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토벤 바이러스’ 꿈 펼치는 직장인들 | news | 2011-05-04 |
- [‘재능기부’ 우린 이렇게 한다] 직장인 실내악단 ‘세종나눔 앙상블’
“재능은 나눌수록 커지고, 행복 바이러스처럼 여러 사람에게 퍼져야 그 빛을 보는 것 같아요”
직장인 30~40명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실내악단 ‘세종나눔 앙상블’의 지휘를 맡고 있는 이선영 지휘자의 말이다. 상하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였던 그는 2010년부터 세종나눔 앙상블과 함께 재능나눔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선생님부터 싱크대수리공까지…“음악 하나로 뭉쳤어요!”
‘세종나눔 앙상블’은 세종문화회관이 재능나눔 활동을 위해 운영하는 30~40명 규모의 실내악단이다. 구성원은 학교 선생님부터 의사, 싱크대 수리공, 연구원, 비서까지 모두 일반 직장인들로 구성돼있다.
“세종나눔 앙상블은 공교롭게도 2008년 인기를 끈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어요. 음악 비전공자들을 단원으로 모집했는데 드라마의 인기 덕분인지 정말 많은 분들이 지원해주셨어요. 그래서 선발된 단원들의 직업도 다양한 편이지요.”
세종나눔 앙상블은 교향악단의 연주자였던 김은정 감독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김 씨는 “예전에 교향악단 연주자로서 재능나눔 연주회를 다녔는데 관객들 중에서 연주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분들이 꽤 많았다.”며 “아마추어 연주자들도 무대에 설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으로 직장인 실내악단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 연주자들보다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연주가 오히려 관객들에겐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실제로 세종나눔 앙상블이 연주를 마친 뒤 그가 단원들을 직장인이라고 소개하면, 관객들의 반응이 더욱 뜨거워진다고 한다.
바이올린 연주를 맡고 있는 임희주 씨는 “직장을 벗어나 음악으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 멋져 세종나눔 앙상블에 참여하게 됐다.”고 동기를 밝혔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직장인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줘서 클래식 애호가로서 정말 기뻤어요. 재능나눔 활동으로 시민과의 소통 통로를 만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6일, 마침 서울 일원동의 세라믹 팔래스홀에서 열린 한 후원공연에서 세종나눔 앙상블이 오프닝 무대를 맡게 된다고 해 찾아가봤다.
무대 옆 대기실과 복도에서는 세종나눔 앙상블 단원들이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연습에 한창이었다. 잠시 뒤 관객들로 들어찬 공연장 안으로 세종나눔 앙상블의 연주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에드바드 그리그의 ‘전주곡’과 요하네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이 연주됐다. 세종나눔 앙상블의 아름다운 선율과 무대를 즐기는 단원들의 모습에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이 날 세종나눔 앙상블의 연주를 들은 정경진 씨는 “처음엔 전문 연주자들이니 당연히 잘하겠거니 했었다.”며 “연주가 끝난 뒤 아마추어 앙상블이라는 사회자의 소개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나눔을 위해서 직장인들이 모인 거잖아요. 서로가 즐겁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오늘 연주는 그 분들의 즐거움이 악기를 통해 잘 전달된 것 같아 좋았어요.”
“음악을 향한 열정 전문 연주자 못지 않아”
오디션을 통과한 직장인 단원들은 2년 동안 활동하게 된다. 2010년까지 32명의 단원들이 1기로 활동했고, 올해부터 45명의 단원들이 2기로 활동 중이다. 연습 장소 및 정기 공연 장소, 악기별 레슨, 운영비 등은 모두 세종문화회관이 제공하고 있다.
“전문 연주자는 아니지만 멋진 공연을 위한 단원들의 노력과 열정은 대단하다.”며 이들의 지휘를 맡고 있는 이선영 지휘자가 말문을 열었다.
그는 “단원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전문 연주자 못지 않다.”며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지고 서로 다른 곳에서 오신 분들이지만 이 곳에서만큼은 음악 하나만을 생각하며 서로 하나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단원들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마음과 열정이 자신에게도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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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영 지휘자와 세종나눔 앙상블 단원들의 연습은 보통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
매주 금요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되는 정기 연습시간은 보통 늦은 밤까지 이어지기 일쑤이다. 새벽 2시까지 남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단원들도 부지기수이다.
플룻을 연주하는 한정희 씨는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오로지 음악 하나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며 “같이 연습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웃으며 말했다.
“다 같이 열심히 연습하다 보면 다른 악기와의 조화를 찾을 수 있어요. 그러다보면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도 어느새 사라져 버리지요.”
