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오른 봄바다에 씨를 뿌리다 | news | 2009-04-03 |
＂풍성한 동해 만들자＂ 연구소·어민 똘똘 뭉쳐
산과 들에 봄기운이 짙어지면서 바다에도 '씨 뿌리기'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다가올 가을이 아닌 3∼4년 후의 결실을 기약하며 파란색 목장에 흩뿌려진 씨앗들은 살아 움직여 이리저리 돌아다닌다는 것이 지상과의 차이점일 뿐 풍요로운 수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점에선 똑같다.
지난달 11일 경북 동해 연안엔 8∼10㎝가량의 '넙치' 치어(稚魚) 35만 마리가 일제히 뿌려졌다. 경북도 수산자원개발연구소가 자체적으로 길러 바다와 접한 도내 각 시·군 어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 준 것들이다. 연구소 김태주 소장은 "어민 소득증대를 위해 '기르는 어업'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부디 탈 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기 물고기들의 산실
지난 30일 경북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리 경북도 수산자원개발연구소 전복·생산1동. 5000여㎡(1500여평) 건물 안엔 가로·세로 1.2×6.6m 크기 수조 183개와 지름 6m가량의 원형수조 10개 등 모두 193개의 수조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수조마다 인근 바닷물을 끌어들이기 위한 플라스틱 파이프가 설치돼 있고, 원형 수조 10개엔 물이 차 있었다. 나머지 수조들은 텅 비어 있었다. 물이 찬 곳에서는 0.8∼1㎝가량의 까만 점처럼 떠다니는 감성돔 치어들과 흐물거리는 은색 실처럼 보이는 2㎝가량의 청어 치어들이 자라고 있었다. 연구소 오동희 생산과장은 "감성돔 치어 40만 마리와 청어 치어 30만 마리 정도를 기르고 있다"며 "물이 빠진 수족관은 전복 치패(稚貝·어린 조개)를 키우던 곳으로 지난달 어민들에게 모두 무상으로 나눠줬다"고 말했다.
1998년에 세워진 연구소는 각종 어종의 치어·치패를 기르는 생산1·2동, 치어 먹이와 최적의 배양여건 등을 실험하는 시험연구동, 암·수 성체 어종을 수정시키는 어미 사육동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선 매년 넙치·전복·돔·은어·조피볼락·대구 등 8개 어종의 치어·치패 300만 마리가량이 생산된다. 넙치나 전복 등 일부는 양식도 가능하지만 바다의 자원을 풍부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이 같이 키우고 있다. 수산생물, 수산양식 등을 전공한 연구사 4명이 부화에서부터 7㎝ 이상의 치어(전복 치패 3㎝)가 될 때까지 어종별로 4개월∼1년간 어미를 대신해 이들을 보살핀다.
◆10년 동안 530억원 효과 거둬
수산자원개발연구소는 경북 동해안 연안을 각종 어종으로 뒤섞인 '바다의 목장'으로 만들기 위해 뛰고 있다. 자체적으로 키운 각종 어류의 치어 등을 바다와 접한 울진·영덕·포항·경주·울릉 등 5개 시·군 어민들에게 무상 분양해 방류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올해로 10년째다. 지금까지 모두 130여억원을 들여 2700여만 마리의 치어·치패를 생산, 바다에 뿌렸다.
'씨 뿌리기' 작업은 3월 중순 넙치 치어를 시작으로 연중 계속된다. 넙치에 이어 전복(4월 말∼5월 중순), 청어(5월 말), 감성돔(7월 말), 강도다리(9월 말) 등을 때맞춰 어민들에게 무상 분양하거나 자체적으로 방류한다. 치어들과 달리 전복 치패의 경우 분양받은 어민들이 자체적으로 2∼3개월가량 현지 바닷물을 담은 수족관에 넣어 바다환경에 적응시킨 뒤 방류한다. 이들은 모두 수심 15m 안팎의 바다에 뿌려지며 전복은 7㎝, 치어는 대부분 최소 20㎝ 이상으로 자라야 다시 잡을 수 있다. 연구소측은 "너무 멀리, 깊은 곳에 방류하면 치어들이 큰 물고기들에게 잡혀먹힐 수도 있다"며 "어민들이 올해 뿌린 치어·치패를 다시 잡을 수 있기까지는 적어도 3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바다에 방류된 치어들의 경우 40∼50％ 정도가, 전복은 80％ 이상이 살아남는다. 이들을 다시 잡을 수 있는 확률은 전복이 47％ 정도며 나머지 물고기들은 9∼11％가량이다. 연구소는 "물고기들은 자라서 먼 곳으로 갈 수 있어 상대적으로 행동반경이 좁은 전복보다 다시 잡힐 확률이 낮다"며 "방류사업으로 지금까지 모두 538억원가량의 직·간접적 소득향상 효과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현재 대게, 독도전복, 볼락 등 동해안 특산어종의 종묘생산 기술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어민들 의지가 중요
연구소의 치어·치패 방류 사업이 경북 모든 어촌계에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물량이 한정된 탓에 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거나 어민들의 애착이 강한 곳에 한해서만 혜택이 돌아간다. 30개의 어촌계가 있는 영덕군의 경우 지난달 연구소로부터 받은 6만 마리의 전복 치패를 대부리와 대진3리 어촌계에만 각각 3만 마리씩 나눠주었다.
대부리는 작년 한해 마을어장에서 치패가 자라는 데 해를 끼치는 불가사리, 성게 등 유해 생물을 30t가량 수거했다. 지역 어촌계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대진3리는 "채 자라지 않은 치패를 잡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등 어민들이 마을어장 질서 관리를 위해 똘똘 뭉쳤다. 김영오(66) 대부리 어촌계장은 "작년 5월부터 12월까지 마을의 해녀들은 물속에 들어가서, 또 어선들은 그물에 걸리는 불가사리 등을 매일 건져 올렸다"며 "무상으로 지원해주는 사업을 따내고 마을 전체의 소득을 올리기 위해 합심한 결과"라고 말했다.
영덕군 해양수산과 김경훈 담당은 "아무리 많은 치어·치패를 나눠주더라도 어민들 협조가 없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풍성한 바다가 되기 위해선 질서도 지키고 여건도 만들어 가려는 어민들의 의지가 필수"라고 말했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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