 ‘모범외국인근로자 가족초청행사’는 낯선 나라 한국에 일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의 근로의욕을 높이고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마련됐다. 경기도와 안산시가 마련한 이 행사는 9월 4일부터 7일까지 한국 민속촌, 63빌딩, 청와대 등에서 진행됐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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