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보다 자립 바라는 미스 맘마미아 | news | 2010-0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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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육 미혼모들이 절실히 바라는 건 돈을 지원 받는 것보다 일할 수 있는 자립이다. |
최근 2030 '양육 미혼모'들이 늘고 있다.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정부도 이들에게는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 미혼모 지원은 입양기관의 통계에 의해 증가하는 것으로 '보이는' 10대 미혼모에 집중 돼 있다. 올해 미혼모 지원 예산으로 275억원이 배정됐지만 이 예산은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24세 이하 미혼모에게만 지원된다. 2030 양육 미혼모들이 받는 지원금은 월 5만원 정도가 전부이다. 게다가 사회적 편견의 벽도 높아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다. 우리 사회에서 투명인간으로 취급 받는 미스 맘마미아들의 바람은 무엇일까?
김현민씨(30ㆍ가명)가 휴대전화를 열자 바탕화면에 '포근이 D-day 77'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얼마 전 산부인과에서 촬영한 포근이(태명)의 초음파 사진이다. 아이 사진을 보여주며 김씨가 대뜸 물었다. "아이랑 저랑 닮은 것 같나요?" 포근이가 태어나기로 한 날은 4월3일. '예비 미혼모' 김씨는 포근이를 혼자 낳아야 한다. 김씨는 "같이 있어도 두려울 것 같은데, 혼자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잠이 안 온다. 당장 진통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아이 아빠와는 임신 5개월 되던 때 헤어졌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고, 임신 소식에 기뻐하던 남자였다. 그러나 김씨의 배가 불러올수록 남자는 변해갔다. 낙태를 강요했고, 주먹으로 배를 때리기도 했다. 폭력과 폭언에 시달리던 김씨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남자와 결별했다. 남자는 헤어지던 날까지도 '양육비 받을 생각하지 마라', '새 출발에 방해되지 않게 해달라'라고 했다.
한때 김씨는 너무 힘들어 흔들리기도 했다. 마음을 추스린 김씨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김씨는 "내 선택에 따라 포기될 수도, 지켜질 수도 있는 무방비 상태인 힘없는 아이를 지켜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매일 밤마다 뱃속에서 움직이는 아이에게 손을 얹고 "엄마한테 와줘서 고맙다. 많이 노력 하겠다"라고 말한다고 했다.
김씨는 얼마 전 7년간 일하던 회사를 그만뒀다. 배가 불러오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혼수자금으로 모아뒀던 돈으로 아이와 함께 살 작은 원룸을 구했다. 원룸은 일부러 부모와 떨어진 곳에 얻었다. 막막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 미혼모 시설에도 전화해 여러 차례 상담을 받았다. 시설에서는 입양을 권유했다. 김씨는 "상담이라고 받으러 가면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미혼모에게 입양을 권한다. 너무 무책임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논의하는 게 굉장히 모순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 조사결과 김현민씨처럼 미혼모 가운데 양육할 뜻이 있는 양육 미혼모는 1984년 당시 5.8%에서 2005년 31.7%까지 늘었다. 미혼모자 지원시설인 애란원의 2007년 조사에서는 65%이상이 양육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양육 미혼모가 늘어나고 있지만, 지원 수준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자리걸음이다. 한부모가족법에 의해 저소득층에 한정해 지원이 되는 정도이다. 김현민씨처럼 혼자 아이를 낳아야 하는 미혼모에게는 산후도우미 같은 지원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보험료 납부액이 지원 기준보다 130원 많다는 이유로 지원에서 제외됐다. 무엇보다 김씨같은 미스 맘마미아들은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이다. 경력을 살려 일하고 싶지만, 벽은 높고 두텁다.
다섯 살 된 아들을 키우는 '성현맘' 정유미씨(37ㆍ가명)는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다른 양육미혼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운이 좋은 편이지만, 마음고생은 더 컸다. 사내커플이던 정유미씨는 성현이를 갖기 전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는 당연히 낳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리자 남자가 탐탁지 않아 했다. 그는 "아이를 지우면 계속 만나주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씨는 아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회사는 사직을 권고했다. 남자가 대신 퇴사하는 것으로 정씨는 일자리를 유지했지만, 배가 불러올수록 동료 직원들의 편견에 맞서야 하는 '뻔뻔함'이 필요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부모는 정씨의 아이를 놓고 이혼직전까지 갈 정도로 대립했다. 집을 떠나야 했다. 아이와 함께 살 집을 구하러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가진 돈으로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집은 지하실 아니면 옥탑방 밖에 없었다. 결국 미혼모 시설에서 아이를 낳았다. 출산일에 맞춰 예약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전국 각지의 시설에 수없이 전화를 걸어 자리가 있는지 확인했다. 10대 미혼모만 받는다며, '양육'을 원하는 30대 미혼모는 받아주지 않는 곳도 있었다.
정씨는 그래도 자식인데 라며 감싸주던 어머니 덕에 집에서 살고 있다. 정씨가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가 성현이를 돌봐주는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씨는 "저는 운이 좋아 가족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이렇게 할 수 없는 양육미혼모들이 많다. 정부 지원도 기초생활수급권자로만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수급을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자립'인데 이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40년 전 오스트레일리아 미혼모들 역시 아무런 사회 보장 혜택이 없어 입양을 많이 시켰다. 양육을 원하는 미혼모들은 '싱글맘과 싱글맘 아동협회(Council of Single Mothers and their Children : CSMC)'를 만들어 목소리를 냈다. 미혼모 자녀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입법 활동 뿐 아니라 일하면서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게 해달라며 정부에 보육서비스를 요구했다. 당사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자 정부와 지역사회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정책 지원의 범위도 넓어졌다.
국내에서도 미혼모들이 조직을 만들고 직접 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드물었다. 대부분 10대 미혼모를 위한 지원 단체 성격이 짙다. 김현민씨와 정유미씨 등이 활동하는 '한국미혼모가족협회'가 바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양육 미혼모들이 모여 만든 한국판 CSMC 인 셈이다. 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씨는 "우리 단체가 40년 전 호주에서 꾸려진 '싱글맘과 싱글맘 아동협회( CSMC)처럼 시작은 미미하지만 큰 성과를 내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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