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70대 8명 ＂오늘은 중·고등학교 졸업생＂ | news | 2011-02-09 |
평생교육기관 남인천중·고서 성인 367명 졸업 50대 자매·10년투병 환자·지역활동가 등 다양
7일 오전 11시 인천 남구 학익동에 있는 남인천 중·고등학교 건물 6층 도서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눈가에 주름이 퍼진 50~70대 8명이 모였다. 송경화(70)씨가 "나이 들어 학생 노릇 하면서 영어단어가 그렇게 어려웠는데…. 이제 졸업하니 아쉽네"라고 말하자 김순자(55)씨는 "이 학교를 다닌 건 내 인생의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또 다니고 싶어요"라며 맞장구쳤다. 이들은 "수업시간에 연습장에 적은 내용을 집에서도 외웠다" "잘 모를 때마다 친절하게 알려줘서 고맙다" "앞으로 대학 가서도 열심히 공부하자"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평생교육기관인 남인천중·고가 8일 졸업식을 갖는다. 성인 재학생 703명 중 367명이 졸업한다. 이 중 73명이 올해 대학에 진학한다. 최우숙(47) 교감은 "졸업생들은 영어 단어를 하나 외워도 뒤돌아서면 잊기 쉬운 나이지만 학구열만큼은 최고"라며 "건강상의 문제나 가정 형편 때문에 졸업하지 못한 일부 인원을 제외하곤 전부 졸업한다"고 말했다.
졸업생들은 어린 시절 집안이 가난했거나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학교를 못 다니다 뒤늦게 공부에 뛰어든 만학도(晩學徒)들이다.
수십년 만에 공부의 한(恨)을 푼 졸업생들의 사연은 구구절절했다. 박은숙(56)씨와 성숙(53)씨는 자매이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결혼을 한 뒤 주부로 살았다. 4년 전 막내 동생 경숙(50)씨가 먼저 이 학교를 졸업한 뒤 두 언니에게 "도전해보라"고 설득했다. 두 자매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거절했지만 결국 학교에 등록했다. 은숙씨는 4년 동안 오전에 학교가 끝나면 손주 2명을 유치원에서 데려오는 일을 거르지 않았고 남편의 병간호를 하면서도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성숙씨는 "방과 후 집에서 만나 언니는 수학을, 나는 국어를 서로 가르쳐줬다"며 "손주들과 형부 뒷바라지로 힘든 언니가 중학교만 마치고 끝내려 했는데 고교 과정 접수 마지막날 설득한 끝에 계속 공부해 같이 졸업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오랜 투병생활 후에 향학열을 불태운 사람도 있다. 1997년 병이 나 담낭과 췌장을 떼어내고 살고 있다는 김순자씨는 "한때 의사의 권유로 가족이 장례식을 준비할 정도로 몸이 아팠다"고 했다. 그는 10년간 노력으로 몸을 다소 회복한 끝에 "죽기 전에 못다 한 공부 한번 해보자"는 각오로 2009년 입학했다. 김씨는 "학교 다니기 전엔 1주일에 두 번씩이나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다"며 "병원에선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을 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공부에 집중하니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몸이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정학(59)씨는 8남매의 여섯째로 태어난 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초등학교를 나오고 나서 인천에서 직장을 잡고 살았다. 30대 때부터 용현동 인근에서 새마을협의회 회장, 동주민센터 회장을 맡다가 공부에 도전했다. 그는 "지역 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인이나 시 관계자를 만나다 보니 '학력이 짧아 배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어 공부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최근 부천대학 사회복지과에 합격했다. 큰아들은 "아버지가 자랑스럽다"며 첫학기 등록금 380만원을 내주기로 했다고 한다.
이점례(51)씨는 졸업생 중 전교 1등의 영예를 안았다. 내신 1등급 수준으로 재능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게 됐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몸이 불편한 아버지 대신 6남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중학교를 중퇴하고 10년 넘게 방직공장에 다녔다는 이씨는 결혼한 지 20년이 돼서야 학교 문을 두드렸다. 그는 "가족들에게 창피해 '직장에 다닌다'고 해놓고 몰래 학교를 다녔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자거나 집에 없을 때 공부했어요. 최근에 가족들에게 말하니 '대단하다'고 하더군요. 사회복지사가 되어 저보다 어려운 사람을 돌보고 싶습니다."
평생교육법에 의해 설립된 남인천중·고는 오랫동안 불우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가르쳐왔다. 지난 2000년부터는 1년에 3학기제로 성인들에게도 국어·수학과 컴퓨터·회계원리 등을 가르치고 있다. 중·고등학교는 각각 2년 과정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여름·겨울방학 없이 오전 9시~오후 1시(주간)나 오후 6~9시(야간)에 수업이 이뤄진다.
그동안 30회의 졸업식을 거쳐 8500명의 성인이 졸업했고 이 중 1500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중학교 과정은 무료이며, 고등학교는 1년에 200여만원의 학비를 낸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성인(만 19세 이상)이면 매년 10월에 신청하면 된다. 최 교감은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공부를 포기한 성인이라면 누구든 환영하며 친절하게 상담해드리겠다"고 말했다. 문의 ☎863-9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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