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달 26만원에도 일이 곧 행복”…‘워킹실버’는 늙지 않는다 | news | 2010-0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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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시험·면접 6대1 경쟁 뚫어
오전엔 구청 지하실 청소‘투잡’
올 65세 이상 구직자 10만명 육박
기업-숙련 노동력 연결시스템 필요
“그냥 몸만 움직일 수 있다면 계속 일하고 싶은 마음이야. 아마 대부분의 노인들이 그럴 거라고 봐요.”
지하철 3호선 양재역 개찰구에서 근무하고 있는 남산전(73) 씨는 ‘Working Silver’의 표본이다. 남 씨는 아침에는 구청에 가서 지하실을 청소해 주고 오후가 되면 양재역으로 들어와 지하철 도우미로 근무한다. 한 달 수입은 총 26만원. ‘요즘 세상에 겨우 그 돈을 벌려고 일하는가?’싶겠지만 남 씨를 직장으로 이끄는 것은 돈이 아니라 자부심, 그리고 성취감이다.
“일하는 노인이랑 일 하지 않는 노인이랑은 보기만 해도 차이가 나요. 내 친구 중에도 아프거나 해서 집에 들어앉아 있는 사람들은 나이가 같아도 전부 나보다 10년은 늙어보이거든. 나이 든 사람들은 그걸 다 알아요. 돈 문제도 있겠지만 돈과 관계없이도 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태반이야.”
1937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그는 27세에 결혼해 32세에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다. 처음 경비업체에 취직했을 때 월급은 8만5000원, 이대로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된다고 생각한 그는 리어카를 끌고 돌아다니며 채소장사, 과일장사를 하며 두 아이를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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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선 3호선 양재역에서 지하철 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남산전(72) 씨가 지하철 탑승객에게 비상문을 열어주며 길을 안내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로 인해 65세 이상 노인 구직자만 10만명이 넘는 시대. 노인들은 자부심과 성취감을 위해 일하고 싶어하지만 아직까진 노인들을 위한 취업의 양이나 질 모두 부족한 상황이다. 김재현 기자/prodigy@ |
아이들이 대학까지 마치고 나서 그는 본업(?)인 경비직원으로 돌아갔다. 서초동 검찰청 앞 변호사 사무실 건물에서 경비 겸 관리로 10년이나 일하고 난 그의 나이는 65세. 이 정도면 일이 지겨울 법도 하지만 정작 그는 일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라 믿는다. 대한노인회 동작지회 취업센터를 통해 소개받은 ‘지하철 도우미’를 제2의 천직으로 여기는 그는 매일 3시간씩 개찰구 옆에 서서 길을 묻는 행인들에게 친절히 답해주고 화장실을 가겠다는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열어주는 일을 한다.
“이 직업도 쉽게 얻은 게 아니에요. 올해 초에 500명을 선발하는데 총 3160명이나 지원했어요. 6대 1로 경쟁해서 들어온거거든. 학벌도 살펴보고, 면접도 하고, 5초 동안 팔 들고 외다리로 균형잡는 체력시험까지 봐요.”
어렵게 얻은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남 씨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다. 교육을 받은 대로 애에게든 어른에게든 항상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기본이다.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으며 승객들을 돌보고 유모차도 끌어주고 하다보면 승객들이 고마워한다. 그런 모습을 보는 기쁨이 남 씨를 직장으로 이끈다.
남씨의 부인 전청자(67) 씨도 집에서 놀지 않는다. 하루 4시간씩 동작구에 있는 남성지구대에 출근해 자원봉사를 한다. 주로 하는 일은 학교 근처 화단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고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신고하는 것. 최근에는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한 유괴나 성폭력 등 범죄가 증가해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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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재역 개찰구 지하철 도우미 남산전 씨. |
“이렇게 둘이 일하고 나면 저녁 먹을 때 집에서 만나 하루 종일 서로 있었던 일을 얘기해요. 그러면 정이 더 깊어지고 하죠 뭐.”
남 씨는 동네에서도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났다. 성미숙 대한노인회 동작지회 취업센터장은 “성실한 것 하나로는 젊은이 둘보다도 나으신 분”이라고 남씨를 추켜세운다. 지난겨울, 폭설이 내리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제작한 판때기를 이용해 동네의 눈을 쓸어냈다. 성격 자체가 지저분한 것을 못참는 데다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시기 때문이란다. 이러다 보니 동네 사람들도 남 씨를 존경한다. 자주 가는 동네 약국에서도 남 씨가 오면 반기고 시장에 다니던 동네 아가씨나 애들도 얼굴만 보면 인사를 나눈다. 최근에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남 씨는 “돈을 10만원 주건 5만원 주건 관계없이 일을 하러 다니고 싶다”며 “구청 지하 사무실을 한 달 청소하면 6만원을 주지만 계속 다닌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 건강을 위해서라도 일을 계속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런 남 씨의 모습은 변하고 있는 ‘Working Silver’들의 세태를 반영한다. 은퇴를 하면 집에 들어앉아 쉬는 것을 당연히 여기던 노인들은 옛말이 됐다. 노인들은 꼭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일을 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건강을 지키고 싶어하고 있다.
이는 통계청의 자료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구직자 중 60대 이상 노인의 비율은 지난 2008년 약 3~4%대에 머물렀지만 지난해 5% 이상으로 늘었으며 올해 1분기에는 총 구직자 중 12.92%나 차지했다. 특히 올해 1분기에는 65세 이상 노년층 중 일을 찾아나선 사람이 10만여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지속되면서 노인층 인구가 크게 늘어났지만 경기 불황 등으로 오히려 이들의 은퇴시기가 당겨지면서 노인 실업률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아직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또 일자리가 있어도 취업의 질이 낮기 때문에 생계까지 고려해야 하는 노인층에서는 투잡, 스리잡까지 뛰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양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서동명 교수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지속되면서 일을 하고자 하는 노인들은 많이 늘었지만 이들을 위한 질 좋은 일자리는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며 “65세 이상의 노인만 약 4800여명을 고용하며 257억엔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일본의 일본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처럼 노인들에게는 질 좋은 직장을, 인력난에 허덕이는 기업에는 숙련된 노동력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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