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을 거둬주세요, 배우 홍석천이고 싶습니다” | news | 2008-10-07 |
ㆍ커밍아웃…다 잃어도 자유롭고 싶었다
그를 만나기 전 머릿속이 복잡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놔야겠다. 정치·종교·사회적으로 논란이 많은 이슈와 얽히고 설킨 ‘예민한’ 인물을 굳이 이 시점에 만나야 하느냐는 의견을 몇몇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터다. 커밍아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논쟁적인데 게다가 이번엔 이혼한 누이의 아이들을 입양했다니. 그럼에도 그런 생각들을 뒤로한 채 그를 만난 것은 대한민국에서 공개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일인지 그의 언어를 통해 전하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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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석천씨는 “때로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많은 관심들이 부담스럽다”면서도 “앞으로도 계속 소수자를 위한 활동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열린 마음으로 진솔하게 이야기를 하다보면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어요”라고 되물었다. |
때론 힘이 든다. 부모님에게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끄러운 아들”이 되었고, 하루하루 “버티는” 부모님을 볼 때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특히 천상 연기자인 그는 “연기자 홍석천으로만 봐줬으면 좋겠는데 만드는 분들이 벽을 두고 보는 것 같다”고 섭섭함을 드러냈다.
스스로 자유롭기 위해 한 선택을 죽을 때까지 내려놓지 못할 짐처럼 지고 살아가는 홍석천. 그래도 그는 꿈꾸고 있었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지수가 선진국 기준이라고 보는데 우리는 소수자 문제가 내 가족문제, 자기 자신의 문제로 치환되기 전에는 사회적 문제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아요. 동성애자든, 이주 노동자든 소수자들이 편하게 좀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이 열린 마음으로 문제에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
입양, 외삼촌에서 아버지로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어요. 이태원에만 제가 운영하는 가게가 4개거든요.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또 다른 것은 무엇일까 고민을 했어요. 연예인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좀 불안한 게 있어서 안정된 것을 찾고 있었는데 커밍아웃하고 나서 시간이 있으니까 이때다 싶어서 했죠. 게다가 SBS 일일드라마 하고 있는데 토요일이 스튜디오 촬영이에요. 주말에 저 혼자 보낼 시간이 없어요. 사실 저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요즘 거의 못갔어요.”
-얼마전 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도 출연한 것을 봤습니다.
“아 그러세요. 어때요. 어떻게 보셨나요. 커밍아웃 이후 거의 첫 버라이어티 출연이었어요.”
-최근엔 조카들을 입양한 것이 알려지면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셨어요.
“네. 그러게요. 사실 조카들과 같이 산 지는 3년이 넘었어요. 입양을 한 것도 지난해 12월로 꽤 지난 얘기였고 별로 밖으로 얘기할 거리가 아니었어요. 아는 분과 얘기를 하다가 그 얘기가 나왔고 기자분까지 알게 되고 그래서 기사화된 거예요. 제가 게이이든 아니든 저는 결혼에 대한 판타지가 별로 없어요. 결혼을 꼭 해야 한다, 하고 싶다 이런 것도 별로 없고요. 결혼제도에 대해서 부정적인 것이죠. 그랬는데 아이들과 3년을 함께 살다보니 저도 익숙해지고, 아이들도 익숙해지고 그렇게 편안한 상태였죠. 누나가 혼자됐고 아이가 2명이 있었고 법적으로 보호자가 필요했어요. 아버지 쪽으로부터 친권 포기각서를 받지 않고 우리가 양육을 하다보면 부(父)쪽에서 친권을 주장할 경우 아이들 다 큰 후에라도 빼앗기게 돼 있더라고요. 그건 안되겠더라고요. 생부의 친권포기 각서를 받으려면 법적인 입양자, 보호자가 필요하대요. 그래서 보호자 개념에서 입양한 거예요. 제가 꼭 ‘아빠’ 소리 듣자고 한 것은 아니고요.”
-본인이 더 잘 느끼시지겠지만 “왜 하필 누나 아이들을 입양하느냐” “왜 알리느냐” “어떻게 게이가 입양을 하느냐” 등 곱지 않은 시선이 있어요.
“제가 만약 다른 아이들을 입양했더라면 입양이 안됐을 거예요. 저는 싱글에다가 게이에다가…. 하지만 법적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제가 조카들에게 해줄 수 있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이렇게 저렇게 말을 하시는 것도 알고 있고, 그런 시선 역시 성적 소수자를 대하는 또다른 차별적 시선이기도 하고요. 사실 입양을 가장 반대하신 분들은 부모님이었어요. 제가 조카들 입양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동네 어르신들이 집으로 오셔서 ‘어떻게 누나 아들·딸을 입양하느냐. 자기 핏줄을 낳아야지’라고 부모님께 한 말씀씩 하신 모양이에요. 그러니 부모님 입장에서도 마음이 아프셨겠죠. 가족 설득부터 힘들었어요.”
