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육시설로… 엄마의 나라로… "우리도 대한민국 아들·딸인데…" | news | 2009-0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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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주말을 보낸 후 베들레햄 어린이집으로 돌아가기 직전, 한 원생이 아쉬운 듯 엄마와 포옹하고 있다. / photo 조선일보 DB |
case 1. 베들레햄어린이집
‘돈 버는 엄마’와 떨어져 주 5일 생활, 주말만 집으로
갓난아기부터 초등생까지… “공동생활하며 안정 찾아”
지난 2월 9일 점심 무렵, 베들레햄어린이집(서울 성북구 성북동)을 찾았다. 가파른 언덕 주택가에 위치한 2층짜리 단독건물에 들어서자 따뜻한 온돌바닥과 구수한 밥 냄새로 기분이 나른해졌다. 마치 누군가의 집에 초대 받은 기분이었다. 2층 주방에선 야채라면 질색하는 아이들의 입맛을 배려한 요리 준비가 한창이었다. 식사를 기다리는 원생들은 거실 TV에서 흘러나오는 애니메이션 반주에 맞춰 신나게 율동하며 놀고 있었다.
베들레햄어린이집이 문을 연 건 지난 2003년. 당초 이곳은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아이를 데리고 가출한 이주여성을 위한 쉼터였다. 그러다가 이듬해 공간을 확충하고 교육프로그램을 보강해 어린이집 형태로 새롭게 단장했다. 주 이용계층은 이주여성 중에서도 경제사정이 특히 어려운 이들이다.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엄마의 사정을 감안해 평일에 자녀를 맡아 기르고 주말엔 집으로 보내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이곳을 지키는 이들은 탈레시오수녀회 소속 수녀 3명과 일반교사 9명 등 모두 12명. 보육비는 따로 없다. 재원은 딱한 사정을 알고 도움을 주는 이들의 기부금과 기업의 후원금으로 충당된다. 현재 원생은 모두 32명. 갓난아기부터 초등학교 2학년생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베들레햄어린이집은 아이들에게 그저 물리적 시간을 함께 보내는 공간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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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아이다마을 영어강사 양성과정. / photo 조영회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불의의 사고로 한국인 남편을 잃은 후 이곳을 찾은 중국인 J씨는 교사들의 따뜻한 보살핌 덕분에 아들을 되찾았다. “시어(싫어)!” 처음 어린이집에 왔을 때 그의 아들 동엽(가명·7)군은 이 한 마디 외엔 할 줄 아는 말이 없었다. 자폐 여부가 의심되는 상황이었지만 검사 결과 자폐는 아니었다. 부모의 이혼 후 가족 간 의사소통이 전혀 없었던 점에 주목한 교사들은 동엽군의 상태를 ‘일시적 언어발달 이상’으로 판단했다. 이후 1년간 동엽군은 집중적인 언어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또래 친구들과 아무 문제없이 장난치고 잘 웃는 아이가 됐다.
이곳 아이들이 ‘돈 벌러 간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우울한 하루를 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사물놀이 공연, 얼음축제 관람 등의 야외체험활동은 물론, 발레·체육·피아노·음악·독서·미술 등 실내에서 진행되는 수업도 매일매일 달라진다. 지난해엔 빠듯한 살림에도 30만원을 들여 전 원생의 신경정신과 건강상담도 받았다. 당시 의료진은 “불우한 환경과 처지 때문에 아이들의 지적 수준이나 건강 상태를 우려했는데 지극히 정상으로 나와 오히려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오희 세라티나 수녀는 “이주여성 자녀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 때문인지 방문객 중 상당수가 원생들의 밝은 모습에 놀라곤 한다”며 “차별을 피하기 위해 만든 용어인 ‘다문화’가 오히려 또 다른 사회적 편견을 낳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case 2. '엄마 나라'로 가는 아이들
돈은 벌어야 하고 맡길 곳은 없고… 결국 고국 친정행
한국 국적 탓에 체류 연장 힘든데도 데려올 엄두 못내
필리핀 여성 K씨는 요즘 딸 소영(가명·12)양을 만날 꿈에 부풀어 있다. 필리핀에 있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소영양이 조만간 귀국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남편과 이혼 후 비정규직으로 일해온 K씨는 불규칙한 퇴근시간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다가 2년 전 소영양을 친정으로 보냈다.
교육비 명목으로 매달 월급의 30% 이상을 필리핀으로 송금해온 그는 최근 소영양을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한국 국적으로 필리핀에선 ‘외국인’ 신분인 딸의 필리핀 체류 연장 비용이 만만찮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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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내린 결정이었지만 K씨의 근심은 여전하다. 딸이 다시 한국에 왔을 때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란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도 한국에서 혼자 지낼 때보단 덜 외롭겠죠.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몇 배는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난 1월 그는 아이 양육비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한국가정상담센터를 방문했다.
국제이혼으로 붕괴된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행로는 ‘엄마의 나라’로 가는 것이다. 특히 필리핀 같은 나라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물가가 비교적 저렴하다는 점 등 때문에 최근 이주율이 부쩍 늘었다. 이들이 태어난 곳을 등지고 외국행을 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가장 많다.
