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산부배려석 ? 말뿐이죠… 수유실 ? 문 잠겼던데요 | news | 2010-12-09 |
 #1 : |
22.jpg |
 |
| 8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객차 안 노약자·임산부·영유아를 위한 좌석을 일반 승객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다. 신창섭기자 bluesky@munhwa.com |
“임산부나 아이를 대동한 엄마들은 장애인, 노인과 같은 ‘교통약자’입니다. 하지만 임산부배려석에 앉아본 적도 거의 없고 유모차를 끌고는 도저히 지하철을 탈 수가 없을 정도예요. 수유실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1호선 종각역에서 만난 임산부 송모(31)씨는 불룩해진 배를 한 손으로 감싸고 다른 한 손은 허리를 받치며 지친 얼굴로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송씨는 “지하철에서 임산부를 찾기 어려운 것은 임산부에게 지하철만큼 위험한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이다”며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출구가 많은데다 노약자 등을 위해 설치한 엘리베이터는 노인분들로 꽉 차 ‘젊은 아이 엄마’가 이용하는 것이 매우 눈치가 보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송씨는 이어 “노인들에게 자리는 양보해도 임산부나 어린아이를 대동한 아이 엄마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분위기도 없다”며 있으나 마나 한 임산부배려석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저출산 시대를 맞아 임산부와 ‘아이 엄마’를 배려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교통약자’인 이들을 보호, 배려하는 시설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처럼 사실상 ‘말 잔치’에서 끝나고 있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서울지하철 각 차량에 교통약자배려석을 지정하고 있지만 임산부와 아이를 대동한 승객들은 “유명무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6월 국토해양부는 지하철역 등 여객시설에 임산부 등을 위한 휴게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여객시설 내에 엘리베이터, 장애인화장실 등을 설치토록 의무화하고 있으나, 임산부가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휴게시설 등에는 별다른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지하철 내 설치된 수유실은 번지르르한 홍보에 비해 사용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이용률은 낮은 상태다.
5일 오후 찾은 지하철 6호선 안암역 상수행 열차. 8개의 칸에는 모두 임산부와 아이를 안은 아이 엄마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7석의 교통약자배려석이 있었지만 이곳에 앉아 있는 임산부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등산을 다녀온 듯한 건장한 40대 남성, 20대 초반의 여성, 노인 등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을 뿐 승객들 모두 임산부배려석에 대해 “그런 자리가 있었냐”는 반응이었다.
아이를 앉은 채 서 있었던 이선미(30)씨는 “지하철에서 아무도 양보를 해주지 않아 오는 내내 서서 왔다”며 “노약자석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자리라는 인식이 있어 만삭일 때도 이렇게 아이를 안고 나올 때도 자리에 앉기 눈치 보인다”고 한숨을 쉬었다.
유모차 이용이 잦고 수유할 공간이 필요한 임산부, 아이 엄마 등에게 지하철은 ‘불편하고 위험한 존재’일 뿐이다. 아기를 끌어안고 있던 임모(36)씨는 “유모차를 가지고 나오면 계단, 열차 턱 등 장애물이 많아 한 시간 걸릴 거리를 두 시간에 가야 한다”며 “출구에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지하철역도 많고 노약자 전용 엘리베이터는 눈치가 보여 쓰지도 못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9개월 된 아들을 유모차에 싣고 나온 유소영(22)씨는 “원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그곳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전 역에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야 하고 지하철을 탈 때 승강장과 열차의 간격이 넓어 유모차 바퀴가 자주 빠진다”며 “아이를 데리고 매일 외출하지만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날은 한 달에 두 번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부터 일종의 붐을 일으키며 서울 지하철 내에만 77개역에 설치된 ‘임산부수유방’ 또한 이들의 불만 대상이긴 마찬가지이다.
이날 찾은 종로3가역의 6평 남짓한 수유실은 기저귀교환대, 작은 소파, 전자레인지 등이 비치되어 있었지만 최근 사용한 흔적이 없는 듯 썰렁한 기운만 맴돌았다. 최근 방문한 흔적이 없는 방명록에는 “직원이랑 바로 연락이 되지 않아서 좀 오래 문앞에서 기다렸다. 쿠션 커버를 교체해주면 좋을 것 같다. 김○○의 어머니, 2010년 4월24일 방문”, “수유실이 있어도 어디 있는지 몰라 한참을 헤맸다”는 불만사항이 가득 적혀 있었다.
안내표지가 보이질 않아 어렵게 찾아간 안암역의 수유실은 문이 잠겨 있었고 10분 후 직원이 열어줘 들어간 내부에는 직원들의 물건들이 널려 있는 듯 임산부휴게시설이 아닌 ‘직원휴게소’와 같은 상황이었다. 이에 지하철역 관계자는 “안내표지판 등 홍보에 힘쓰고 있지만 한 달에 몇 명 정도만 찾는 수유실이 있을 정도로 이용률이 낮다”고 전했다.
임산부 정모(32)씨는 “차가 없는 임산부나 엄마들은 저렴하고 편리한 대중교통인 지하철 사용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외출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시설도 중요하지만 이를 잘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고 다른 승객들 또한 노인이나 장애인들을 대하듯 임산부를 배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