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아이템이 있다. 기술도 있다. 다만 궁박한 삶이 발목을 잡을 뿐이다. 담보 잡힐 재산은 없고, 그렇다고 똑같이 힘든 처지의 주변 사람들에게 보증 서달라기도 어렵다. 이런 빈곤·저소득층에게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 Credit)'가 해법이 될 수 있다. 사회연대은행 등이 저리·무담보·무보증으로 소액을 빌려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키워드)로 자활에 성공한 이들의 스토리다.

◆터닝포인트가 된 '1000만원'

서울 중구 입정동 '백억조명'.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허름한 공장이지만, '백억을 벌자'는 이정철(40)·영철(37) 형제의 꿈이 담긴 곳이다. 사업 실패로 신용불량자였던 이씨 형제는 2006년 2000만원으로 백억조명을 창업했다. 빚이 남아 있었지만 실용신안등록까지 얻어 둔 낙엽무늬 조명 장식 기술을 썩히는 것도 아까운 노릇이었다.

우선 값싼 중국산 전등이 따라오지 못하게 '고급화' 전략을 세웠다. 반응은 좋았지만 곧 한계에 부딪혔다. 필수적인 기계설비도 갖추지 못해 제작 속도가 너무 느렸다. 두 형제가 온종일 손으로 만들어봐야 10개 남짓. 기계만 구입해도 하루 40~50개는 너끈한데 그걸 마련할 수 없었다. 은행 4~5곳을 찾았지만 신용불량자인 이들에게 모두 손사래를 쳤다.

이때 등장한 구원자가 바로 '사회연대은행'. 인터넷 검색에서 찾았다. 왜 자금이 필요한지, 대출이 성공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담은 신청서를 작성했다. 마침내 지난해 9월, '3개월 거치, 45개월 상환, 7% 금리'의 조건으로 1000만원을 대출받아 300만원짜리 철사를 구부리는 기계와 400만원짜리 땜질 기계를 주문 제작했다. 영철씨는 "남들에게 1000만원은 큰돈이 아니지만, 당시의 우리에게는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말했다.

이영철(38·조명업)

경력

-단체급식업체 7년간 근무

-북한 경수로 건설 외식업체 3년간 근무

-갈비집 창업했다 실패

창업 성공 비결

-형의 기술과 자신의 사업전략을 적절히 조합

-꾸준한 시장조사와 분석으로 미래를 예측

-수년간의 회사 경험으로 서류작업에 익숙해 마이크로 크레디트 심사과정에 유리했음

힘든 점

-매출 확대를 위해선 적극적 영업활동이 필요하나 일손이 부족해 영업을 못 나가고 있음→추가 고용 필요

◆2000만원으로 사장님 된 농촌 아줌마

강화도에 사는 박상수(여·49)씨는 평범한 농촌 주부에서 유기농 농산물 가공업체인 '손맛식품' 사장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이웃 아줌마들과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박씨에게 강화 특산물인 순무 김치가 떠올랐다.

창업 자금은 없었지만 아는 사람으로부터 들었던 마이크로 크레디트 기관인 '신나는 조합'의 문을 두드렸다. 2002년 5명을 모아 100만원씩, 총 500만원을 대출받아 순무 김치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순무 김치 맛이 제각각이었고, 비닐팩에 담아 팔아선 경쟁력이 없었다. 1년 후, 수익은 100만원도 안 됐다. 이럴 바엔 한명이 맡아서 운영하기로 했다. 박씨가 뽑혔다.

재산은 1200만원짜리 집뿐이라 은행 대출은 엄두도 못 낸 박씨는 2005년 다시 한번 신나는 조합의 도움을 받았다. 고들빼기·민들레 등을 이용한 야생초 김치를 만들고, 전문적인 포장 설비 등을 갖추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한 차례 퇴짜 후 마침내 1년 거치, 4년 상환에 연 2%의 저리로 2000만원 대출이 성사됐다. 박씨는 "전문성 없어 보이는 아줌마를 믿고 돈을 빌려준 것이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신나는 조합과 관계는 단순한 채권자·채무자 사이가 아니다. 유통 판로를 어떻게 뚫어야 할지, 포장기계는 어디에서 구해야 할지 등 지속적인 재교육과 컨설팅을 해준다고 박씨는 말했다.

박상수(49·유기농 식품업체)

경력

-전업주부로 농업에 종사

-10년간 '여성의 전화' 상담원 활동

창업 성공 비결

-관심 있는 분야에서 창업 아이템을 발굴

-이웃 아줌마·할머니들과 함께 창업해 적절한 노동 분담

-지속적인 메뉴 개발과 거래처와 돈독한 관계 유지

힘든 점

-여성으로만 구성돼 있어 육체노동이 어려움→농업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

-사업을 어디까지 확대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움→컨설팅 필요
마이크로 크레디트 선정과정

◆마이크로 크레디트 신청하려면…(사회연대은행 기준·타기관도 유사)

①신청공고 확인

―사회연대은행(http://www.bss.or.kr), 신나는 조합(http://www.joyfulunion.or.kr) 등의 각 기관 홈페이지에서 마이크로 크레디트 신청 공고를 확인한다.

―각 기관에서는 정부·기업 등에서 기금이 나올 때마다 연중 수시로 모집한다.

②상담 접수

―접수 기간 동안 각 기관에 문의하면 창업지원 대상 여부, 대출자금 조건, 심사 과정 등에 대해 상담받을 수 있다. 사회연대은행 02-2274-9637, 신나는 조합 02-365-0330

③1차 심사(서류)

―요구하는 서류(사업신청서·주민등록등본·가족관계증명서·주민등록초본·건강보험영수증·소득증빙서류·신용보고서류 등)를 준비해 신청한다.

―자기소개·대출신청 이유·주변 사람과의 관계·현재 사업 진행 현황에 대해 기술하게 돼 있는 사업신청서는 각 기관별로 홈페이지에서 내려 받을 수 있다.

④2차 심사(현장실사/직능평가/선정심사·4~6주일 소요)

―기관의 담당자 1~2명이 서류 확인 차 현장 실사를 나온다. 현재 진행되는 창업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미용업·요식업 등 기술이 필요한 직종의 경우, 직능평가도 병행된다.

―최종적으로 기관 내부 담당자, 창업 전문가 등 5~10명이 종합 선정심사를 갖는다. 이때 사업계획과 포부에 대한 면접 심사도 이뤄진다.

―선정기준으로는 자활의지 및 경영능력, 사업계획의 타당성과 실현가능성, 자금조달능력, 상환의지 등을 본다.

⑤약정/창업교육

―2차 심사를 통과하면, 상환·향후 관리 등에 대한 기관과 계약을 맺는다. 계약 후, 기관에서 기본적인 세무지식·서비스 마인드 등 창업교육을 받게 된다.

⑥사후관리

―기관의 담당자와 일대일 관계를 맺어 사후 관리를 받게 된다. 담당자가 업체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영업 상황에 대해 컨설팅을 해 준다.

마이크로 크레디트 (Micro Credit)

제도권 은행에서 금융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빈곤·저소득층에게 무담보·무보증으로 소액을 대출해주는 제도. 1976년 방글라데시에서 시작된 '그라민뱅크'를 효시로, 현재 세계 100여개 국가에 파급돼 시행 중이다. 영리가 목적은 아니나, 사업의 계속성을 위해 성공할 만한 아이템에만 지원한다는 점에서 자선·기부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