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코르 내 인생] 사업가로 은퇴후 7년만에 노인 심부름 회사 차린 권영록(70)씨 | news | 2011-11-14 |
“내 또래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공간 만들고 싶어
우리 회사는 최연소 65세부터 최고령 72세까지 전원 65세 이상으로 구성된 심부름 회사입니다. 노인이 무슨 심부름이냐고요? 세상엔 노인이 젊은이보다 월등히 잘하는 일이 많답니다. 예를 들어 지난달엔 이런 업무를 처리했어요.
"서울 서초동 원룸에 혼자 사는 여자 직장인이에요. 냉장고를 옮겨야 하는데 제 힘으론 꿈쩍도 안 해요. 젊은 남자는 부르기 무서우니 할아버지 도우미를 보내주세요."
"여기 불광동이에요. 남들처럼 나도 인터넷 뱅킹을 하고 싶은데, 나이도 많고 컴맹이라 너무 어렵네요. 와서 제 컴퓨터로 '공인인증서'인지 뭔지 좀 받아주세요."
"홍제동에 사는 맞벌이 부부입니다. 아이를 유명 유치원에 넣고 싶은데, 저희 대신 줄 서주실 분이 계실까요?"
"주말에 결혼식이 겹쳤어요. 저 대신 여의도에 가서 축의금 내고 방명록에 이름 적어주세요. 양복 입고 가셔야 합니다."
회사 이름은 '실버들'이고, 서울 영등포시장 근처 럭키다방 2층으로 매일 아침 7명이 출근합니다. 사무실엔 안 나오지만 집에 있을 테니 급할 때 불러달라는 분도 50명이 넘습니다. 심부름 내용에 따라 그때그때 알맞은 사람이 출동합니다. 직원들의 전직(前職)이 참 다양하거든요. 택시 몰던 분, 교사로 은퇴하신 분, 공인중개사 하다 그만두신 분…. 저요? 저는 젊어서 사업했던 사람입니다.
흔히 7전8기라고 하는데, 저는 5전6기입니다. 고향은 경북 영주이고, 철물 공장 4남매 중 막내아들로 유복하게 자랐는데, 중학교 때 그만 아버지 공장이 망했습니다. 악전고투 끝에 단국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공군 병장으로 제대했습니다. 영자 신문 기자가 꿈이었는데, 기자 시험 치기 전에 "임시로 잠깐 다니자"고 들어간 운송 회사에 그대로 눌러앉고 말았습니다. 일이 참 재미있더라고요.
어깨너머로 사업 요령을 배워 1969년 서울역 뒤에 창고를 빌리고 제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일본 출장길에 접착식 앨범을 사왔습니다. 한국에선 못 보던 물건이라 '이거다!' 싶었지요. 곧바로 앨범 공장을 차리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제품을 개발했는데 가격이 비싸서 안 팔립디다. 그 바람에 원래 하던 창고까지 문 닫았지요.
용기를 내서 이번에는 광고 회사를 차렸습니다. 고속버스에 무료로 구급함을 나눠주고 그 대신 운전석 위쪽에 광고판을 달아 짭짤하게 재미를 봤습니다. 때마침 서울과 수도권에 좌석버스 회사가 속속 생기더군요. '이거다!' 싶어 뛰어들었는데, 뒷심이 부족했는지 부도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유통업에 도전했습니다. 지하철역의 공무원연금매장을 보니 '앞으로 구멍가게는 지고 대형 매장이 뜨겠구나' 싶더라고요. 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들어 1988년 아현동에 첫 점포를 열었습니다. '쇼핑뉴스'라는 12면짜리 신문도 찍었습니다. 소비자들이 광고를 보고 전화하면 집으로 물건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도입했습니다. 홈쇼핑의 원조랄까요? 반응이 좋았습니다. 거기 고무돼 단기간에 너무 무리하게 점포를 늘렸나 봅니다. 충남 조치원에 차린 네 번째 점포가 무너지면서 사업 전체가 제 손을 떠났습니다.
그 뒤에도 잡지사를 운영하다 고배를 마시고, 소형 백화점을 차렸다가 문을 닫았습니다. 제 나이 어느덧 50대 중반이었고, 세상엔 인터넷이 막 보급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광고 회사를 차리고 인터넷 광고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아내(66)가 아팠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언제나 아이디어가 넘쳤고, 새로운 일이 좋았습니다. 고속버스 광고 할 때도, 홈쇼핑 신문 할 때도 '세상에 없던 일을 내가 만들어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원망스러웠을지 모릅니다. 저는 남보다 빨리 올라갔다 남보다 험하게 내리막길을 걷곤 했습니다. 수유리 단독주택(287㎡·80평)에 기사를 두고 살다가 갑자기 노량진 허름한 단칸방으로 이사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부침(浮沈)을 묵묵히 견딘 아내가 병을 얻으니 '내가 고생시켰구나' 싶어 마음 아팠습니다. 2003년 광고 회사를 정리하고, 공기 좋은 경기도 파주로 이사 갔습니다.
아무 일도 안 하면 편할 것 같지만 실제론 쓸쓸합니다. 돈도 돈이지만 '세상에 내 자리가 없다'는 무료함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를 고민하다 실버들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작년에 창업해 아직 빠듯합니다만, 저는 지금 일이 꽤 재미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사업하던 젊은 날과 달리, 요즘은 '나와 내 또래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소망이 더 강합니다. 아내가 말리지 않았느냐고요? 오히려 "좋은 일 한다"고 응원해주던데요.
