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도남’ 임종남 씨의 시골 마을 정착기 | news | 2011-03-22 |
올해로 귀농 9년차인 임종남(38)씨.
임 씨는 전주에서 나고 자란 토종 도시남자이다. 학교도, 직장도 모두 도시에서 다녔다. 아내 윤혜경(36)씨를 만나 맞벌이에 한창이던 그가 귀농을 결심하게 된 건 9년 전 딸 채은이(9)가 태어나면서부터다.
“우선 삭막한 도시생활이 싫었어요.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들으며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지요.”
이렇게 해서 시작된 그의 귀농 일지는 2003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른 살의 창창한 나이였던 임 씨는 직장을 과감히 박차고 나와 가족과 함께 전북 진안군 진안읍 어은동마을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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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진안군 어은동마을 임종남 윤혜경씨 부부의 집 |
어머니가 하고 있는 장류 사업을 물려받은 생각으로 귀농을 결심했다는 임 씨는 진안의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귀농했다고 농사만 지으란 법 없어…된장 사업으로 1억 매출
그렇게 시작된 농촌생활이 생각만큼 녹록치 많은 았았다는 임 씨. “처음엔 마을 어르신들과의 관계도 어색했고,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온 탓에 처음 접해보는 것들이 얼마나 많던지 하루하루가 진땀 나는 생활이었지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굳은 결심을 갖고 뛰어든 장류 사업 역시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40kg짜리 10포대 정도의 적은 양으로 청국장과 된장을 만들었지만, 판매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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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남·윤혜경씨 부부가 만든 된장 |
“45년 동안 전주에서 소규모로 장류 판매를 하고 있는 어머니의 가업을 잇는다는 생각으로 자신감을 갖고 뛰어들었는데, 한 3년 간은 재료비도 못 벌었지요. 그 때 귀농에 대한 후회가 처음 밀려오더라구요.”
포기하지 않은 그는 ‘장’을 담글 때면 어머니를 모셔와 45년 손맛의 비법을 배우고, 어은동 깊은 계곡 물을 끌어와 사용했다. 홈페이지도 개설해 인터넷쇼핑몰에 상품을 올려 판매하는 방식으로 판로 확보에도 변화를 줬다.
그러는 동안 차츰 주문이 늘면서 2006년부터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 지금은 연 4~5백개의 된장과 청국장, 청국장환을 판매할 정도로 성장했다. 현재 임 씨는 이 사업으로 연 1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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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남씨 윤혜경씨가 만든 된장 |
성공적인 귀농 중요한 열쇠는 마을 주민과의 화합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단계에 들어서자 임 씨는 그동안 소홀했던 마을주민들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일명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였던 임 씨는 그 길로 성격 개조에 돌입했다고. 더불어 사는 농촌 마을에서 이웃과의 관계는 도시와 달리 아주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때마침 진안군에서는 젊고 능력 있는 인재를 마을간사로 채용한다는 소식이 들려와 바로 신청을 했지요. 된장 사업에 이은 저의 두 번째 도전이었다고나 할까요.”
마을간사는 그가 살고 있는 진안의 마을만들기 사업을 뒷받침하며, 마을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고, 마을 곳곳의 집안일을 거드는, 이른바 한 마을의 ‘두뇌’이자 ‘머슴’ 같은 역할이다.
“간사로 활동하며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마을 주민들과의 화합이었어요. 크고 작은 행사마다 찾아가 일을 거들었습니다. 마을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하자 농촌의 현실이 제대로 보이더라구요.”
주민들 의견을 모아 마을사업계획을 세우고 전라북도 향토산업마을만들기사업에 공모해 1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하는 데에도 그의 공이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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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군 동향면 봉을곡마을 거리 한 편에 세워진 안내판이 진안마을의 성격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
“아직도 완전하게 정착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제 진안을 떠날 생각이 없을 정도까지는 왔지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전주에 나가 친구도 만나고 했는데, 지금은 3달에 한번 나갈까말까 합니다!”
임 씨는 홈페이지를 활성화시켜 농촌생활에 향수를 느끼는 도시사람들에게 농촌체험, 장류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도 구상중이다. 지난해 군 농업기술센터에서 관광분야 교육도 무상으로 이수했고, 사업비도 일부 지원받아 준비작업에 돌입했다.
“도시에 경험 쌓아 농촌에서 발휘한다.”
현재 진안군 전체 귀농인은 2010년 12월 말 기준으로 545세대 1285명이다. 2007년 3월 229세대 499명에서 3년여 만에 316세대 786명이 늘었다.
이 중 50~60%가 40~50대 젊은 귀농인이다. 진안군 앞에 ‘귀농 1번지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을 정도의 명성이다. 이 가운데 임 씨처럼 활동하는 마을간사는 모두 13명. 진안군의 ‘귀농1번지 조성 프로젝트’ 역시 이 마을 간사제를 모태로 해서 생겨났다.
‘귀농1번지 조성사업’은 귀농인이 농사만 지어야 한다는 틀을 과감히 깨고 그들이 도시에서 쌓은 전문 능력을 농촌에서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 그 취지. 때마침 농림부(현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실시한 ‘도시민 유치 지원 공모사업’을 통해 2007년부터는 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진안군은 2009년까지 3년간 10억을 지원받아 도농교류 및 귀농귀촌활성화센터 상근인력 보강, 전원마을사업, 마을조사단 운영, 마을숲해설사 양성, 마이 평생학습지도자 양성 등 도시에서 쌓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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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군 동향면 봉을곡마을 박물관. 한 귀농인이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농기계나 오래된 골동품을 하나둘 모아 인근 폐교를 마을박물관으로 조성한 곳이다. |
곽동원 마을만들기 담당자는 “이 사업을 꾸준히 펼친 결과 현재 50명에 가까운 귀농인이 농사 외의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진안의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곽 씨는 “이 지역 귀농인 가운데에는 대도시에서 건축회사를 운영하다 귀농한 뒤 ‘농촌에서 집짓기’라는 책을 발간한 사람도 있고,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농기계나 오래된 골동품을 하나둘 모아 인근 폐교를 마을박물관으로 만든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농촌에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쌓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그 사람들이 지역에 잘 정착하도록 오와 토박이 주민들과 화합하면서 마을에 생기를 불어 넣는 작업. 진안의 ‘귀농 1번지 조성사업’이 쇠락해 가는 농촌에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되리라 믿는다.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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