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한 번 1승에 도전하는 서울대 야구부 | news | 2008-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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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정태도) |
서울대 야구부는 ‘공부 1등’이 모인 팀이다. 그러나 특기생 없이 꾸려진 팀이라 야구는 꼴찌다. 서울대 야구부는 2004년 199패 1무 끝에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1승에 성공해 큰 관심을 받았다.
4년이 지난 오늘 서울대 야구부 선수들은 그때와 똑같이 뛰고 있다. 세상의 관심이 있든 없든 승리를 위해 땀방울을 쏟고 있다. 다른 팀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서울대 야구부의 목표는 언제나 승리다.
제58회 전국종합야구선수권대회 둘째 날 경기가 열린 9월 19일 목동 야구장의 관중석은 거의 비어 있었다. 지난해와 달리 이번 대회에는 프로 2군 팀과 상무, 경찰청이 출전하지 않았다.
오전 9시 30분 이날의 첫 경기인 서울대와 성균관대의 경기가 시작됐다. 토너먼트 방식이어서 서울대로서는 첫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성균관대는 8월에 열린 KBO(한국야구위원회)총재기 전국대학야구대회 우승팀이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탁정근(41) 서울대 감독은 “저쪽에서 우리 실력을 잘 알기 때문인지 주전 선수들을 내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성균관대 라인업에는 4학년이 한 명도 없었고 1, 2학년이 대부분이었다.
2009년 2차 지명에서 프로야구 한화에 지명돼 계약금 1억 원에 입단 계약을 맺은 에이스 허유강(22)은 3회가 돼서야 불펜에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서울대 선발 투수 배상현(24)은 성균관대 타선을 1회와 2회 무실점으로 막았다. 경기 전 “1이닝은 꼭 무실점으로 막고 싶다”던 배상현의 목표는 이뤄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배상현은 성균관대 타선이 한 바퀴 돈 3회 1사가 지난 뒤 이상훈(21)에게 볼넷을 내주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후속타자에게 볼넷과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해 1사 만루 위기를 맞았다.
성균관대는 4번 타자 김용호(22)의 좌중간 적시타 등으로 대거 5점을 뽑았다. 4회에 8점, 5회에 2점을 보탠 성균관대가 15－0 5회 콜드게임 승을 거뒀다.
이 경기의 패배로 서울대의 올해 공식 경기는 모두 끝났다. 선수들이 서울대 체육관 앞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였다. 접전을 벌였다면 아직도 경기를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이석구(40) 코치가 경기에 대한 짤막한 평가를 했다. 이코치에 이어 야구부에서 오래 뛴 순서대로 선수들이 한마디씩 했다. 대패했지만 선수들의 얼굴은 어둡지 않았다.
2회 2루타로 팀의 유일한 안타를 기록한 조병일(22)은 “이제 내년 시즌까지 운동할 시간이 많으니까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못한 훈련을 열심히 하자”고 말했다. 서울대 야구부의 2008년 시즌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꼴찌들이 만든 기적
4년 전인 2004년 9월 1일 서울대 야구부는 동대문구장에서 광주 송원대를 상대로 감격스러운 첫 승을 올렸다. 199패1무를 기록한 끝에 거둔 승리였다.
서울대 선발 투수 박진수(28)는 9이닝 동안 4안타를 맞고 볼넷 8개를 내줬지만 송원대 타선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2－0 완봉승을 거뒀다.
각종 매체에서 ‘꼴찌들의 반란’ ‘기적의 첫 승’이라며 서울대 야구부의 승리를 대서특필했다. 완봉승의 주인공 박진수는 당시 인터뷰에서 “완봉승을 한 뒤 취재가 끊이지 않아 부담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대 야구부 선수들은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 대학에 진학한 뒤 운동을 시작한다. 그런 선수들이 신생팀이긴 했지만 고교 선수 출신으로 이뤄진 송원대를 이겼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2008년 가을 서울대 야구부 선수들은 또 다른 기적을 만들기 위해 뛰고 있다. 그들은 이미 자그마한 기적을 일으켰다. 성균관대전 선발 투수 배상현은 야구가 좋아 1학년 때 야구 동아리 활동을 하다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배상현은 성균관대의 강타선을 1회 12개의 공으로 삼자범퇴로 막았다. 배상현은 “3회부터 손가락 힘이 떨어져 제구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대 투수들은 구속이 빠르지 않아 제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데 제구가 되지 않으니 상대 타자들에게 맞을 수밖에 없다. 배상현은 올해 3학년으로 내년 춘계리그까지 출전할 생각이다.
코칭스태프
서울대 코칭스태프는 탁감독과 이코치 두 명이다. 탁감독은 2002년 감독을 맡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86학번으로 야구부 출신이다.
