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비탈에 108층 '다랑논'… "함께 보존해요" | news | 2009-0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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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랭이마을 다랑논 전경./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
경남 남해 다랭이마을의 한마음 운동
도시민 월(月)5000원씩 내면 쌀·마늘 등 작물 보내줘
명승 15호·테마마을 지정 지난해 23만명 다녀가
24일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다랭이마을. '산비탈의 계단식 논'이란 뜻의 다랑논들은 벼 대신 어른 무릎 높이만큼 자란 마늘과 시금치 등으로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노란 유채꽃들도 어우러져 봄 정취가 완연했다. 마늘밭을 돌보고 있던 유복심(73) 할머니는 "잘 자라라고 잡초를 뽑아주고 있다"며 "5월 말쯤 수확해 내다 팔 것"이라 했다.
다랭이마을은 '삿갓을 씌우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다'는 의미의 '삿갓배미'(실제는 10㎡)로부터 크게는 1000여㎡의 논까지, 680여개의 논이 해안선에서 마을 뒷산인 설흘산(해발 482m)과 응봉산(해발 412m) 7부 능선까지 108층의 계단을 이루고 있는 다랑논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이 다랑논에는 한 뼘의 논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조상들의 고단했던 삶이 묻어 있다. 가파른 비탈에 석축을 쌓아 논을 만들었고, 석축은 더 많은 농경지를 확보하기 위해 수직으로 곧추 세워졌다. 논두렁은 내륙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둑판식 배열이 아니라 산비탈 곡선을 따라 유려한 곡선을 이루는 게 특징이다.
58가구 150여명이 모여 사는 이 마을과 다랑논들은 울창한 뒷산, 앞쪽의 쪽빛 바다와 어우러져 뛰어난 경관을 보여준다. 그 덕에 2002년 농촌진흥청으로부터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됐고, 이후 도시민들을 불러들여 농촌체험 사업도 벌여왔다. 당시 주민들은 '다랑논이 있는 마을'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가천마을'이던 마을 이름도 자신들 말투를 따 '다랭이마을'로 바꿨다. 2005년엔 문화재청으로부터 '명승 15호'로도 지정받았다. 덕분에 작년 이 마을 방문객이 23만명이나 됐고, 올해는 25만명 이상 다녀갈 것으로 예상된다. 주민들은 마을 방문객들을 '다랭이마을 회원'으로 부르며 이메일 등으로 마을 소식도 알려준다.
이런 마을 주민들이 최근 다랑논 보존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다른 농어촌 마을과 마찬가지로 노년층이 주민 다수를 이루면서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돼, 최근 노는 땅이 늘어나고 논두렁이 무너져 '명승'의 경관이 훼손되고 있어서다. 이 마을 주민 150여명 가운데 60대 이상 노년층이 70%나 되고, 20대는 아예 없다. 김효용(38) 마을 사무국장이 성인 가운데 최연소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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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남해군 남면 다랭이마을의 다랑논 마늘밭에서 김효용 마을 사무국장(오른쪽 끝)과 주민들이 잡초를 뽑으며 활짝 웃고 있다./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
2007년, 보다 못한 김주성(52) 당시 테마마을추진위원장 등 주민들이 '다랭이 한마음 나누기' 회원 모집에 나섰다. '다랭이 한마음 나누기'는 도시 지역 개인 또는 단체가 매월 5000원(연 5만원)을 보내면 마을에서 이를 기금으로 삼아 논두렁을 보수하고 유휴지에 농작물을 심어 수확한 뒤 도시민들에게 보내주는 사업이다.
일종의 '내셔널 트러스트'(시민들의 자발적 모금·기부·증여를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문화 자산을 영구 보존·관리하는 시민환경운동)인 셈이다. 주민들은 한마음 나누기 회원들에게 다랑논에서 수확한 마늘 5㎏씩을 7월에 보내준다. 또 10월에는 쌀 5㎏씩을 보내고, 다음해 2월에는 시금치와 겨울초, 톳 각 1㎏씩을 보내준다. 김주성씨는 "명품 농촌마을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과 고민을 거듭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의논한 끝에 '한마음 나누기'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마을 홈페이지를 통해 '한마음 나누기'를 알렸고, 도시 지역 '다랭이마을 회원' 1000여명에게 메일을 보냈다. 첫해 100여명에 불과했던 회원은 작년 200여명으로 늘어났다. 다랭이마을 회원을 중심으로 도시민들 참여가 잇따랐고, 농촌진흥청과 삼성전기 등 자매결연 사업장의 자발적 동참도 이어져 1년 만에 2배로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마을을 살리기엔 여전히 부족한 숫자라는 게 주민들의 고민이다. 김효용 마을 사무국장은 "고령화 탓에 42㏊의 마을 농경지 가운데 설흘산 7부 능선 쪽을 중심으로 유휴지가 40%에 달한다"며 "보내준 회비로 논두렁이나 석축을 보수하고, 산비탈이라 농기계 사용이 어려운 곳에는 메밀이나 유채 등을 심어 마을이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게 하려면 회원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그래서 올해는 6월 말까지 1000명을 모집하기로 목표를 세우고, 최근 대대적인 회원모집에 나섰다. 며칠 전 3년째 회원으로 등록한 국립농업과학원 김은미 지도관은 "농사를 짓지 않으면 논이 결국 쓸모없게 된다"며 "아름다운 다랑논을 보존하겠다는 취지가 굉장히 좋아 주변에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남(51) 다랭이마을 위원장(이장)은 "다랑논을 보존하는 게 결국 아름다운 다랭이마을을 지키는 것"이라며 "한마음 나누기를 통해 빼어난 경관을 보존하고, 농사와 손(手)그물 낚시 등 다양한 체험활동도 즐길 수 있는 명품 마을로 지켜가겠다"고 말했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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