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각 장애인 야구 경기장에 가보니… 그들의 손짓은 함성이었다 | news | 2008-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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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각장애인 야구 국가대표팀의 포수 이종환(22)이 수비 연습 중 감독과 대화하고 있다. 모든 의사소통을 수화로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의 손은 쉴 틈이 없다. / 이인묵 기자 redsox@chosun.com |
주의력 흩어지면 실책 일쑤… 눈빛 '초롱초롱'
지난 18일 충청북도 충주시 탄금대 야구장에서 청각 장애인 국가대표 야구팀의 연습경기가 있었다. 유니폼에 새겨진 'KOREA'가 선명하다. 빨간 줄이 들어간 푸른 상의, 태극기가 새겨진 하얀 바지는 베이징에서 금메달을 딴 국가대표팀의 유니폼과 같다.
눈에 보이는 연습장면은 여느 야구장과 같은데 뭔가 달랐다. 조용했다. 보통 야구장에서라면 여기저기서 들렸을 선수들끼리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선수들은 묵묵히 던지고, 치고, 뛰고, 잡았다. 가끔 감독과 코치가 말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선수들은 손짓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포수가 글러브를 높이 들면 내·외야의 선수들이 그의 손을 바라봤다. 그리고 글러브를 낀 손을 높이 들어 대답을 대신했다.
◆손으로 대화하며 연습
선수 30여 명은 오후 1시쯤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대표로 선발된 22명 외에도 연습을 도와주러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각 포지션별로 흩어져 수비 훈련이 시작됐다. 공을 쳐 주는 코치와 감독은 공을 치기 전에 손을 들어 선수가 공을 보고 있는지 확인했다. 선수들 역시 손을 들어 대답했다.
마운드에 선 투수 장왕근(21)은 낯이 익었다. 그는 국내 유일의 청각장애인 고교 야구팀인 충주성심학교 시절부터 '귀가 들리지 않는 거포'로 유명했다. 그가 친 첫 홈런은 텔레비전 광고로도 만들어졌다. 그가 홈런을 치고도 관중석의 환호를 듣지 못해 2루로 슬라이딩하던 모습이었다. 그는 이날 연습 경기에서 홈런을 치진 못했지만 누구보다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장왕근의 소속팀은 '청주 드래곤이어즈'. 청주 지역의 청각장애인이 모여 만든 사회인 야구팀(야구 동호회)이다. 장왕근은 청주 주성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야구대회 준비 기간에 중간고사가 겹쳐 야구연습하랴 시험준비하랴 정신이 없다. 그래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어서 정말 좋다"고 했다.
농아인야구협회에 등록된 선수는 80명 정도 된다. 성심학교에 재학 중인 10명을 뺀 나머지 대부분은 청주드래곤이어즈, STS보광휘닉스, 시흥로터스 세 팀에 속해 있다. 대학생 몇 명을 제외하면 모두 직장 생활을 한다. 이 때문에 대표팀은 지난 8월 말 처음 소집된 이후 지금까지 10번도 모이지 못했다.
김형섭 농아인야구협회 사무국장은 "프로 선수들은 직업으로 야구를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따로 직업이 있기 때문에 주말에나 간신히 모여 훈련을 한다"고 했다. 국가대표로 선발됐지만 일용직이라 대회에 못 나오게 된 선수도 있다고 한다.
◆소리는 놓쳐도 눈은 예민
청각장애인이 따로 모여 야구를 하는 까닭은 뭘까. 일반 경기에 청각장애인이 뛰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다. 1990년대 후반 해태 타이거즈에서 뛴 박재용은 한쪽 귀에 난청이 심했지만 주전으로 뛰었다. 오히려 눈에 감각이 집중된 청각장애인들이 움직임을 관찰하는 능력이 뛰어나 야구를 더 잘한다는 얘기도 있다.
2002년 충주성심학교 교감으로 있을 때 야구팀을 창단한 조일연 농아인야구협회 부회장(54)은 "청각 장애인이 유리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해 야구팀을 창단했지만 의외로 벽이 많았다"고 말했다.
귀가 어두운 것과 아예 안 들리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컸다. 충주성심학교 선수들은 '콜 플레이(call play·경기 중에 주변 선수에게 상황을 알려주는 것)'를 할 수 없다. 이날 연습에서도 공만 보고 쫓아온 선수들끼리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방망이로 공을 때리는 소리를 듣지 못해 날아가는 방향을 빨리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집중력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주의력이 흩어지면 실책이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대표팀의 훈련을 돕고 있는 세광고 유격수 김재균(17)은 "경기가 길어지면 누구나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럴 때 귀가 들리면 서로 소리를 지르면서 주의를 집중하는데 안 들리면 그게 안 되니까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수비 연습 중에도 한눈을 팔다가 감독이 치는 공을 놓치는 모습이 보였다.
◆프로가 되고 싶다
대학시절 국가대표 4번 타자였던 심성보 코치(35)는 대표팀의 실력에 대해 "냉정하게 말하자면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 정도"라고 했다. 팀의 주축인 충주성심학교에 야구부가 생긴 것도 6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 선수들도 중학교 3학년이 돼서야 운동을 시작했고, 오전 수업을 다 끝내고 오후에만 훈련한다. 어려서부터 야구만 해온 선수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실력은 꾸준히 늘고 있다. 대표팀 에이스인 김성호(19)는 대학야구팀에서도 활동한다. 프로 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프로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겐 야구가 전부다. 낮에는 팀 훈련을 하고 저녁 시간엔 개인 훈련을 한다. 당장의 꿈은 이번 대회에서 일본을 이기는 것이다. 그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 대표팀이 했던 것처럼 멋지게 일본을 꺾어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진 대학야구에서 유일하게 청각장애 선수였지만 내년부터는 성심학교 후배인 김건형, 정현빈도 대학 야구 선수로 활동하게 된다.
이날 영화감독 이석훈(36)씨도 대표팀의 연습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과 후 옥상' 등 상업 영화 2편을 만든 이 감독은 "청각 장애인 야구팀을 소재로 한 상업 영화를 준비 중이다. 주변에선 야구도, 장애인도 흥행하기 어려운 소재라고 말리지만 끝까지 해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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