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급 110만원 '간병인 사장님' | news | 2009-10-30 |
자활명장상 받는 '늘푸른간병공동체' 김공순씨
백발의 할머니는 무표정했다. 흰 환자복을 입고 오도카니 침상에 앉아 멍하니 허공만 응시했다. 노인성 치매로 입원한 지 6년. 반쯤 열린 입가에 침이 흘렀다. 엄지손가락으로 침을 닦아주던 김공순(47)씨가 물었다.
"딸은 왔다 갔소?"
"온댜."
"전화는?"
"온댜."
27일 오후 1시 전남 영광군 영광기독신하병원. 별관 3층의 노인중풍·치매병동(330㎡·100평) 한가운데 24개 병상마다 노인들이 눕거나 앉아 있었다. 40명의 이곳 입원 환자 대부분이 치매와 뇌졸중, 뇌경색을 앓고 있다.
김씨가 잰걸음으로 병실을 돌아다녔다. 굳은 얼굴로 눈만 깜빡이는 뇌졸중 환자를 익숙하게 일으켜 세우더니 굳어진 몸을 주물러 풀어줬다. 등을 살살 긁어주자 노인의 입가에 가는 미소가 떠올랐다. 곧이어 두 눈을 꼭 감고 미동도 없는 뇌경색 노인 환자한테 슬며시 다가간 김씨는 어느새 일회용 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비행기가 날 태우러 왔어!"
옆에 누운 70대 치매 할머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병실 밖으로 나가려던 노인은 만류하는 김씨를 거칠게 뿌리치며 욕설을 했다. 10여분의 실랑이 끝에 할머니를 병상에 눕힌 김씨 입에서 얕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김씨는 두 손으로 자신의 허리를 주물렀다. "실은 지금 병가(病暇) 중이에요. 지난달 환자를 일으키다 허리를 삐끗해 디스크 수술을 받았는데, 집에만 누워 있자니 답답하고 병원이 잘 돌아갈까 마음도 편치 않아서 간간이 나와요."
김씨는 간병업체인 '늘푸른간병공동체' 대표다. 다른 요양보호사 9명과 함께 주·야간 근무조로 나눠 병상을 지킨다. 주간 근무조가 아침 8시에 나와 오후 5시에 퇴근하면, 야간 근무조가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교대한다. 근무조는 4일 주기로 바뀐다. 정해진 휴일은 따로 없다.
지금은 간병업체 대표지만, 원래는 3남매를 둔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1997년 7월 광주광역시의 한 공사판에서 일하던 남편이 모처럼 가족을 만나러 영광으로 향하다 버스 안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 뒤로 1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잠을 못 자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가만히 있어도 주르륵 눈물이 흘렀지요."
실의에 빠진 김씨를 일으켜 세운 건 남은 자식들이었다. 김씨는 초·중학생이던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들어갔다. 식당일부터 가사 도우미까지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2001년 8월, 김씨는 읍사무소의 소개로 영광지역자활센터에서 정부 자활근로사업의 하나인 요양보호사로 일하게 됐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김씨는 한 달에 90여만원을 받았다.
"식당 월급과 별 차이도 없고, 어르신을 돌보는 일이라고 해서 별생각 없이 시작하게 됐죠. 그런데 생각만큼 녹록지 않더라고요."
영광기독병원에서 간병일을 시작한 그는 "중환자실에 들어서자마자 후회했다"고 했다. "구린내와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어요. 여기선 피를 철철 흘리고 있고, 저기선 아프다고 울부짖고…. 무섭고 끔찍했어요."
도무지 못 할 것 같은 일이 시간이 지나며 차츰 손에 익어갔다. 그의 첫 환자는 정모(당시 72세) 할아버지였다. 눈 뜨고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할아버지였다. 김씨가 매일 수염을 깎아주고 목에 고인 가래를 뽑아줬다. "두 달쯤 지나니까 정이 들더라고요. 아이를 키우는 느낌이랄까. 할아버지가 조금만 아픈 것 같아도 속상하고, 혈색이 좋아지면 나도 모르게 웃고…."
그해 초겨울 아침, 김씨가 출근해 보니 정 할아버지의 병상이 휑하니 비어 있었다. 간호사가 "간밤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김씨는 "속상하고 허무해서 빈 침대에 엎드려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 뒤로도 많은 분이 돌아가시는 걸 봤어요. 아침밥 잘 드시고 자리에 누워 곧바로 돌아가신 분, 갑자기 피를 토하고 떠나시는 분도 봤지요."
간병일이 몸에 익으면서 처음엔 그렇게 야속했던 치매 환자들 마음이 이해가 갔다. "치매 환자는 사람 좋게 웃다가도 금세 돌변해 욕하고 뺨을 때리죠. 근데 그건 진심이 아니거든요. 병 탓이지요."
김씨는 2002년 간병사업체를 꾸리며 자활센터에서 독립했다. '사장님'이 됐지만 일과는 바뀌지 않았다. 김씨는 매일 40여개의 기저귀를 갈고 노인들의 몸을 닦아준다. 운신을 못하는 노인들은 세끼 밥을 일일이 떠먹여 준다. 1시간마다 병실을 돌며 욕창에 걸리지 않도록 노인의 몸을 뒤집고 주무른다. 노인들을 부둥켜안고 병동 여기저기를 함께 걸으면서 '걸음마'도 시킨다.
처음에 3명이던 직원은 지금 9명으로 불었다. 김씨는 2005년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벗어났다. 그의 한 달 벌이는 110여만원이다. 김씨는 "처음엔 힘들었지만 보람을 느끼며 살아왔다"며 "간병 일로 번 돈으로 자식들을 다 키워냈다"고 했다.
김씨는 다음 달 10일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으로부터 '자활명장상'을 받는다. 정부의 자활사업에 참여해 성공을 거둔 이에게 올해부터 주는 상이다.
이날 오후 3시쯤 병동 한쪽의 노래방 기계에 치매 노인들이 몰려들어 마이크를 잡았다. 노래 가사를 외우며 기억력을 되살리는 음악 치료다. 김모(63) 할아버지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목청껏 불렀다. 쏟아지는 박수 소리에 들뜬 김 할아버지는 "왕년에는 잘나가는 마도로스(선원)였다"고 자랑했다. 누군가 "새우 잡았다고 했잖아요" 묻자, 그는 "배 타는 건 마찬가지"라고 넉살 좋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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