-‘아버지’ 역할이 힘들지 않으세요.
“아휴. 사안을 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포커스가 아이들 중심으로 맞춰 있어요. 오늘도 아침에 영어교육에 대한 방송이 나왔는데 우리 아이들 생각이 나는 거예요. 애들이 영어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고 그렇거든요. 그래서 그 방송에서 나오는 얘기가 다 제 얘기 같았어요. ‘영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지? 외국에 연수를 보내서 영어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게 해야 하나?’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졌어요. 이제 관심사가 학부모들 관점으로 넘어가는 것 같아요. 시험 성적표 받아오는 거 보면서 점수를 잘 받고 못 받고에 일희일비하고 있는 저를 보면 ‘참, 이게 부모님 심정이구나’ 싶더라고요.”
커밍아웃, 자랑스러운 아들에서 불효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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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골초됐어요. 커밍아웃해서 제가 는 것이 담배예요. 얻은 것은 불면증이고요.”
-그렇다면 커밍아웃 얘기로 넘어가 봐요. 9월28일이 커밍아웃한 지 8년 되는 날이더라고요. 당시 게이단체에서 ‘홍석천의 커밍아웃데이’라고 이름도 붙였었고요. 커밍아웃 이후 부모님과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커밍아웃해서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서로 더 이해해 나가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죠. 물론 커밍아웃을 했을 당시에는 저를 이해하기 힘드셔서 고생도 하시고, 마음아파 하셨어요. 새벽에도 잠이 안오시는지 불쑥 전화하시고 그랬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해 주시죠. 그런데요, 그 ‘이해’라는 것이 부모님 입장에선 죽을 때까지 이해를 못하시겠죠. 그런데 만약 제가 망가지거나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받는 상태라면 더 마음이 아프셨을 텐데 어쨌든 잘 버티고 견뎌내는 것 같아서 조금 안심하시는 거 같아요. 제가 커밍아웃 당시 몇 번을 망설였거든요. 부모님이 쓰러지실까봐요. 지금까지 잘 버텨주고 계세요.”
-부모님들의 현재 상황을 ‘버틴다’고 표현하시네요.
“부모님께선 현재 상황이 다 괜찮아지셨거나 극복하신 게 아니라 버티시는 거죠. 돌아가실 때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굉장히 착한 아들이었어요. 그런데 불효를 한 번에 큰 것을 ‘뻥’하고 해버렸잖아요.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었는데 어느 한 순간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끄러운 아들이 된 거잖아요.”
“법적 보호자로 조카입양…‘아빠’소리 듣고 싶었던것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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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기대를 비롯해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홍석천’을 커밍아웃 때문에 한순간에 놓아버리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포기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때 프로그램이 6~7개 됐어요. 농담으로 제가 요즘 노홍철씨보다 당시 더 잘나갔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제가 가진 재능과 노력보다 더 많이 사랑받았고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전 그 전에 그런 사랑과 행운이 없었을 때에도 행복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어느 순간 없어진다고 불행해질 것 같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솔직하고 당당하게 내 진짜 삶을 살아보자’ 생각했어요.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물론 좋은데 그럴수록 제가 행복해지지 않더라고요. 더 제 자신을 숨겨야 하고, 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의식해서 살아야 하니까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어요. 어차피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커밍아웃해서 돈이나 인기를 잃어도 다시 시작하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서른 살이었으니까 서른 살은 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고 판단해서 결정한 거예요. 더 나이 들면 사회적으로 가진 것이 더 많아질테니까 못 놓을 것 같았거든요. 저로선 아주 대단한 결심을 한 거죠. 커밍아웃 방송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왜 울고 그러냐, 왜 지금 하필 커밍아웃을 하느냐’고 말씀하시는데 커밍아웃이 부끄러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요. 당시 같이 방송을 하던 이의정씨가 방송 마지막에 ‘이제 방송도 못하고 10년 동안 했던 모든 것이 없어지는데 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하는데 울컥 하더라고요.”
대한민국에서 마이너리티로 산다는 것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충실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 맥락 속에서는 소수자를 대변하는 선봉에 서게 됐어요. 동성애자 및 소수자 인권운동을 비롯해서 여성차별, 외국인 노동자 문제, 입양아 문제 등 많은 일에 관여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홍콩에서 발행하는 타임지 아시아판에서 ‘아시아를 빛낸 영웅들’에도 선정되셨잖아요. 그런데 가끔씩 ‘아, 왜 내가’라고 부담스럽진 않으신가요.
