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물여섯 그녀가 두 번이나 자원 입대한 이유 | news | 2011-04-14 |
최근 사회 곳곳에서 군대 문제로 울고 웃는 사람들이 많다. ‘주원앓이’라는 신드롬을 일으키며 인기를 구가하던 한 연예인은 해병대에 자진 입대해 웃는 얼굴로 박수를 받으며 떠났고, 또 다른 사람은 병역 기피라는 비난을 받으며 법정에 서기도 했다.
언론에선 이 같은 연예인들의 병역기피 문제와 함께 천안함 사건 등으로 전에 없이 강화된 안보 상황에서 군대와 관련된 이야기가 연일 기사에 오르내린다. 최근에는 ‘독거미 부대’라는 여성특공부대가 보도되면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꿈이 입영통지서받는 꿈’이라고 말하던 한 예비역의 넋두리를 비웃기라도 한 듯, 남자도 한 번 다녀오기 어려운 군대를 두 번이나 자진 입대한 여성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그 주인공은 오는 8월 여군 부사관 입대를 앞두고 있는 26살 정지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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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8월 여군 부사관 입대를 앞두고 있는 정지연 씨. |
큰 체구에 덩치 좋은 영락없는 군인의 모습을 상상하며 찾아간 3월 25일. 첫 만나에서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정 씨는 체구도 작고, 인터뷰 도중 쑥쓰러움을 잘 타는 보통의 여성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몇 달 전까지 군인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다부진 말투로 “전 대한민국 여군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정 씨를 만나 두 번이나 자원 입대하게 된 사연을 들었봤다.
- 남자들은 한 번 가기도 싫다는 군대에 두 번이나 자진 입대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보통의 여자아이들은 어릴 때 인형을 갖고 놀지만 저는 유독 장난감을 좋아했다고 들었어요. 제 기억에도 집에 인형이 있었던 기억보다는 세 살터울 오빠와 레고로 탱크를 만들거나 로봇만화를 봤던 기억이 많네요. 어릴 때 커서 장래희망을 물으면 저는 항상 ‘군인’이라고 답했어요. 3년 전 봄(여름)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한민국 육군부사관에 응시, 당당히 합격해 대한민국 부사관으로 입대했지요.
- ‘입대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 반응은 어땠나요?
워낙 ‘군인’이 되겠다고 자주 말해고 다니는 편이어서 주위 사람들은 당연히 ‘그럴줄 알았어. 역시 그 길니가 가야할 길이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하지만 막상 머리를 자르는 날 미용실에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긴 머리를 커트로 자르며 “입대를 앞두고 있다고”했더니, 미용사 분이 놀라면서 ‘바리깡’을 들고 오시더라구요. 잘려지는 머리카락 보면서 내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앞으로는 여자가 아닌 ‘대한민국 군인’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한참을 울다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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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임관식 |
- 처음 입대한 날 기억나나요?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논산훈련소에 친구와 부모님과 함께 갔어요. 부모님한테 큰절을 하고 입대하러 가는데 그렇게 슬픈 거에요. 같이 온 친구도 남자친구 보내는 것보다 더 많이 울고 부모님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더라구요. 유난히 머리를 짧게 깍아 멀리서도 저만 보여 더 울었다고 하시더라구요. 왜 우리딸은 저렇게 힘든길을 택했나 하는 생각이 드셨다고 하시던데…
지금은 웃으면서 “너 머리 진짜 짧았었는데”라고 말하시지만 8월 다시 입대를 하게 되면 또 엄청 울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되요. 다시 입대하면 안 울고 잘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조금 긴장이 되네요.
- 군 생활 중 힘들었던 기억은 없나요? 여자라서 특히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평소에 또래 친구들보다 걷고 뛰는 것을 좋아했지만 ‘천리행군’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에요. 보통 남자들도 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20KG의 가방을 메고 천리길을 끊임없이 가다보면 처음에는 발이 아프지만 나중에는 감각이 무뎌져요. 어둑어둑해지면 앞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앞 동기 가방만 보고 걸어갑니다. 잠깐 여유를 돌려 군화를 벗으면 발에는 물집이 잡혀있고, 땀 때문에 퉁퉁 불어있어요. 이건 직접 체험해보지 않으면 모르실텐데...힐 신고 달리는 것보다 천 배 만 배 더 힘들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하지만 낙오자 없이 천리길 행군을 끝내고 돌아올 때 그 희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함께 고생했던 그때의 동기들과의 우정은 정말 끈끈하답니다.
여자라서 힘든 점은 역시 행군할 때 화장실 문제였어요. 여자이다보니 특별한 날이 있잖아요. 마법의 날 행군이나 혹은 훈련과 겹치면 정말 힘들죠. 다리도 아프고 배도 아프고… 한번은 너무 아프니까 눈물이 나더라구요. “집에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죠. 하지만 그곳에서 낙오하면 동기들에게도 미안하고 내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지는 것 같아서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마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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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들도 하기 힘들다는 ‘천리행군’은 정 씨에게 두고두고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다. |
- 어려움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재입대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군대에 있다보면 힘들어서 빨리 밖에 나가서 이거해야지, 저거해야지 마음 속으로 새겨두었던 일들이 있었어요. 동료들 중에는 머리를 길러서 파마를 해보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친구들도 있었구요. 그런데 저는 제 미래를 그려보면서 ‘군인이 되어서 이걸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다시 하고 있더라구요. 이전 제 업무가 공병이었는데 군대에서 생활하면서 항공부사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군인이 되어서 계획을 세우는 제모습을 보면서 그래 이길은 내길이야 라는 생각에 재입대 결심을 하였습니다.
제대하자마자 바로 부사관 시험을 치렀고, 한 번만에 체력검사와 면접에 합격해 다시금 입영통지서를 받았습니다. 8월에 다시 논산 훈련소 입대를 앞두고 있어요. 훈련소의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설렘은 더 큰 것 같아요.
- 26일은 천안함 피격 1주기였어요.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천안함 사건은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일어난 일이기에 저 역시도 말을 하는 데 있어서 더욱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무엇보다 마음이 아픈 일이구요. 현충원에 다녀왔는데 동생이고 친구뻘인 동료들이 그 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저도 마음 한구석이 뜨거워집니다. 두 번 다시 그런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슬프네요.
- 마지막으로 입대를 앞둔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친구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대학이 군대라는 말을 하시더라구요. 제 친구가 속도 많이 썩였는데 군생활을 하면서 철이 들어 지금은 누구보다 효자녀석이 되었거든요. 군입대에 하기 싫어서 없는 병을 만들거나 시민권을 땄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군대는 조금 힘들 수 는 있지만 군대를 다녀온 사람끼리 통하는 이야기도 많고 정말 성숙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두려워 하지말고 대한의 건아로 거듭나기 위해서 주저말고 입대하세요. 군대에서는 건강한 체력도 쌓을 수 있지만 몇십년을 산 선배들 보다 더 많은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그랬구요.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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