조선닷컴
우리 회사는 최연소 65세부터 최고령 72세까지 전원 65세 이상으로 구성된 심부름 회사입니다. 노인이 무슨 심부름이냐고요? 세상엔 노인이 젊은이보다 월등히 잘하는 일이 많답니다. 예를 들어 지난달엔 이런 업무를 처리했어요.
"서울 서초동 원룸에 혼자 사는 여자 직장인이에요. 냉장고를 옮겨야 하는데 제 힘으론 꿈쩍도 안 해요. 젊은 남자는 부르기 무서우니 할아버지 도우미를 보내주세요."
"여기 불광동이에요. 남들처럼 나도 인터넷 뱅킹을 하고 싶은데, 나이도 많고 컴맹이라 너무 어렵네요. 와서 제 컴퓨터로 '공인인증서'인지 뭔지 좀 받아주세요."
"홍제동에 사는 맞벌이 부부입니다. 아이를 유명 유치원에 넣고 싶은데, 저희 대신 줄 서주실 분이 계실까요?"
"주말에 결혼식이 겹쳤어요. 저 대신 여의도에 가서 축의금 내고 방명록에 이름 적어주세요. 양복 입고 가셔야 합니다."
회사 이름은 '실버들'이고, 서울 영등포시장 근처 럭키다방 2층으로 매일 아침 7명이 출근합니다. 사무실엔 안 나오지만 집에 있을 테니 급할 때 불러달라는 분도 50명이 넘습니다. 심부름 내용에 따라 그때그때 알맞은 사람이 출동합니다. 직원들의 전직(前職)이 참 다양하거든요. 택시 몰던 분, 교사로 은퇴하신 분, 공인중개사 하다 그만두신 분…. 저요? 저는 젊어서 사업했던 사람입니다.
흔히 7전8기라고 하는데, 저는 5전6기입니다. 고향은 경북 영주이고, 철물 공장 4남매 중 막내아들로 유복하게 자랐는데, 중학교 때 그만 아버지 공장이 망했습니다. 악전고투 끝에 단국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공군 병장으로 제대했습니다. 영자 신문 기자가 꿈이었는데, 기자 시험 치기 전에 "임시로 잠깐 다니자"고 들어간 운송 회사에 그대로 눌러앉고 말았습니다. 일이 참 재미있더라고요.
어깨너머로 사업 요령을 배워 1969년 서울역 뒤에 창고를 빌리고 제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일본 출장길에 접착식 앨범을 사왔습니다. 한국에선 못 보던 물건이라 '이거다!' 싶었지요. 곧바로 앨범 공장을 차리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제품을 개발했는데 가격이 비싸서 안 팔립디다. 그 바람에 원래 하던 창고까지 문 닫았지요.
용기를 내서 이번에는 광고 회사를 차렸습니다. 고속버스에 무료로 구급함을 나눠주고 그 대신 운전석 위쪽에 광고판을 달아 짭짤하게 재미를 봤습니다. 때마침 서울과 수도권에 좌석버스 회사가 속속 생기더군요. '이거다!' 싶어 뛰어들었는데, 뒷심이 부족했는지 부도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유통업에 도전했습니다. 지하철역의 공무원연금매장을 보니 '앞으로 구멍가게는 지고 대형 매장이 뜨겠구나' 싶더라고요. 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들어 1988년 아현동에 첫 점포를 열었습니다. '쇼핑뉴스'라는 12면짜리 신문도 찍었습니다. 소비자들이 광고를 보고 전화하면 집으로 물건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도입했습니다. 홈쇼핑의 원조랄까요? 반응이 좋았습니다. 거기 고무돼 단기간에 너무 무리하게 점포를 늘렸나 봅니다. 충남 조치원에 차린 네 번째 점포가 무너지면서 사업 전체가 제 손을 떠났습니다.
그 뒤에도 잡지사를 운영하다 고배를 마시고, 소형 백화점을 차렸다가 문을 닫았습니다. 제 나이 어느덧 50대 중반이었고, 세상엔 인터넷이 막 보급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광고 회사를 차리고 인터넷 광고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아내(66)가 아팠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언제나 아이디어가 넘쳤고, 새로운 일이 좋았습니다. 고속버스 광고 할 때도, 홈쇼핑 신문 할 때도 '세상에 없던 일을 내가 만들어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원망스러웠을지 모릅니다. 저는 남보다 빨리 올라갔다 남보다 험하게 내리막길을 걷곤 했습니다. 수유리 단독주택(287㎡·80평)에 기사를 두고 살다가 갑자기 노량진 허름한 단칸방으로 이사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부침(浮沈)을 묵묵히 견딘 아내가 병을 얻으니 '내가 고생시켰구나' 싶어 마음 아팠습니다. 2003년 광고 회사를 정리하고, 공기 좋은 경기도 파주로 이사 갔습니다.
아무 일도 안 하면 편할 것 같지만 실제론 쓸쓸합니다. 돈도 돈이지만 '세상에 내 자리가 없다'는 무료함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를 고민하다 실버들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작년에 창업해 아직 빠듯합니다만, 저는 지금 일이 꽤 재미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사업하던 젊은 날과 달리, 요즘은 '나와 내 또래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소망이 더 강합니다. 아내가 말리지 않았느냐고요? 오히려 "좋은 일 한다"고 응원해주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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