“너무 부담스러워요. 숙제하는 느낌이죠. 나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숙제. 소수자 인권운동과 관련해선 정치적으로든 어떻게든 앞으로도 계속 활동할 것이지만 가끔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가 힘들 때가 있어요. 저도 인간이니까요. 행사 같은 거 부탁이 들어오면 ‘왜 나한테만 이런 짐을 넘겨줄까’하고 불평을 한 적도 있어요. 그러면 안되는데. 소수로 살아가는 많은 분들에게 있어서 홍석천의 커밍아웃이 의미를 갖는 것이, 그 전에 한 10년 동성애 문제와 관련해서 운동을 해왔지만 벽이 두터웠거든요. 그런데 제 커밍아웃을 계기로 운동의 성과나 파괴력이 상당히 앞당겨졌다고들 하세요. 예전에는 조금씩 소리를 높였다면 이제는 좀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도 있고, 외쳐대도 무시당했지만 지금은 ‘저 정도는 인정은 해줄 수 있어. 저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같이 있어도 나에게 그렇게 크게 해가 되는 것이 없구나’라는 분위기는 된 것 같고요. 외국 신문 기자나 외국 사람들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는데 그 사람들은 커밍아웃이 ‘정말 용감했고 대한민국에 큰 의미를 지니는 일이다. 용감함을 꺾지 말라’고 말해줘요. 그런 말들을 듣다보면 내가 참 의미있는 일을 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느낌이 피부로 와닿을 때도 있는데 어린 친구들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이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힘들어하시다가 저에게 e메일 등을 통해 고민을 털어놓으세요. 자살을 생각하고 있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너무 힘들다는 내용이에요. 그런 글들 보면 저는 그 분들의 마음을 아니까 답장을 보내주죠. 그럼 그 분들이 다시 힘을 얻고, 고맙다는 반응을 보여주시고 하니까 ‘한 생명을 살렸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그러면 제가 소중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참 재미있어요. 저는 그냥 단 하루라도 100%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 의미가 굉장히 커지더라고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 의미가 커지면서 저도 거기 따라 더 열심히 살고 노력하고 있더라고요. 힘도 들지만 굉장히 보람있어요.”
-지금도 계속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나요.
“계속하고 있어요. 대학에서 하는 강의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커밍아웃한 이후로 대학생들이 와서 특강을 해달라고 요청하면 거의 다 갔어요. 이번주 목요일에도 동덕여대에서 특강이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그렇게 투쟁하는 시간이 굉장히 소중해요. 가능하면 많이 돌아다니려고 하고…. 젊은 친구들에게 저는 기대를 많이 해요. 이렇게 제 얘기를 진솔하게 하다보면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어요. 앞으로 이 친구들이 기성세대가 될 때엔 많이 달라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이러다가 나중에 저 정치 쪽으로 나가는 거 아닌가 싶어요.(웃음)”
-본인은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만 말들은 난무하고 있어요. 여전히 상처주는 사람이나 일들도 많을 텐데요.
“포기하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 제 자존심이 허락을 안해요. 물론 처음에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굉장히 많았어요. 사업을 시작했지만 잘 안되고 벌어놓은 돈은 계속 까먹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제가 실패하고 쓰러지면 ‘것 봐라. 호모새끼가 뭘 할 수 있겠어?’ 이런 생각을 혹시라도 다른 분들이 하실까봐. 남들보다 수십 배 노력하고 아파도 참고 하는 이유가 그런 소리 듣기 싫어서예요. 저는 혈액 검사도 주기적으로 해요. 제가 당당해지려면 에이즈나 성병에 대해 정확히 몸 상태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대한민국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야 하는데 ‘쟤는 저래서 안돼’라는 소리는 듣기 싫고 ‘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꿀릴 것 없어. 더 많은 달란트를 가지고 있어’라고 보여주고 싶어서 미친 듯이 살았어요, 8년 동안.”
-‘마이너리티로 살아가기’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나라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차이’에 대한 포용력의 수준을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시나요.