탁감독은 6년 전 감독을 맡을 사람이 없어 야구부가 해체될 위기에 놓이자 감독 자리를 자청했다. 탁감독은 “야구부에서 뛰던 시절이 무척 즐거웠다. 그리고 누구보다 서울대 야구부를 사랑했기 때문에 감독직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탁감독은 특수학교인 서울경운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어 짬짬이 시간을 내 서울대 선수들을 지도했다. 대회가 없을 때는 주 3일 하루 4시간가량 훈련을 했다. 대회를 앞두고는 매일 훈련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조명 시설이 없어 해가 지면 훈련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명탑이 서 있다. 야구를 매우 좋아하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1승을 거둔 뒤 야구부에 특별 지원을 한 덕분이다.
해가 져도 훈련을 할 수 있지만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 최근에는 야간훈련을 하지 않는다.
탁감독은 얼마 전 서울 과학고로 전근 발령을 받았다. 서울 과학고에서 120시간의 연수 교육을 받아야 해서 야구부를 지도하기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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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야구부 선수들에게 훈련은 부족한 기본기를 쌓는 중요한 시간이다. 외야수 오준호(21)가 공을 쫓아 달려가고 있다.(사진 정태도) |
연수 기간 일주일에 한 번만 선수들을 지도할 수 있다. 그동안 이코치가 선수들을 이끌 예정이다.
이코치는 강남중에서 11년 동안 감독을 맡았다. 후배의 소개로 2개월 전에 서울대 야구부 코치를 맡게 됐다. 이코치 후배의 친구가 서울대 야구부 출신이다.
이코치의 임무 가운데 하나는 강남중 감독 시절의 인맥을 동원해 연습경기 일정을 잡는 것이다. 서울대 야구부와 연습경기를 하려는 팀은 많지 않다.
탁감독은 사실 아마추어다. 선수 지도에 어려움이 많은 가운데 탁감독에게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민 이가 있다. 성균관대 이연수(45) 감독과 석수철(35) 코치다.
이감독은 “서울대 선수들이 열심히 하는 자세가 보기 좋아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감독은 “서울대와 연습경기를 자주 하다 보니 선수들끼리 친해졌고 4년 전부터는 ‘서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정기전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대가 첫 승을 한 2004년 1월에는 제주도에서 함께 전지훈련을 하며 기량 향상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감독은 서울대 선수들에게 투구나 타격 등 기술적인 면 외에 부상 예방법 등도 가르쳤다.
이감독은 서울대 선수들이 야구에 대한 의욕은 넘치지만 기본기가 부족하고 체력이 약해 다치지 않을까 늘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선수들의 경기력은 점점 좋아졌다. 첫 승을 하기 전부터 접전을 펼치는 경기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감독은 “서울대가 첫 승을 거뒀을 때 정말 큰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서울대 야구부 첫 승의 배경에는 이감독의 애정 어린 관심과 지도가 있었다.
이감독은 “학생야구팀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야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라도 서울대의 대회 참가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감독은 “체육 특기생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학원 스포츠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서울대 야구부를 바라보는 시선
모든 야구인이 이감독처럼 서울대 야구부를 호의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연세대 이광은(53) 감독은 “대학 선수들은 프로 구단에 입단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대처럼 전력 차이가 큰 팀이 대회에 참가하면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광은 감독의 지적은 서울대를 상대로 기록한 안타나 삼진이 공식 기록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서울대를 상대한 팀의 선수와 그렇지 않은 팀의 선수 사이에 개인 성적에서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 선수들은 프로에 가기 위해 기록에 신경을 많이 쓴다. 타율 1리와 방어율 0.01 차이로 개인상이 가려지기도 한다. 서울대를 상대한 팀의 선수들은 개인 성적에서 득을 보게 된다.
예전에는 서울대를 상대한 기록이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대한야구협회는 2002년부터 서울대를 상대로 한 기록을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광은 감독은 “서울대처럼 기량이 떨어지는 팀은 다른 리그로 묶어 따로 경기를 치르고 성적도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4년 첫 승을 거둔 뒤 서울대는 2부 리그 팀으로 분류됐다.
2부 리그는 2년제 전문대학이나 비교적 약한 신생팀이 모여 있는 리그다. 일본의 대학 야구는 지역별, 수준별로 리그를 구성하고 있다.
고려대 양승호(48) 감독은 “서울대를 상대한 기록의 인정 여부는 협회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한양대 천보성(55) 감독 역시 서울대와 다른 학교가 별도의 리그에서 뛰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천감독은 “1, 2부로 리그를 나누되 1년에 한 번 통합 리그 형식의 대회를 치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야구에 미쳤죠”
성균관대전이 끝난 뒤 첫 번째 훈련이 있은 9월 24일. 연습 시간인 오후 4시가 되자 선수들이 구장 이곳저곳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신입 부원 두 명은 땅을 고르고 물을 뿌렸다. 준비 작업을 마치고 원형으로 모인 선수들은 ‘서울대’를 거푸 외치고 훈련을 시작했다.