클라리넷 연주자 권수연 씨는 “일주일 동안 혼자 연습하다가 이렇게 모여서 연습하면 너무 즐겁고 특히 지휘자 선생님의 열정적 지도에 신바람이 나서 더욱 연습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습장에서 본 이선영 지휘자와 단원들은 음 하나하나를 교정해가며, 말 그대로 혹독한 연습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단원 모두가 그런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이선영 지휘자는 “한번 연주된 음악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기 때문에 한 음을 제대로 소리내기 위해 몇 시간을 연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운동장서 손 떨며 연주해도 감동은 두 배”
세종나눔 앙상블은 연 2회의 정기 연주회와 찾아가는 연주회를 합쳐 연 10회의 연주회를 갖는다. 찾아가는 연주회는 문화소외지역을 찾아가 따뜻한 음악을 전하는 활동이다. 세종나눔 앙상블 2기는 그 일환으로 지난 3월, 통영을 찾아가 첫 연주회를 가졌다.
“원래는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참가하는 통영국제음악제의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좀 더 의미 있는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가덕도에 있는 소양 보육원과 통영 주변 섬의 분교를 찾아가기로 했어요.” (김은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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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가덕도 소양 보육원에서 열린 세종나눔 앙상블의 연주회 공연 모습. (사진 = 세종나눔 앙상블) |
김은정 감독은 “통영에서 국제음악제가 열리는 편이지만 주변 지역에 찾아가서 공연한 것은 세종나눔 앙상블이 처음”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소양 보육원에서는 강당이 없어서 운동장에서 연주를 했어요. 바람에 악보가 날아가기도 하고 단원들은 추위에 손이 굳어 연주하기도 어려웠지요.”
열악한 환경에서의 공연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분교 아이들을 위한 연주회를 갔는데, 섬에 있는 분교는 전교생이 10~15명인 데 반해 저희 단원은 45명이나 되는 거에요. 10명 내외의 아이들을 위해 일일이 섬을 찾아다니며 공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그래서 초등학교 강당을 빌려놓고 여러 섬의 아이들을 모두 차로 데리고 와서 연주회를 했어요.”
당시의 고생하던 기억을 떠올리는 그의 얼굴엔 이내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무지하게 고생했지만, 그래도 저희 음악에 감동받은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서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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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나눔 앙상블의 연주가 끝난 뒤 분교 아이들과 함께 한 모습 (사진 = 세종나눔 앙상블) |
통영에서의 연주회는 단원들에게도 즐거움과 감동을 주었다. 첼로를 연주하는 김은정씨는 “원래 아는 사람들끼리 섬을 돌아다니면서 연주회를 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 꿈을 이룬 것 같아 짜릿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클래식 연주회를 처음 보아서 그런지 사인을 받아가는 아이도 있었다.”며 “앞으로도 문화소외지역을 찾아가는 연주회를 계속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바이올린 연주자인 김지혜씨는 “지난 공연은 자신도 즐거운데 그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며 “일반적인 봉사활동과는 다르게 제가 무엇을 준다는 느낌보다 즐거움을 함께 나눈다는 느낌”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세종나눔 앙상블 단원들은 공연 외에도 세종 꿈나무 하모니 오케스트라 아이들을 대상으로 악기 연주를 가르쳐주는 재능나눔 활동도 펴고 있다. 세종 꿈나무 하모니 오케스트라는 저소득층이나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 청소년들이 음악에 대한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나눔 활동이다.
세종나눔 앙상블 단원들은 앞으로 세종 꿈나무 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아이들과 멘토 관계를 맺어 악기 지도뿐만 아니라 인생의 조언자 역할도 할 계획이라고 한다.
“모두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김은정 감독은 “세종나눔 앙상블 단원들의 실력은 지금도 잘 좋지만, 앞으로 프로 수준으로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욕심”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세종나눔 앙상블의 재능나눔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에요. 이를 통해 국민 모두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저희의 최종 목표에요.”
김 감독은 마지막으로, 세종나눔 앙상블과 세종 꿈나무 하모니 오케스트라의 활동을 위해서는 국민들의 꾸준한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다는 부탁의 말도 덧붙였다.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이 모두 즐거운 것이 바로 재능나눔 활동이다. 그래서인지 세종나눔 앙상블의 연습실과 이들의 무대는 이들이 전하는 ‘행복 바이러스’로 가득해 보였다. 음악으로 전하는 이들의 행복 바이러스가 앞으로도 더욱 훈훈하게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곳을 어루만져주길 기대해본다.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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