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조각가 강순만(67·서울 삼전동) 씨는 주말이면 화장대 앞에 앉는다. 일요일인 지난달 28일에도 오전 6시쯤 일어나 목욕을 했다. 아침 식사 뒤 화장대에 앉은 강씨는 눈썹 정리부터 시작했다.

얼굴에 스킨·로션 등을 바른 뒤 자외선 차단제인 썬블록을 발랐다. 이를 바르는 이유는 사진을 찍으면 얼굴색이 깨끗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어 잡티 숨기는 BB크림을 발랐다. 얼굴 단장을 마친 그는 양복을 입고 거울 앞에서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시계가 10시 40분을 가리키자 그는 “1시간 전에 도착해야 한다”라며 서둘러 서울의 한 예식장으로 향했다.

공무원 생활을 그만둔 뒤 평일에는 조각을 하고 주말엔 가족과 시간을 보내던 강 씨는 지난해 9월부터 주말마다 주례를 서고 있다. 60대 이상 할아버지·할머니가 만든 '타오름주례단'의 단원이 됐기 때문이다. 타오름주례단은 한국은퇴자협회가 지난해 5월 노년층의 사회활동을 위해 설립한 주례 전문단체다.

강 씨는 요즘 주말은 무조건 비워둔다. 걸을 때도 항상 주례 연습을 한다. 그는 한 달에 7~8번가량 주례를 한다. 한번 주례를 서고 가져가는 돈은 4만~5만원 정도다. 보통 10만원 가량을 받지만 주례단 운영비와 협회후원금 등으로 일부를 쓰기 때문이다.

그는 “수입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주례에 나서고 있다”라며 “그동안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는데 이런 의미있는 일을 하니 기쁘다”라고 말했다.

강 씨는 전직과 외모 등을 고려한 선발 과정을 거쳐 주례단원이 됐다. 선발된 뒤 5주 동안 메이크업·발성법을 배우고 지난해 9월부터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현재 강 씨와 함께 주례를 하는 단원은 30명이다. 단원 선발 때 경쟁률이 6대 1에 이른다. 대기업 임원과 교장·공무원·조각가·시인 등 은퇴 전의 직업도 다양하다. 외국인 신랑·신부가 있으면 영어나 일본어·중국어로도 주례를 한다.

항공사 임원 출신인 정형배(66·서울 성내동) 타오름주례단 단장은 “주례인으로 전직은 교수나 교사가, 외모는 웃는 얼굴이 인기있다”라며 “주례 요청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서 오고 한 달에 50건가량 된다”라고 말했다.

같은 단원인 정해성(69·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씨도 보통 결혼식이 수도권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3~4시간 전에는 대문을 나서야 한다. 정씨는 “과거 살아왔던 인생을 되돌아 보면서 새로운 길을 가는 신랑·신부에게 축복을 해주니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