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도 안 낳는데 셋째부터 혜택이라니…” | news | 2009-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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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과 가정 양쪽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워킹맘들이 10월23일 서울 중구 충정로 문화일보 1층 커피숍에서 일과 육아, 저출산 문제 등에 대해 솔직 담백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서은주 우리투자증권 사원, 김정은 서울시청 조직기획팀 주임, 신숙희 보습학원 강사, 김혜옥 서울YWCA 간사. 정하종기자 |
대한민국 여자들은 애를 낳기 싫어한다고?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었다.99.9%의 여성들은 예쁜 아기 엄마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도 왜 출산율이 세계 꼴찌 수준인 1.19명이냐고. 일을 하면서 엄마 노릇도 해야 하는 ‘워킹맘(working mom)’에게 한국 사회는 너무나 버겁기 때문이다.
창간 18주년을 맞아 문화일보는 저출산 극복의 시대적 화두를 풀기 위해올해 출산한 서은주(26) 우리투자증권 사원과 김정은(34) 서울시청 조직기획팀 주임, 18년 전 출산한 김혜옥(45) 서울YWCA 간사와 신숙희(44) 보습학원 강사 등 워킹맘 4명을 10월23일 초청해 좌담회를 가졌다. 진솔한 대화를 통해 여성에게 일과 육아 및 가정의 의미, 출산율 제고를 위한 제언 등을 들어 봤다.
참석 : 김혜옥 (45·서울YWCA 간사), 신숙희 (44·보습학원 강사), 김정은 (34·서울시청 조직기획팀 주임), 서은주 (26·우리투자증권 사원)
사회 : 이제교 사회부 차장
# 워킹맘에게 육아는 너무 힘들어
▲ 서은주 = 7월에 아들 낳고 3개월의 육아휴직을 마친 뒤 이번 주부터 출근했다. 아기는 수원에 사는 시어머니가 봐 준다. 평일엔 가지 못하고 주말에만 보러 간다. 눈에 밟히는데, 매일 돌보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처음 아기를 떼어 놓고 올 때 자동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일하면서 아이 키우기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 신숙희 = 우리는 그 시절 다 지나갔는데…. 지금 큰애가 문화일보와 같은 나이인 18세 고3이고 작은애가 고2다. 한창 일할 때는 어린 아이들을 집에 가둬 놓고 학원에 나가기도 했는데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니 힘을 내라.
▲ 김정은 = 출산휴가 마치고 9월1일자로 복직했다. 아기가 낮과 밤이 바뀌어 무척 힘들었다. 친정엄마가 지방에서 올라와 도와준다. 조선족 보모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엄마가 힘들어 하셔서 죄송하지만 그래도 피붙이가 최고다. 나도 할머니가 된 후 내 일이 없고 능력이 된다면 딸의 아기를 봐 줄 생각이다. 지금 엄마가 있어 일과 살림을 꾸려갈 수 있었지 아니면 못했을 것 같다.
▲ 김혜옥 = 나는 할머니가 돼도 아이는 안 봐 준다. 스스로 헤쳐 가야 한다. 노후는 나를 위해 쓰고 싶다. 애들 키우고 살림하느라 그동안 주말에도 쉬지 못했다. 배우고 싶었던 공부, 가고 싶었던 곳,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며 마음껏 살고 싶다.
#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회적 성취
▲ 김정은 =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전업주부가 되면 좁은 세상에 갇혀 지낸다. 자식은 최고로 소중한 존재지만 일과 사회적 경력, 성취감도 중요하다. 육아휴직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라고 해도 경력이 단절되면 아무래도 불리하다.
▲ 김혜옥 =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어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뒀다. 애들이 초등학교 5, 6학년이 되면서 이대로 집안에서 살림하는 평범한 아줌마로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녀교육 문제도 있고 해 정시퇴근이 비교적 가능한 시민사회단체에 일자리를 구했다.
