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나운서 꿈을 향해! 지체장애 1급 임윤희씨의 행복한 도전 | news | 2009-02-17 |
1,926:1. 지난해 모 방송사에서 신입사원 합격자 명단과 함께 발표한 여자 아나운서 부문 경쟁률 수치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엄청난 경쟁률이 말해주듯, 아나운서는 많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업 1순위다. 조리 있는 말솜씨에 세상을 보는 눈, 거기에 끼와 외모까지 갖춰도 웬만해선 되기 어렵다는 아나운서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이가 있다.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는 장애를 가졌지만, 많은 이들과 꿈과 사랑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임윤희씨. 오랜 망설임 끝에 시작한 그녀의 열정적인 도전을 들여다보자.
라디오 들으며 키워온 아나운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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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바늘이 오후 3시 정각을 향해 달려가자, 임윤희씨(28)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돈다. 바싹바싹 마르는 입술을 한 번 앙다물고 나서 헛기침을 해본다. 5,4,3,2,1, 'On Air'에 불이 켜지고 상기된 표정의 윤희씨가 원고를 읽기 시작한다. 매주 수요일 같은 시간에 인터넷 방송 뉴스 리포팅을 하는 윤희씨. 지금 이 순간만큼은 9시 뉴스를 진행하는 베테랑 아나운서보다 더 진지한 그녀다.
임윤희씨의 꿈은 라디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어서다.
"어릴 때부터 늘 라디오를 즐겨 들었는데, 어느샌가 '나도 저 자리에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고, 듣는 이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즐겁게 해주고 싶어서요."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그 꿈을 위해 지난해 7월, 다니던 회사도 그만뒀다. 형편상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예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을 살려 디자이너 공부를 한 뒤, 6년 동안 근무했던 직장이었다. 전국 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1등을 수상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과감히 도전을 감행했다. 두 다리로 걸을 수 없다는, 다수의 사람들과 조금은 다른 조건을 가졌지만 '노력의 힘'을 믿고 용기를 내보기로 한 것이다.
"불투명한 미래를 선택하기까지 솔직히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했죠. 일단 고정적으로 받던 월급을 포기해야 한다는 금전적인 문제도 마음에 걸렸고(웃음), 방송에서 장애인이 아나운서로 활동하는 경우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가 뭔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동안 접어뒀던 꿈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만약 이루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해볼 걸' 하고 후회하느니 지금이라도 해봐야겠다 다짐했죠."
처음에는 안정적인 직업을 두고 왜 힘든 길을 가겠다고 하냐며 말리던 부모님도 그녀의 적극적인 태도와 강한 열정을 보고 마음을 돌리셨다. 평소 "목소리가 예쁘다"고 칭찬해주던 친구들은 "좋은 아나운서가 될 수 있을 거라"며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꿈에 다가간다는 두근거림을 품고, 윤희씨는 첫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수업 위해 대전에서 서울까지, 피곤하지만 값진 열린 배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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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희씨는 요즘 장애인미디어센터 '바투'에서 아나운서 수업을 받고 있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스튜디오에서 직접 방송을 녹화해 방영하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이 시간을 위해 윤희씨는 매번 기차로 대전에 있는 집에서 출발해 서울에 와야 한다. 당산역 근처에 자리한 미디어센터까지 두 시간이 훨씬 넘는 거리를 그녀 혼자 휠체어로 이동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해 이 험난한 길도 즐겁다고 말하는 윤희씨다. 오히려 더 자주 수업이 없어서 아쉽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공부는 꾸준히 해야 실력이 느는 거잖아요. 사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해야 할 게 많아요. 국어부터 시작해서 시험에 필요한 시험 과목도 많은데 그동안 디자인 일만 했으니 아는 게 있어야죠. 특히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 것이 가장 어려워요. 27년간 말해온 습관이 있어서인지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게 힘드네요. 틀린 발음을 해도 자신은 알아채기 힘드니까 옆에서 누군가 바르게 잡아주고 지도해주면 좋을 텐데, 일주일에 한 번 수업으로는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도 부족하나마 배울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항상 조언을 아끼지 않는 '바투'의 국장님도, 함께 공부하는 이들도 윤희씨에게는 모두 고마운 선생님들이다.
지난해, 윤희씨는 즐거운 경험을 했다. MBC-TV '행복 충전-내일은 맑음'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아나운서 '데뷔'를 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서 제 이야기를 다뤘는데, 직접 내레이션을 맡았어요. 처음에는 좀 떨렸는데, 막상 해보니 무척 재밌었어요! 좀 더 잘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도 남네요. 아직까지 많이 부족해서인지 어디가 어려운지도 잘 모르고, 마냥 좋기만 해요(웃음). 실제 방송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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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파 TV 프로그램에서 듣는 자신의 목소리가 '딴 사람인 것처럼' 어색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이번 경험을 계기로 조금의 자신감도 생겼다. 이금희 아나운서처럼 친근한, 그리고 정은아 아나운서처럼 자기 관리에 철저한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그녀의 꿈이 한 뼘 더 커진 것이다.
"아무래도 제가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 보니 방송에서는 힘든 점을 부각시키려는 부분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 외롭거나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PD께서도 제 의견을 많이 반영해주셔서 밝고 솔직하게 잘 나온 것 같아요. 저는 '장애인 아나운서'라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편안한 '그냥' 아나운서가 되고 싶거든요."
사회생활을 하고,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그녀는 많은 이들이 장애인에 대해 '잘 몰랐던 것 뿐', 결코 편견이나 부정적인 시각에 빠져 있지만은 않다는 점을 느꼈다고 한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서 참 많은 사랑과 도움을 받았어요. 처음 보는 이들도 그래요. 생각만큼 특별하게 보는 것 같지도 않고요. 오히려 더 권리를 존중해주고 배려하려 해요. 다만 가까이서 장애인을 자주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에요. 서로 알지 못해서 더 벽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녀가 방송인을 꿈꾸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런 벽을 없애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모두가 직접 장애인과 친구가 될 수는 없기에, 영향력이 있고 대중적인 방송 매체라면 틈을 메우는 데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많은 이들이 그녀를 향해 웃어줬던 것처럼 윤희씨도 전파를 통해 미소를 전달하고 싶다.
장애와 비장애 사이, 벽을 허물고 웃음 전달할래요
기억도 나지 않는 한 살 때, 배에 생긴 물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다가 신경이 손상되는 바람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윤희씨. 장애 앞에서 위축되고 힘들어할 수도 있었지만 '뭐든 할 수 있게' 애써주신 부모님과, 좋은 친구들 그리고 긍정적인 성격 덕분에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왔다. 이제는 그녀의 밝은 기운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눠줄 때라고 생각한다.
"꿈을 버리지 않고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저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는 분들도 있었으면 하고요. 아, 사실 이건 말하기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이기도 한데, 방송이나 사회 참여에 있어 장애인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서로에게 도움을 주면서 꿈을 키워나가고 함께 성장하는 공간도 있었으면 해요."
윤희씨는 아직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 노래를 좋아하는 만큼 뮤지컬도 해보고 싶고, 배려심 있고 자신의 일에 열정적인 남자친구도 만나고 싶단다. 몸은 조금 불편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목소리로 행복을 전하는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윤희씨. 훗날 그녀가 꿈을 이루고,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면, 잊지 말고 꼭 그녀 앞으로 사연을 보내야겠다.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았지만 많이 힘들고 지쳤다고. 이제부터는 편안한 마음으로 당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기쁜 잠을 잘 거라고 말이다. 진심을 담은 나의 사연이 윤희씨에게 전해질 날이 빨리 오길 희망해본다.
레이디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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