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균나이 65세 왕언니들 “소녀시대 뺨치네~” | news | 2010-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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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인 ‘공정한 사회’는 문화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경제적으로 부유하더라도 문화적 소양이 뒷받침되지 못 하면 진정 풍요로운 삶이라 할 수 없다. 또 그런 나라를 선진국이라 할 수도 없다. ‘모든 국민이 어려서부터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나라, 생활 형편과 상관없이 누구나 문화를 누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공정한 사회를 실천하는 정부의 문화복지 정책들을 살펴봤다.<편집자 주>
1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배봉산 야외공연장. 인근 주민들을 위한 저녁 음악축제가 한창이다. 공연 순서표를 보니 무명가수에서부터 전통무용단에 이르기까지 나이 지긋한 관객들을 배려해 마련된 공연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무려 세 번의 무대를 할당받은 특별한 중창단 하나가 눈에 띠었다. 그만큼 인기가 높다는 의미일 터. 마니아들 사이에선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는 일명 ‘왕언니 클럽’이다.
평균나이 65세, 아이돌 그룹 뺨치는 왕언니들
‘왕언니 클럽’을 처음 본 사람들은 이들의 나이에 놀라고, 이들이 부르는 노래에 또 한 번 놀란다. 평균 연령 65.4세로 이루어진 이 중창단은 지난 2007년 동대문구와 동대문문화원의 지원을 받아 결성됐다. 중창단이라고 해서 고상한 가곡이나 어르신 취향의 민요를 부른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이들의 주요 레퍼토리는 ‘아브라카다브라’ ‘보핍보핍’ ‘텔미’ 등 최신 아이돌 그룹의 인기곡들. 여기에 노래와 춤 모두 100% 라이브만을 고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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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그룹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복장을 한 ‘왕언니 클럽’ 멤버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드디어 왕언니들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 조용하던 객석도 조금씩 들끓기 시작했다. 딱 붙는 검정 원피스에 금빛 반짝이 가득한 의상을 입은 왕언니들이 등장하자 객석에선 자그마한 탄성이 쏟아져나왔다. 원더걸스의 ‘노바디’ 반주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은 영락없는 신세대 걸그룹의 모습이었다. 객석에서 공연을 지켜보던 정순자(74)씨는 “보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절로 들썩인다”며 팔을 휘휘 돌리며 왕언니들의 춤을 따라해 보였다.
이어 복슬복슬한 장갑을 양손에 끼고 귀여운 무대의상을 갖춰 입은 ‘왕언니 클럽’의 다음 주자들이 무대에 올라 ‘보핍보핍’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신세대 풍 음악에 처음엔 다소 어색해하던 나이 지긋한 관객들도 어색함 하나 없는 왕언니들의 춤사위와 쉽고 경쾌한 리듬에 이내 적응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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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 그룹 티아라의 ‘보핍보핍’에 맞춰 안무를 하고 있는 ‘왕언니 클럽’ 멤버들. |
떴다 하면 반응 폭발적…문화 목마른 어르신들 눈물까지
실제로 왕언니 클럽이 등장하는 곳은 어디든 놀라움과 즐거움이 공존한다. 이들은 매달 5~10번씩 양로원이나 장애인시설 등을 순회하며 공연을 펼치는데, 노래와 춤 실력은 물론 관객을 사로잡는 수준급 무대 매너를 자랑하며 유명세를 타고 있다.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클럽 대표인 박화금(64) 할머니는 “우리가 왕언니라면 관객들은 주로 왕왕언니, 상왕언니들이 많은데 정말 너무들 좋아하신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또 “우리도 할머니들이기 때문에 노래 부르다가 가사도 잊어버리고, 율동 하다가 실수도 많이 하는데 그런 모습마저도 즐겁게 봐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인기 덕분에 이들은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각종 지역 축제나 대학 축제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다. 조 씨는 “언젠가 요양원을 방문했는데 휠체어 타신 분들이 많아 직접 병실에 가서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일어서지도 못 하는 분들이 앉아서 노래 따라 불으며 손 붙잡고 눈물까지 흘리시더라”며 뿌듯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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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혼의 나이에 문화나눔에 뛰어든 ‘왕언니 클럽’. 높은 인기만큼이나 각종 복지시설은 물론 젊은이들의 축제무대에 이르기까지 활동반경도 꽤 넓은 편이다. |
어쩌면 봉사를 받아야 할 나이에 봉사에 직접 뛰어든 할머니 중창단에겐 봉사 자체가 삶의 활력소인 듯 했다. 조순희(60) 할머니는 “예전에 우울증도 있었던 성격이 많이 밝아지고, 없던 자신감도 생겼다”며, “평소 좋아하는 춤과 노래에 봉사까지 하니 이거야말로 1석 2조가 아니겠냐”며 뿌듯해했다.
“우리처럼 살면 된다”…소외 노인들에게 희망 줄 것
‘왕언니 클럽’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노년 문화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해 지원 중인 ‘어르신문화나눔봉사단’중 하나다. 문화에서 소외되기 쉬운 어르신들 스스로가 문화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그 취지. 올해에는 동대문구 ‘왕언니 클럽’을 비롯해 영등포의 ‘한강 경음악단’, 의정부의 ‘한마음 실버밴드’ 등 ‘문화나눔 봉사단’ 26곳이 선정돼 활동 중이다.
왕언니 클럽 멤버인 조윤경 씨는 “어렵게 사는 어르신들이 ‘10년은 젊어지는 것 같다’며 신나게 어깨춤을 들썩일 때면 보람을 느낀다” 며 “어려운 분들에게 활기를 나눠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화금(64) 씨는 “20대 1에 육박하는 치열한 오디션 경쟁을 뚫고 들어온 사람들인 만큼 사명감도 투철하다”며, “왕언니들은 소외되고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우리처럼 살면 된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 더욱 열심히 연습한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이혜림 사무관은 “황혼에 접어든 어르신들이 문화전도사를 자처하면서 생활의 활력과 즐거움을 찾고 노후를 보람있게 보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0월에만 6개의 공연 스케줄이 잡혀있다는 왕언니들은 “우리를 필요로 하는 데가 있는 이상 공연은 계속될 것”이라며 10대 소녀들 같은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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