“정부에서도 선진화 얘기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몇 만 달러가 돼야 선진국이 된다고 말도 하고 선진국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저는 그런 것을 선진국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지수가 선진국 기준이라고 보는데 우리나라는 뒤떨어졌다고 생각해요. 워낙 혈연, 학연, 지연 이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객관적이거나 개별적이지 못하죠. 저 또한 마찬가지예요. 그렇다 보니까 내 가족문제, 자기 자신의 문제로 치환되기 전에는 사회적 문제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거예요. 성적 소수자 문제를 예로 들면 그냥 ‘불쌍하다’ ‘안됐다’까지는 공감이 될지 몰라도 그 사람의 필요에 대해서 사회적 제도나 인식의 변화 쪽으로 뭔가 해야겠다는 식으로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는 거죠. 제가 요즘 외국 음식을 하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다 보니 외국인 주방장 때문에 이주 노동자 가족분들 만날 기회가 많고 행사도 많이 참여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로 시집 온 동남아 출신 아줌마들이 저에게 와서 밝게 웃고 혼혈인 아이들과 함께 행복해 하는 모습 보면서 ‘이 사람들 이렇게 밝게 웃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희생이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우리나라도 다민족 국가가 될 텐데 아직도 동남아 사람이라고 하면 낮춰 보잖아요. 동남아 여성이 내 집 식구가 되기 전까지는요. 소수자 문제는 그런 것이에요. 남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내 문제라고 생각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 같아요. 그런 배려가 잘 되어 있는 나라가 바로 선진국이라고 보면 우리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안타깝죠.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점점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는 거예요. 입양 문제만 해도 그래요. 막상 기사가 나가고 비슷한 입장에 놓인 여성분들이 격려의 메시지를 많이들 주시더라고요. 그 상황에 처해서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 사람들의 고민을 모르는 것이죠. 처음만 깨고 나가면 ‘저렇게 해도 이상한 것이 아니구나’라고 생각이 환기되고 서서히 변화가 이뤄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앞서서 그런 문제들에 부딪히고 깨고 나가는 것이 두렵지 않은가요.
“대화와 커뮤니케이션, 소통이 그래서 필요한 것 같아요. 저를 모르는 분들은 저의 선택을 보고 욕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저를 아는 분들, 저와 대화한 분들은 제 생각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시거든요. 소수자 문제, 인권문제도 마찬가지예요. 마이너리티에 대해 대한민국이 깨어나야 하는 게 소통이 안되는 문제죠. 한 쪽은 부끄러워하고 또다른 한 쪽은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제 친인척 중에 장애인 딸을 둔 누나가 있어요. 누나의 가정은 그 딸이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나기 전까지는 너무나 완벽한 상태였죠. 딸이 태어나기 전까지 누나가 장애인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전혀 없었겠죠. 그런데 이제 장애인 문제가 자기 문제가 된 거예요. 딸의 장래 때문에 고민하고 자기가 없어도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딸이 살아갈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니까 할 일이 너무 많은 거예요. 동성애도, 이주 노동자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소수자들이 편하고 좀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없어서 그냥 넘어갔다고 가정해 봐요. 그런데 만약 내 가족 중 하나가 바로 그 입장에 처하면 어디에다 도움을 청하겠어요. 그렇게 생각해 봤을 때 모든 사람들이 열린 마음으로 문제에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열린 마음은 홍석천씨가 업으로 삼고 있는 연기에서도 중요한 것 같은데요.
“네, 맞아요. 나를 버리고, 나를 잊고 캐릭터에 빠져드는 것. 저는 사실 ‘배우 홍석천’인 게 제일 행복해요. 작은 역할이라도 정확하게 해서 극을 만드는 작가와 감독, 극을 보는 시청자가 고개를 끄덕이면 저는 오케이예요. 그게 저의 소박한 꿈이죠. 그런데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이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게 제일 힘들죠. 연기자 홍석천으로만 봐줬으면 좋겠는데 만드는 분들이 벽을 두고 보는 것 같아요. 요즘 하는 일일드라마를 선택하고 즐겁게 하는 이유가 있어요. 제가 보통 스트레이트 남성으로 나오고 여친과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는 역할이에요. 그런 역할은 처음이에요. 커밍아웃 이후에 저는 드라마나 작품 속에서 계속 독립적인 캐릭터였어요. 누구에게나 좋은 친구, 오빠 이런 역할이었고 거의 무성(無性)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남성으로서 제 성을 갖게 된 거죠. 그런 것이 매력있어요. 사실 사극을 하기로 했던 게 있어서 이미 가발도 준비했거든요. 드라마나 영화 쪽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두려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요. 머리 긴 제 모습?”
▶홍석천은누구인가
2000년 커밍아웃‘아시아 빛낸 영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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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아들’ ‘잘 나가던 연예인’이었던 홍석천이 ‘불효막심한 아들’ ‘실직자’가 된 것은 2000년 9월 그가 서른 살이 되던 해였다.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것이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그가 사회적 금기로 여겨지던 동성애의 당사자임을 밝히며 많은 사람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고 동성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홍석천은 동성애자를 비롯해 여성, 외국인 노동자, 입양아 문제 등 소수자의 인권과 관련한 사회 활동에 참여했고 타임지 아시아판에서 ‘올해를 빛낸 아시아의 영웅’에 선정되기도 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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