서울대 야구장은 잔디구장이 아니다. 그러나 훈련 여건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조명시설도 돼 있고 그라운드 사정도 비교적 좋다. 그러나 야구 장비를 마련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이코치는 “야구부 1년 예산이 1000만 원인데 9월 현재 이미 다 썼다”고 말했다. 성균관대의 연간 장비 구매 비용은 7천만 원 이상이다. 야구공과 배트 구입비만 학교에서 지원하는 데도 서울대 야구부 1년 예산의 7배다.
이코치는 “중, 고교 야구팀에서 1년에 쓰는 배트가 200자루 정도다.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숫자”라고 말했다. 체육 활동을 야구부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학교 측에 지원의 손길을 내밀 수도 없다.
이코치는 프로야구나 고교야구팀이 쓰고 남은 배트를 지원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학교는 프로에 진출한 선배들이 모교를 방문해 지원하는 일도 있지만 서울대 야구부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예산이 빠듯해 지방 대회의 경우 경기를 치르고 당일 돌아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편하게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게 서울대 야구부 선배들의 얘기다. 서울대 야구부 출신 영화인 임세호(34) 씨는 “전에 비해 야구하기는 훨씬 좋아졌는데 선수들의 정신력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임씨는 “2004년 1승을 했을 때만큼의 전력이 다시 나오기는 쉽지 않겠지만 후배들이 좀 더 분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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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야구부는 약점인 수비를 보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사진 정태도) |
임씨는 “4년 전에는 학교의 지원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래도 선수들의 결속력이 강했고 승리에 대한 의지가 확실했다. 그래서 1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러브와 배트를 개인적으로 구입하면서까지 야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2004년 우승 멤버 최우석(27) 씨에게 물었을 때 돌아 온 답은 간단했다.
“야구에 미쳤기 때문이다. 장비가 고가라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야구를 계속하고 싶으니까 계속하는 거다.”
이기기 위해 야구 한다
첫 승 때 멤버였던 최씨는 2004년 1승을 거둔 뒤 나온 기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울대 선수들에게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기사였기 때문이다.
1승을 거둔 뒤 서울대 야구부는 각종 매체의 출연 요청을 수없이 받았다. 그러나 모두 거절했다. 서울대 야구부를 야구선수로 보지 않고 호기심의 대상으로 여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서울대 야구부 선수들은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패배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서울대 야구부 역시 실력은 떨어지더라도 이기기 위해 야구를 하는 것은 다른 팀과 다르지 않다.
주장을 맡고 있는 유병수(21)는 “경기 전 상대팀 선수들과 인사를 할 때 마주 선 선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기세에 밀리면 경기도 하기 전에 질 것 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1학년 때는 야구를 즐기려는 마음으로 야구부에 가입했다. 그러나 막상 경기장에 나서니 다른 학교 선수들은 서울대를 이기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그런 상대 선수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결례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유씨는 이기려는 마음을 갖고 경기에 나선다.
배상현 역시 마찬가지 자세로 출전한다. 배상현은 “경기를 앞두고는 다른 생각은 하나도 나지 않는다. 마운드에서 어떻게 던져야 할지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첫 승의 주역인 박진수 씨는 이기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우선 상대팀 선수들과 비슷한 수준의 플레이를 하려고 노력했다. 야구만을 바라보면서 살아온 선수들과 같이 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영광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강팀과 경기를 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실력의 차이를 좁히려고 노력했다.
2004년 전국대학야구 추계리그에서 서울대는 한일장신대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199전 전패 끝에 이뤄낸 값진 무승부였다. 이 경기에서 서울대는 9회초까지 4－3으로 앞서다가 9회말 동점을 허용했다.
아쉬운 무승부였지만 박씨가 말하는 ‘차이’를 좁히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경기에서 송원대를 2－0으로 이겼다.
사상 첫 1승이 확정되는 순간 서울대 선수들은 벤치를 박차고 그라운드로 뛰어들었다. 세상의 관심이 있든 없든 그들 역시 승리를 원하는 야구선수다.
스크린에서 만나는 서울대 야구부
임세호(32) 씨는 서울대 야구부 출신인 영화인이다. 임씨는 서울대 야구부가 첫 승에 이르는 과정을 스크린에 담을 예정이다.
임씨는 자신이 선수로 뛰던 시절에도 영화계에서 서울대 야구부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영화사들이 지나치게 흥미 위주의 영화로 만들려고 해 임씨가 거절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뒤 영화사에 들어간 임씨는 독립하면 자신이 직접 서울대 야구부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임씨는 자신이 선수로 뛰던 1995년과 그 전후의 이야기를 다룰 생각이다.
2004년 감격의 첫 승은 에필로그 형식으로 다룰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영화는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패전 처리 투수로 뛴 감사용(51,전 국제디지털대 감독)의 이야기를 다룬 <슈퍼스타 감사용>처럼 팩션형식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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