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脫노숙'의 길을 찾는 사람들 | news | 2009-0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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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라는 말을 떠올릴 때 '아름다운 노년'보다는 경제문제로 두려움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현실이다. 비단 은퇴만이 아니다.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만 같은 '인생의 바닥', 일상에서 언제나 달고 사는 '스트레스', 그리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 등. 인생이란 고개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두려움의 각 관문들을 효과적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출구전략에 대해 살펴본다. 이른바 '인생 출구전략'이다. 그러고 보면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출구전략이란 경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하철 9호선에서 보수 및 관리작업을 하는 김모(58)씨. 원래 일용직 건설현장 잡부였지만 공사가 끝나고 건설사와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가 길거리생활을 청산하고 이 직업을 가지기까지 4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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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것은 지난 2005년. 갑자기 닥친 경제적 어려움이 원인이었다. 김씨는 빵 한조각 사 먹을 여유가 없는 노숙인 신세가 됐다.
5개월 노숙생활 끝에 찾게 된 상담보호센터가 노숙생활의 전환점이 됐다. 쉼터에 입소한 김씨는 공공근로에 참여하며 노숙기간 동안 상한 몸을 추슬렀다.
2007년 노숙인 일자리 갖기 사업에 참여한 김씨에게 주어진 현장은 지하철 9호선 건설공사장.
적지 않은 나이에 한번도 해보지 않은 건설현장 잡부 일이었지만 고마운 일자리였다. 고정적인 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저축도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주택공사에서 제공하는 매입임대주택 입주자격도 부여됐다. 가족과 재결합을 원하던 김씨는 매입임대주택을 선택했다. 보증금 314만원짜리 33㎡ 남짓한 공간이었지만 가족과 다시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꿈만 같았다.
빵 한조각 살 돈이 없어 고생했던 김씨는 번 돈의 60%를 저축한다. 김씨와 부인의 벌이를 합쳐 한달 저축액은 110만원 정도다. 앞으로 노후까지 10년의 시간을 새로 설계하며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월세방일지라도 내집을 마련한다는 꿈도 차분히 다지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보금자리는 2년 후에는 자활을 꿈꾸는 동료 노숙인에게 물려 줘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딸도 시집을 보냈다.
◆일과 집,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다
서울시에서는 노숙인들이 탈(脫)노숙을 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주거와 일자리다.
7월 말 현재 '일자리 갖기'사업으로는 356명이, '특별자활'사업으로는 643명이, '공공근로' 참여는 141명이, '자활영림단'사업에는 42명이 참여하고 있다. 스스로 일자리를 구한 노숙인도 583명에 달했다.
전체 노숙인이 3000여명인 것을 고려하면 상당수의 노숙인들이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일자리 갖기사업은 근로능력이 있는 노숙인을 대상으로 하며 건설현장, 녹지관리, 공원 및 시설물 청소, 복지업무 보조 등의 일자리가 주어진다.
거동이 불편하고 나이가 많은 경우 반나절(하루 4시간) 일을 하면 하루 2만2000원의 일당을 지급하고, 능력이 돼서 하루 동안 열심히 일을 하면 6만원도 받을 수 있다.
특별자활사업은 근로능력이 미약한 노숙인이나 거리생활자 중 쪽방 생활자를 대상으로 하며 시설 주변 환경정비 및 단순취로, 급식 보조 등의 일자리를 제공한다.
자활영림단사업은 산림청의 간벌사업에 참여하는 방식인데 서울시의 경우 울진, 인제, 봉화, 영월 등 4개 현장과 연계해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각 사업지에 간 노숙인들은 지역에 동화해 지역주민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공공근로사업은 일반 저소득층과 같이 개별 신청을 받아 개별 선정한다.
주거지원사업도 있다.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안정적인 주거 역시 노숙인들의 재활을 위해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는 '자활의집'을 지원하고 있다. 2년간 전세 주택을 지원하며 가구당 4000만원 이하의 전세권도 설정해 준다. 현재까지 140가구를 넘어서고 있다.
주택공사에서는 매입임대주택을 지원한다. 2년간 공공임대주택을 지원하는데 보증금은 250만~350만원선이다. 관리비는 본인 부담이다.
서울시 복지국 관계자는 "노숙인들이 자활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별자활사업의 경우 지원을 받은 후 쪽방이라도 구하고 주민등록을 살리도록 하는 등 스스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 길을 찾는 노숙인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의 노숙인은 6월 말 현재 3126명이다. 이 가운데 보호시설(쉼터) 생활자는 2032명, 상담보호센터 방문자는 406명이고, 거리생활인은 688명이다.
각자 처한 상황도 다르고 겪는 고통도 남다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자활의 의지를 불태우는 이들이 많다.
서울시에서는 쉼터 입소 노숙인들의 저축을 장려하고 각 쉼터의 체계적인 금전관리를 유도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노숙인 저축왕 선발대회'를 실시했다.
이 대회는 지난해 3월부터 10개월간의 저축 장려 활동을 결산하는 것이었다. 노숙인 저축왕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월 저축액이 20만원 이상이어야 하고 주택청약저축에 가입해야 하는 등의 조건이 붙었다.
그럼에도 선발대회에는 입소노숙인 95명이 응모, 34명의 우수저축자가 선정됐다.
이들에게는 시상 외에도 ‘희망 플러스 통장’에 가입할 수 있게 했다. 이 통장은 본인이 약정한 월 저축액을 입금하면 서울시에서 같은 금액을 또 한번 저축해준다.
선발기간 10개월 동안 21개 쉼터(1280명 생활) 노숙인들의 저축액이 10억7000만원이나 증가했다. 개인부문에 응모한 95명의 저축액이 4억2000만원이므로 응모하지 않은 사람들의 저축액도 더불어 6억5000만원 증가한 것.
의지만 있다면 '노숙인 신용 리스타트'사업을 통해 신용회복도 이룰 수 있다. 이 사업은 개인파산 및 면책을 동시 지원한다. 지난해에는 396명(140억1600만원)이 수혜를 받았고 올해에는 149명이 면책을 받았다.
5000만원의 부채 때문에 집을 나와 여인숙을 전전하던 김모(37)씨 역시 이 사업을 통해 면책을 받고 새로 시작한 경우다. 2007년 쉼터에 입소할 당시 그는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사실혼 관계인데다 부인은 임신 8개월이었다. 지금은 딸에게만은 쉼터생활을 물려주지 않는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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