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재산 날리고 비틀거리던 아빠, 지금은… | news | 2010-05-14 |
힘들고 어려울 때 당신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첫번째 조건은 무엇입니까? 가족, 그리고 행복한 가정.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공감코리아(korea.kr)와 여성가족부가 공동으로 ‘가족’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편집자주)
5월5일 어린이날,
아빠가 동네식당 일을 도와주고 품삯으로 받아온 고기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아빠 손재주가 좋아 동네에서는 명물로 통한다. 가족 모두 모여 저녁을 먹는 것도 참 오랜 만이다. 아빠가 엄마에게 상추쌈을 입에 넣어주는 모습을 보고, 너무 아름답다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처럼 행복한 시간이 계속 되기를 기도했다.
5월8일 어버이날,
엄마, 아빠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밤새 잠도 못자고 해가 밝아오기 만을 기다렸는데, 더 이상 못 기다리겠어서 새벽 3시에 엄마, 아빠 방으로 달려가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다. 아빠가 ‘고맙다’며 나를 꼭~ 껴안아주셨다. 엄마, 아빠 사이에 그대로 누워 자려고 했지만 쫓겨 갔다. 그래도 기분은 최고였다.
5월, 은총(가명)이네 가족은 여느 가족들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따스한 봄 햇살은 이런 은총이네 가족을 축복해주는 것 같았다. 7년여 만에 다시 찾아온 가족의 행복,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해 서로 사랑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은 가족 이야기는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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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총(맨 오른쪽)이네 가족이 다시 찾은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듯 환하게 웃고 있다. 아빠는 주변 일 도와줄 게 있다며 외출중이라 함께 하지 못했다. |
7년 전 단란했던 우리 집에 어두운 그림자가 찾아왔다. 아빠가 평소 존경하며 따르던 지인 한 분이 계셨다. 아버지를 일찍 여윈 아빠에게 그 분은 아버지나 다름없었고, 엄마를 소개시켜 준 것도 그 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업을 하던 지인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자, 아빠는 안타까워하며 도울 방법을 찾았다.
아빠의 술 느는 만큼, 가족의 갈등도 깊어져
아빠는 우선 급한 불이라도 끄라고 아빠와 엄마 명의로 신용카드 십여 장을 만들어 그 분에게 드렸고, 나중에는 집과 땅까지 팔아 2억여 원을 빌려줬다. 3개월이면 돌려받을 수 있다는 말과 그 동안은 단칸방 하나 얻어서 살다 그 후에는 아파트를 사서 이사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아빠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아빠는 지인에 대한 배신감에 날마다 술로 보냈다. 학원과 유치원 차량 운행을 하던 일도 빈번이 반복되는 결근으로 해고 통지를 받았다. 지인이 돌려막기로 쓰던 카드의 빚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3개월이면 끝날 것 같았던 단칸방 생활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었고 아빠의 술도 늘어만 갔다.
아빠의 술이 느는 만큼, 가족의 갈등도 깊어만 갔다. 엄마는 우리와 잤다. 아빠가 술을 먹고 들어오는 날이면 동생들은 가까이 가려하지 않았다. 엄마가 나중에 말해 준 사실이지만, 엄마는 아빠와 이혼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미움과 원망과 증오가 깊어가면서 가족이 해체되는 위기상황으로까지 내몰렸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우선 가족을 지키려는 엄마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아빠를 대신해 학원과 유치원 차량을 운행했고, 토·일요일에는 학원 잡일까지 해가며 경제적인 생활고를 해결해 나갔다. 아빠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단칸방에서 마당이 있는 집(재개발지역이라 셋돈은 싼 편이었다)을 월세로 빌려, 만들기 좋아하는 아빠에게 공간을 제공해 줬다.
엄마는 아빠에 대한 서러움이 가득했던 우리에게 ‘아빠는 지금 너희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더 힘들어하시는 거라며 우리가 따뜻하게 보살피고 사랑해줘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때서야 ‘엄마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동안 미안했다” 아빠 말에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
‘아빠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니 아빠가 우리에게 잘해야 하지 않느냐’며 원망만 하던 나도 조금씩 아빠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엄마가 나에게 슬쩍 귀띔해 준 것인데, 아빠가 엄마에게 “그동안 미안했다”며 “내 모든 재산과 희망을 앗아갔지만 나의 소중한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을 얻게 되었으니 이것으로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단다. 엄마 그 말을 하면서 하염없이 또 울었다.
올해 이른 봄부터 우리 집에 새로운 변화가 조금씩 일기 시작했다. 아빠가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하고 있는 차량운행을 분담하는 식인데, 엄마도 조금은 일손을 덜게 돼 토·일요일은 쉬며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빠의 표정에는 오래 전에 사라졌던 미소도 보였고 우리에게 자상하게 대하려는 노력도 보였다. 카드 빚도 신용회복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8년 간 일정금액을 매달 나눠 갚고 있고 앞으로 3년 후면 저축도 할 수 있다고 엄마에게 들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우리 가정은 해체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그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엄마는 아빠를 믿고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받아들이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나와 내 동생들도 안정을 되찾았다. 예전으로 원상회복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지금은 마음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아빠가 민들레 꽃을 잔뜩 따다 직접 차를 끓여 엄마에게 주는 것을 봤다. 이 모습을 보며 “아빠가 이렇게 엄마를 사랑해서 우리가 태어날 수 있었구나, 이것이 행복이구나. 어떤 어려운 고통도 우리 가족을 갈라놓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이 글은 신용회복위원회로부터 채무조정을 받은 심○○ 씨의 가족 이야기입니다.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원망과 갈등, 미움이 쌓이며 가족해체 위기상황까지 직면했지만, 가족을 지키려는 구성원 간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를 큰 딸(고 1)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 가족해체, 개인적 문제만은 아니다
은총이네 가족는 극한의 경제적 위기와 가족간 갈등이 가족 해체의 위기까지 몰고 갔지만, 이들은 가족을 지키고 다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가족해체 위기에 있는 모든 가족이 은총이네와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에서 가족 해체가 사회 문제로 크게 부각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쓰나미처럼 닥친 경제불황은 많은 실직자와 채무자를 양산했고, 그들 중 많은 수가 경제적 고통을 견디지 못해 이혼하거나 가출, 자살, 아동학대와 방임 등으로 문제가 심각해 졌다.
공감코리아에서 소개됐던 ‘태권소녀’ 박주희 양도 외환위기 이후 아빠의 사업실패로 엄마는 가출하고 아빠는 빚을 갚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와 동생이 함께 살며, 아빠가 다시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10여년이 흐른 지금도 가족 해체 현상은 계속 진행 중이다. 쓰나미 같은 경제위기 상황은 아니지만, 장기간 지속되는 경기침체는 중산층의 몰락, 저소득층 확대로 이어지고, 이러한 경제적 고통이 가족 해체로까지 몰고가는 것이다.
실제 2003년 이후 감소했던 이혼율이 지난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해는 12만3999쌍이 이혼해 2008년 11만6535쌍보다 6.4% 증가했다. 이혼 사유는 성격차이가 가장 많았고, 경제 문제로 이혼한 수가 다음으로 많았다.
가족 해체 문제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족이 안정적이고 건강해야 사회도 잘 유지되기 때문이다. 빚 때문에 가족해체 위기에 있는 채무자들에 대한 신용회복 지원이라든가, 근로능력이 있는 저소득층의 자활 지원, 폐업 자영업자의 패자부활 프로그램 등과 같은 생산적 복지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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