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뎌씨! 제 연기 좋았어요? | news | 2008-10-16 |
 |
|
13일 오후 강원도 홍천군 동면 월운리에서 베트남₩캄보디아₩중국 등에서 홍천으로 시집 온 이주여성들이 자신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를 찍고 있다. 곽창렬 기자 |
홍천으로 시집온 이주여성들 영화배우 되다
문화원서 캠코더 배우다 "우리 이야기를 영화로" 영화감독 신지승씨가 메가폰
'고정' 10명 등 50명 출연 주민들도 엑스트라 나서 영화제에도 출품 계획
"자자, 준비됐죠. 레디, 액션!"
감독 신지승(45)씨가 외치자, 곁에 있던 태국인 롯자린(여·30)씨가 '탁'하고 영화촬영용 슬레이트를 닫았다. 그 순간 캄보디아인 스레이또(여·22)씨가 보조카메라로 쓰는 캠코더의 녹화 버튼을 눌렀고, 동시에 카메라 앞에 있던 주민들과 동남아시아 새댁들이 연기를 시작했다.
13일 오전 11시30분쯤 강원도 홍천군 동면 월운리의 콩밭 앞 시골길에서는 영화 촬영이 한창이었다.
"아뎌씨(아저씨)!" 베트남 출신 레티홍느홍(여·22)씨가 밭에 서 있는 김창용(56)씨를 향해 어눌한 한국어 발음으로 외쳤다. "왜 그래?" 김씨가 답하자, 이번에는 레씨 옆에 서 있던 캄보디아 새댁 온수완(22)씨가 대사를 받았다. "아저씨, 금광이 어디 있는 줄 알아요?"
신씨가 "좋아요, 컷!"을 외칠 때까지, 이들의 연기는 1시간여 동안 계속됐다. 이날 촬영한 장면은 결혼 이주여성들이 동네 주민에게 길을 물어가면서 금광을 찾아가는 내용이었다. 실제 영화에서 상영될 분량은 약 25초지만, 촬영하는 데 1시간 넘게 걸렸다. NG는 13번이나 났다.
영화 촬영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전문 배우가 아니었다. 슬레이트를 잡고 '조연출' 역할을 한 롯자린씨, 보조 카메라인 캠코더를 들고 촬영을 담당한 스레이또씨는 물론이고, 연기를 한 배우 7명 중 4명도 베트남·캄보디아·중국 등지에서 홍천으로 시집온 이주여성들이었다.
아직 한국말도 서툰 이들이 지난 9월부터 직접 영화를 찍고 있다. 이들이 영화 제작에 나선 것은 창작영화 감독인 신씨를 만나면서부터다. 신씨는 지난 7월 강원도 홍천문화원에서 이주여성들을 상대로 부모에게 영상편지를 보낼 수 있도록 캠코더 촬영 강의를 하면서 연기법도 함께 가르쳤다. 당시 '학생'들이 의외로 연기에 흥미를 보이자, 신씨는 '이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한번 찍어보자'고 나선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고향에 다녀오고 싶은 이주여성들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상금이 걸린 'UCC(User Created Contents·사용자 제작 동영상) 공모전'에 출품할 작품을 찍으면서 겪는 사연이다. 이주여성들은 과거 홍천 일대에 있었던 금광을 배경으로 UCC를 찍었고, 이 UCC 제작 과정에서 잊혀졌던 금광의 존재를 세상에 다시 알린다는 줄거리다. 영화 속 내용이 영화 제작에 참여한 이주여성들 스스로의 이야기인 셈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주여성과 남편들이 영화촬영을 반기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혹시 우리가 불쌍한 존재로 그려지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신씨는 "이주여성들이 한국에 기여하는 존재로 그려질 것"이라고 그들을 설득해 이주여성들의 마음을 열었고, 나중에는 몇몇 남편들도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 배경이 된 월운리 주민들도 이들을 도왔다. 지난달 말 마을에서는 주민 50여명이 인삼 밭에서 일하는 장면을 찍었다. 약 3시간 동안 진행된 촬영을 주민들은 별 불평 없이 마쳤다. 아이를 데리고 온 이주여성들이 촬영하는 동안 대신 아이를 돌봐주기도 했다.
한 번이라도 영화 촬영을 했던 이주여성의 숫자는 50여명. 홍천군으로 시집온 이주여성 300여명 가운데 6분의 1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얘기다. 집안살림에 바쁜 이들이 항상 촬영에 나올 수는 없기 때문에 고정출연자는 10명 정도다. 신 감독은 "이 영화는 주인공 몇 명에 의존하는 영화가 아니라서 단 한 사람만 출연해도 촬영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주여성들이 '배우'로 나선 동기는 제각각이다. 우즈베키스탄인 카즈노바 빅토리아(27)씨는 2003년 한국으로 시집온 이후 항공료가 부담이 돼 한 번도 고향에 가지 못했다. 카즈노바씨는 "두 아들을 돌보느라 자주 촬영하진 못하지만 영화가 잘되면 우즈베키스탄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인 유신신(31)씨는 "어릴 적 동네에서 영화 촬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와서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베트남에서 시집온 따띠배연(19)씨는 지난 8월 임신 3개월 만에 유산을 했다. 유산 후유증으로 우울해있던 그를 보면서 남편은 "영화 찍는 데 나가보라"고 권유했다. 남편은 지난달 30일 촬영에서는 아내와 함께 출연했다.
이들에게 '연기'는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한국어가 서툰 이들이 대사를 외우고 동작까지 숙지해 연기하기란 쉽지 않다.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신 감독은 간혹 자기 나라 말을 그대로 쓰도록 한다.
캄보디아에서 온 온수완씨는 "영화를 찍으면서 새 친구가 10명이 생겨 같이 밥도 먹고 얘기도 나눈다"며 "캄보디아 친정부모님께 알렸더니 이제는 전화할 때마다 영화를 잘 찍고 있는지 궁금해 하신다"고 웃었다.
현재까지 촬영 횟수는 11번. 60분짜리 영화를 완성하려면 앞으로 50차례는 더 촬영해야 한다. 신씨는 11월까지 촬영을 마쳐서 연말에는 홍천문화원에서 상영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영화를 찍는 데 드는 제작비는 1억원 정도. 다문화열린사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홍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후원자로부터 4000만원 정도 후원을 받았지만 나머지는 신씨가 낸다. 신씨는 “잘 만들어진 영화가 해외영화제에 초청을 받아서 이주여성들 중 일부라도 고향을 가게 되는 게 작은 바램”이라고 말했다.
조선닷컴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