현재 정부가 시행 중인 ‘한부모가족 지원사업’에 따르면 급여대상자로 선정된 한부모가족에겐 아동 양육비와 고교생 학비 등이 정해진 수준에 따라 지급된다. 지원대상자는 △배우자와 사별·이혼한 자 △배우자로부터 유기된 자 △국내 체류 외국인 중 대한민국 국민과 혼인해 대한민국 국적의 아동을 양육하고 있는 자 등이다. 그러나 2인 가족(108만6490원)·3인 가족(140만5540원)·4인 가족(172만4590원)·5인 가족(204만3640원)·6인 가족(236만2690원) 등 가족 수에 따라 월 평균 소득 상한액이 정해져 있어 대상자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 모든 기준을 통과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더라도 받을 수 있는 양육비는 만 10세 미만 자녀당 월 5만원에 불과하다.
반면 다문화가정이 일반화된 선진국은 한부모가족 자녀 대상 복지에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전체 가구의 20%에 해당하는 약 250만가구가 한부모가족으로 구성된 독일의 경우 부모의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자녀가 태어나면 출생 직후 최대 24개월까지 아동양육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외국인이라도 난민이나 망명객 지위를 인정 받았을 경우 수당을 신청할 수 있다. 단 수령액은 대상자의 연간 순소득에 따라 달라진다. 자녀 출생 후 6개월간의 수당은 동일하지만 7개월 이후부터는 부모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수령액이 적어지는 구조다. 부모는 2년에 걸쳐 매월 300유로(약 53만8000원)를 받는 정기수급과 1년간 매월 450유로(약 80만7000원)를 받는 단기수급 중 자신에게 편한 걸 선택할 수 있다(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한부모가족 지원연구’).
양육수당을 받을 수 있는 자격도 까다롭지 않다. 부모 중 한 명이 받을 수 있으며 형편에 따라 수령자를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부모의 혼인신고 여부는 수당 수령과 전혀 무관하다. 다만 △독일에 거주하고 △해당 자녀를 직접 돌보고 있으며 △주당 취업활동 시간이 30시간을 넘으면 안 되는 등의 자격만 갖추면 된다.
case 3. 아시아 이주여성 다문화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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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다마을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율동수업 시간. 반주에 맞춰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밝다. / photo 조영회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이혼 이주여성과 자녀들 공동체 만들어 홀로서기
“밝고 건강… 불행할 것이란 편견 사라졌으면”
미소천사 수빈이, 새침데기 설이, 뽀로로와 짱구를 좋아하는 준희, 소꿉장난에 여념이 없는 석환이와 현경이…. 인천 부평동에 위치한 아이다마을 건물 3층 ‘도담도담’ 놀이방은 하루종일 조용할 새가 없다. 아이다는 ‘아시아 이주여성 다문화공동체’의 줄임말. 도담도담은 필리핀, 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여성과 그 자녀들이 오순도순 어울려 다양한 교육을 받으며 생활하는 공간이다. 도담도담은 ‘아이가 무탈하게 잘 자라는 모양’을 뜻하는 말.
지난 2월 7일 오후 찾아간 이곳에선 40여명의 아이들이 교사와 자원지도자의 도움을 받아 교육에 한창이었다. 도담도담은 엄마들이 한국어와 컴퓨터, 홈패션 등을 배우는 동안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그림책과 놀이기구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날도 27명의 이주여성이 영어강사가 되기 위한 수업에 참여했다. 강의를 맡은 김성미 아이다마을 촌장은 “원래 매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짜리 한국어강좌가 열리는데 이주여성들의 요구로 영어강사 양성과정이 토요일 오후 2시에 추가로 개설됐다”고 말했다.
김 촌장은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인종 차별과 문화적 차이로 힘든 날들을 보낼 거란 생각은 편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일단 엄마들부터 밝게 지냅니다.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죠. 그 기운이 고스란히 자녀에게 전해지니 그늘이 생길 수가 없어요. 부모의 이혼이 곧 아이들의 불행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요.” 그는 “국제이혼 가정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행해지려고 이혼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이혼을 결심하는 거죠. 이들을 보편적 인권의 시각으로 보듬을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다문화가정 자녀의 재능을 끌어내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다마얀(Damayan) 모임이 대표적. 다마얀이란 따갈로그어로 ‘서로 돕는’이란 뜻이다. 인천에 거주하는 필리핀 이주여성들이 만든 이 공동체에선 형편이 어려운 이주여성이 서로의 멘토를 자처하며 도움을 주고받는다. 이 모임이 각계의 후원을 받아 매년 주최하는 ‘리틀 다마얀 페스티벌’은 다마얀 소속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총출동해 춤과 노래를 비롯, 악기 연주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각자의 소질을 뽐낸다. 다마얀 모임 관계자는 “리틀 다마얀들은 페스티벌 참여를 통해 자신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페스티벌을 준비하며 한국인도, 필리핀인도 아닌 어정쩡한 출신성분을 부끄러워하기보다 한국어와 필리핀어, 한국문화와 필리핀문화를 동시에 누리는 데서 오는 풍부한 상상력과 경험을 스스로의 경쟁력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인자 한국심리연구소장은 “아이들은 천성이 순수하고 어른과 같이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부모가 이혼했다고 해서 금세 나쁜 길로 빠지거나 하지 않는다”며 “국제이혼이 양산한 다문화가정 자녀에 대한 시각도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재조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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