▲ 신숙희 = 당장 일을 그만두면 수입도 반으로 줄어든다. 경제적 여유를 위해서도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 김혜옥 = 그런데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다 보니 능력의 한계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젊은 친구들보다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인다.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획을 내놓아야 한다. 누구는 ‘톡톡’ 튀는 발상을 내놓는데 답답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마 40대 워킹맘들은 내 얘기에 대부분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 공보육 시대, 육아시스템 구축해야
▲ 김혜옥 = 워킹우먼은 늘어나는데, 워킹맘이 되는 것은 두려워한다. 남들보다 훌륭하게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여건은 그렇지 않다. 자신도 경쟁에서 밀리지 말아야 하고, 아이도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어려워 보이니까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현실적이다. 그래서 이제는 아이를 국가가 길러 주는 공보육 개념이 도입돼야 한다고 본다.
▲ 서은주 = 워킹맘에게는 보육시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야 출산율이 올라간다. 출근하면서 아기를 맡기고, 퇴근하면서 데려갈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지금은 아이를 낳아도 국가적 지원이 별로 없다. 세 자녀 이후부터 혜택이 있는데 둘도 안 낳는데 무슨 셋이냐.
▲ 김정은 = 생후 3개월부터 받아 주는 고품격 보육시설을 늘려야 한다. 방과 후 교육 프로그램도 많아져야 하고.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출산율이 올라간다. 어느 지역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돈을 준다고 하는데 장기적인 근본대책은 아니라고 본다.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으면 저출산 현상은 계속된다.
# 남편들은 다 똑같아
▲ 김정은 = 나는 남편을 ‘시키는 일만 하고 시키지 않는 일은 안 하는 존재’로 규정했다.(일동 웃음)
▲ 서은주 = 우리 남편도 마찬가지다. 가사를 제일 많이 도와준다고 스스로 주장하는데 절대로 먼저 집안일에 나서지 않는다. 혼자 알아서 했으면 정말 바랄 것이 없겠는데…. 게다가 가끔 ‘공부를 더 하고 싶다. 유학 가도 될까’라고 물어본다. 혼자 아기를 키울 자신이 없는데 야속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김혜옥 = 친구들 얘기를 들어 봐도 남편들은 ‘나 피곤해’라고 말하고 소파나 침대로 직행한다. 정도 차는 있겠지만 집안일은 당연히 아내 몫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바가지를 긁어야 마지못해 움직인다.
▲ 신숙희 = 그럴 때는 ‘나도 피곤하다’면서 누워 버려라. 특히 주말에 남편이 꼼짝도 하지 않으면 이불 속에서 아예 나오지 마라. 남자들 배고프면 알아서 밥도 잘 해 먹는다. 길들이기 나름이다.
▲ 김혜옥 = 그런데 남자 나이가 마흔 살이 넘으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 언제까지 샐러리맨 생활을 하기도 그렇고, 용기를 내 새 일에 도전하는 모습도 보기에 좋다. 집안 경제가 흔들리지 않는 한도에서 사업을 하겠다면 그것도 괜찮을 듯하다.
# 대한민국 여성들은 ‘알파맘’
▲ 신숙희 = 고3 아들 논술시험 준비하느라 3개월 동안 1000만원이 들어갔다. 두 돌 때부터 학습지를 했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전국을 돌면서 현장학습을 시켰다. 사교육에 종사하고 있지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학교에 지원하려면 특별강사에게 하루 2시간씩 나흘 배우고 보통 40만원은 줘야 한다. 입학사정관제 학교는 돈 없으면 들어가기 어렵다.
▲ 김혜옥 = 요즘은 부모가 어떻게 대입 정보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시험 당락이 좌우된다. 그런데 밖에서 일하다 보면 정보를 제공해 주기 어렵다. 애들한테 등대 역할을 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든다.
▲ 서은주 = 아기한테는 정말 모든 것을 다해 주고 싶다. 얼마 전에는 100만원짜리 유모차를 샀다. 유아용 책도 샀는데 한 세트에 최소 50만원 하더라. 단계별 시리즈인데 2단계까지 샀다. 조금 과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깝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니까.
▲ 김정은 = 사실 여러 가지 얘기가 나왔는데 저출산, 보육시설 부족, 육아 부담, 사교육 시장 등은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는 공통요소가 있는 것 같다. 엄마가 모든 것을 다 해 줘야 제대로 크고 자라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사회 시스템의 선진화로 워킹맘들의 고민이 사라지고 둘, 셋 이상씩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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