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들에게 안부편지 쓰는 의사선생님 | news | 2010-04-30 |
서울과 인천에서 관절염 전문병원인 힘찬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수찬(李壽燦·48) 원장은 13년째 매달 자신이 돌본 환자 100여명에게 안부 편지를 보내고 있다. 편지 내용은 환자의 건강 회복에 대한 질문, 병원에서 벌어지는 재미나는 이야기,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상생활이 대부분이다. 주로 일요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오후 늦게까지 손으로 직접 편지를 쓴다. 그동안 쓴 편지만 1만2000여통. 환자들로부터 받은 답장도 1000여통에 이른다.
지난 26일에도 이 원장은 2년 전 관절염 수술을 받은 환자 김일심(72)씨에게 검정 볼펜으로 안부 편지를 썼다.
"치료받은 관절 부위는 어떠세요. 이제 불편함 없이 걸을 수 있는지요. 저도 나이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녹내장이 있대요. 안과 의사가 건강에 더 신경 쓰라고 해서 걱정이에요."
이 원장은 "치료받는 60세 이상 환자들 상당수가 혼자 살아 건강을 잘 챙기지 못하고 외로움이 많다"며 "진료가 끝나면 항상 가정환경이나 건강 특성을 일일이 메모해 놓은 뒤 편지 쓸 때 메모 내용을 조금씩 곁들이면 환자들이 한결같이 놀라며 고마움을 표시한다"고 했다.
이 원장이 환자들에게 편지를 쓰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1998년 가을쯤이었다. 동인천 길병원 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미국 학회에 10일 동안 출장 갈 일이 있었다.
"진료가 급한 환자가 20명이나 있는 거예요. 제가 말도 하지 않고 훌쩍 떠나버리면 병원에 왔다가 실망할 것 같아 '미국 갔다 온 뒤에 진료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엽서를 보냈죠."
미국을 다녀온 뒤 이 원장은 깜짝 놀랐다. 진료실에 "의사 선생님에게 감동받았다" "헛걸음하지 않게 돼 너무 고맙다"는 편지가 여러 통 놓여 있었다. 이 원장은 "그때 '별 내용도 아닌데 고마워하시는구나. 제대로 편지를 써보자'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이 원장은 한 달에 30~40통의 편지를 쓰기 시작해 이듬해부턴 자기가 관리하는 모든 환자에게 100통씩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2002년 인천 연수구에 힘찬병원을 개업하면서도 편지 쓰기를 계속했다.
"조금만 더 치료하면 통증 없이 걸을 수 있다" "말썽부리는 자식 때문에 너무 맘 상하지 마시라"는 위로의 내용뿐 아니라 "와이프가 집에 너무 비싼 커튼을 달아 부부싸움을 했다" "아들이 엄마 생일만 챙기고 나는 안 챙겼다" "병원 직원이 뜻밖의 행동을 해 상처받았다"는 등의 개인적 내용들이 고스란히 환자들 집으로 배달됐다.
편지를 받은 노인 환자들은 이 원장을 '아들'로 부르며 답장을 보내기도 한다. 2001년 관절염 수술을 받은 김금순(83) 할머니는 이 원장과 10년째 편지를 100여통 주고받고 있다. 김씨는 "14년째 혼자 서울의 한 단칸방에 살지만 안부를 묻는 '아들' 편지가 수시로 와 외롭지 않다"고 했다.
이 원장의 부인 박혜영(46·의사)씨는 "연애할 땐 매일 편지를 써주더니 이젠 환자들한테만 편지를 써 때로는 '나한테도 좀 써주지'라고 투정을 부린다"며 "그러나 같은 의사로서 '어쩜 저렇게 환자들과 친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울 점이 많다"고 했다.
이 원장은 "나 역시 외로울 때도 있는데 편지 쓰기를 통해 위로나 조언을 받게 돼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했다.
"솔직히 바쁘거나 제 몸이 아플 때면 '의무감에서 편지를 쓰는 건가'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해요. 그럴 때면 '원장님 편지를 50통이나 모아 소쿠리에 보관하고 있다'는 답장을 봐요. 그러면 '아, 내 편지로부터 힘을 받는 분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편지 쓰기를 멈출 수 없게 되더군요. 의사 생활을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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