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끼 밥보다 따뜻한 시선에 힘이 나요” | news | 2008-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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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보듬는 ‘노란 점퍼’ ‘노숙인 다시서기센터’의 노란 점퍼를 입은 경향신문 임아영 기자가 10일 밤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정근기자 |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수습기자들의 체험 르포
경기불황 한파가 2008년 세밑을 몰아치고 있다. 가난하고 일자리가 불안한 사람들에겐 위기의 계절이다. 경제위기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살아온 이들은 물론 보통 사람들의 삶까지 옥죄고 있다. 그럼에도 서민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겨우살이를 꾸려가고 있다. 경향신문 47기 새내기 기자들이 이들의 고난한 삶을 함께 체험해본다.
지난 10일 서울 갈월동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가 노숙인들을 위해 준비한 저녁 메뉴는 쇠고기 무국과 오징어볶음이었다. 200인분을 위한 양파 껍질을 벗겼다. 양파가 매워 눈물이 났다.
‘다시서기 지원센터’는 1998년 외환위기 때 노숙자가 증가하자 서울시의 지원으로 설립됐다. 2005년에 임영인 성공회 신부가 함께 했고, 서울시가 5층짜리 건물을 마련해줬다. 이곳에서 최대 250명이 잠을 잘 수 있다. 취업지원이 이뤄지고 건강검진과 상담·급식이 진행된다.
저녁식사 준비는 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한다. 오후 6시에 배식이 시작된다. 이날은 우리은행 자금운용지원부 직원 11명이 배식을 도왔다. 매일 200장씩 나눠주는 식권이 금방 동이 났다.
배식을 도운 이종인 부장(50)은 “6개월마다 직원들과 함께 온다. 개인적으로 용기내서 오기는 힘들지만 함께 하면 쑥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센터에선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게 원칙이다. 이종만 팀장(42)은 “식탁에서 서로 마주보고 먹어야 그게 밥을 먹는 거란 뜻”이라고 설명했다.
200인분의 설거지는 만만치 않았다. 7명과 함께 했는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팔과 어깨가 뻐근했다.
오후 7시 배식이 끝나고 3층 접수실로 갔다. 노숙인들이 3~5층 잠잘 곳으로 가기 위해 등록 중이었다. 금세 194명이 등록했다. 날이 쌀쌀했던 지난 주말에는 230명까지 센터로 몰려왔다고 한다. 새 얼굴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젊은 노숙자도 늘었다. 한 부산 출신 청년(26)은 대형마트에서 일하다 정리해고됐다고 했다. 그는 “이 나이에 백수가 됐는데… 차라리 노숙을 하지 부모님한테 의지를 못하겠더라”며 고개를 숙였다.
오후 8시40분 현장 지원을 나갔다. 서울역으로 향하는 길에 ‘노란 점퍼’를 입었다. 센터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노란색 점퍼를 입고 서울역·영등포·서소문·종묘 등을 다닌다. 서울역에는 대합실 안에 150명, 역을 둘러싸고 100명의 노숙인이 있다. 용산·영등포에 각각 70~80여명. 종각 쪽에 50여명이 있다. 노란 점퍼는 ‘다시서기센터’의 상징이다. 서부역 노숙인상담소에서 일하는 박민구씨는 “일부 노숙자들이 거친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몇마디만 얘기해 보면 다들 운다. 그만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노숙생활 3년째라는 문모씨(40)는 “여기 와서 생각이 많이 변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말했다.
전국 노숙인들의 60%는 서울로 올라오고, 그중 60%는 서울역에 모인다고 한다. 노숙인 지원자들은 경제 불황 여파는 아직 거리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라는 것이다. 이형운 현장지원팀장(44)은 “내년 3월에는 현재 고시원·쪽방촌에 있는 사람들이 다 거리로 나오게 될 것이다. 그 사람들은 일이 없으면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데 지금은 그 직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노숙자는 월세방→고시원·쪽방→PC방·만화방을 거쳐 어쩔 수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코스를 밟는다고 했다. 이 팀장은 “지금은 태풍전야의 분위기”라고 표현했다.
겨울 추위는 노숙자들에게 가장 큰 적이다. 그래서 서울역 광장에 컨테이너 박스 3개로 만들어진 노숙인 진료소엔 긴장이 감돈다. 2명의 공중보건의가 하루 80명가량 진료를 맡는다. 노숙자들은 간경화 등 알코올성 질환이 가장 많다. 의사 고모씨(33)는 “진료받고 약을 먹는다 해도 또다시 거리에서 자야 하니까 치료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노숙인들은 사회복지체계에서 소외받은 사람들인데 이들을 게으르고 위험한 사람들로만 생각해 지원이 매우 적다”고 말했다.
밤 12시쯤 거리로 나섰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노숙자들은 ‘노란 점퍼’가 자기 편이라는 것을 안다. 한 노숙자가 노란 점퍼를 입은 내게 다가와 “오늘 처음 오셨나봐요. 이제 자주 뵙겠네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오늘뿐”이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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