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대청도에서 줄곧 학교를 다녔던 백모군이 서울대를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교육 한번 받지 않았던 백군의 뒤에는 해병대 장병들이 꾸린 ‘주말학교’라는 든든한 빽이 있었다. 최근 나눔의 의미가 물질적 기부뿐만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사회취약계층과 함께 나누는 움직임으로 확대되고 있다. 공감코리아(korea.kr)는 2011년 신년기획으로 우리 사회를 더욱 따뜻하고 행복하게 하는데 작은 밑거름이 되고 있는 재능 나눔과 봉사 현장을 소개한다.

서울 종로구 창신3동 23-315번지. 숨이 찰 정도로 가파른 길을 10분 정도 올라가면 산 중턱을 깎아 만든 평지에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30여 년 전 산 아래 보금자리가 재개발로 사라지면서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이곳에 삶의 터전을 잡게 됐다.

처음에는 30~40가구가 돈을 벌어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생각으로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삼았었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잘 풀리지 않아 아직도 이곳을 뜨지 못한 11가구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시유지에 지은 무허가 건물이라며 관할 구청이 퇴거를 독촉하는 바람에 하루하루 불안했지만, 이곳 아니면 서울 어디에도 발붙일 곳 없는 사람들이다.

서울 종로구 창신3동 판자촌. 베니어합판으로 지은 판잣집 11가구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한곳에 몰려있는 공동사용 전기계량기가 이곳의 열악한 환경을 암시하는듯 하다.

집은 베니어합판으로 엮어 비가 새지 않도록 천막으로 지붕을 씌워놓았다. 무허가 건물이니 함부로 개축할 수 없어, 집안 구석구석 습기 때문에 썩은 곳이 눈에 띄었고 문짝과 창틀에 틈이 벌어져 외풍을 막는 효과는 기대할 수도 없었다. 대부분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니, 비가 새고 문짝이 떨어지고 보일러가 고장 나도 손 댈 엄두를 못 낸다.

그런 이곳에 지난 3월30일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지난 10년 간 이곳을 들락거리며 다 쓰러져 가는 판잣집을 더 쓸 수 있도록 수리해 주고 있는 최영섭 씨(‘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자원봉사단장)를 비롯한 집수리 봉사자들이다.

최영섭 씨 일행은 이날 이옥형 할머니(93) 집에 도배와 장판, 연탄보일러, 문짝 등을 새로 교체해 주기로 했다. 재료는 학사모와 사단법인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가 모은 기금으로 마련했다. 특히 이날은 한국자원봉사협의회와 대한구조봉사회 911구조대,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직원들도 함께 와, 비만 오면 질척거리는 땅에 벽돌길 조성이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3월30일 이곳에는 최영섭씨를 비롯한 많은 봉사자들이 판자촌을 찾아와 비만오면 질퍽해지는 마당 한쪽에 벽돌을 깔아 길을 내고 있다.

“일반 기술자들은 돈을 준다고 해도 여기에 오려고 하지 않아요. 도배나 장판 새로 하려면 집기를 들어내야 하는데 어르신들이 힘이 없으니 수 년 동안 쌓이고 쌓여서 1톤 트럭 한대 분은 족히 나오지, 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지니까 엄두를 못내는 거지.”(최영섭씨)

기존 도배지를 뜯어내자 ‘어떻게 이런 집에서 생활을 할까?’ 싶을 정도로 수북이 쌓인 먼지가 날리고 매캐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장판을 걷어내자 여기저기 내려앉은 시멘트 바닥이 들어났고 바퀴벌레가 화들짝 놀라 어두운 곳으로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최영섭씨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지난 겨울 추위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싶을 정도로 너덜너덜한 방문을 뜯어내고 그 자리에 새 문짝을 설치하는 데 걸린 시간은 30여 분. 삐죽삐죽 튀어나온 합판을 반듯하게 맞추고 벽면과 문틀 사이에 벌어진 틈을 메우는 등 일반기술자도 엄두를 못 낼 작업이 척척 진행됐다. 15년 동안 최씨와 집수리 봉사를 하고 있는 이승환씨도 “최영섭씨만 있으면 안되는 것이 없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영섭씨가 이옥형 할머니집 방문을 새 문짝으로 교체하고 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이옥형 할머니는 “지난 겨울엔 말도 못하게 추웠어. 구청에서 전기장판을 쓰라고 갔다 줬는데 전기세 때문에 맘 놓고 쓸 수가 있어야지. 만약 나한테 아들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는 못 해 줄 거야.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네”하며 미안한 다음을 감추지 못했다.

최영섭씨가 집수리 봉사를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구조활동에 나선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소식과 구조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뉴스를 듣고 새벽 3시 택시를 타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은 생각보다 참혹했다. 그처럼 큰 붕괴사고를 겪은 적이 없었던 정부의 구조체계는 너무나 허술했다. 당시 500여 명의 민간 봉사자들이 함께 구조활동에 나섰는데, 그 때를 계기로 정부의 재난구조체계가 발전하고 자원봉사도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 자신도 독거노인을 돕는 봉사에 뛰어들었다.

판자촌에서 3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이옥형 할머니. 봉사자들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건축기술을 활용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어떨까 해서 시작한 것이 집수리 봉사였다. 목공기술자인 최영섭씨는 이외에도 안전관리, 설비기술, 보일러기술 등의 자격증을 취득해 못 고치는 게 없는 ‘신의 손’으로 불기기도 한다.

“지난 겨울에 연탄보일러 잘 돌아갔어요? 연탄은 많이 들어갔는데 방은 별로 안 따뜻했죠? 내가 배관 새로 깔고 보일러 손 좀 보면 따뜻해 질거야.”

그는 보일러 배관을 깔 때도 가구 배치와 집을 쓰는 사람의 건강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달리 깐다. “이옥형 할머니는 무릎이 안 좋아서 침대에서 생활한다”며 “침대 놓는 자리가 아닌 곳이 주로 방바닥을 많이 활용하는 공간이니까 그곳에 배관을 촘촘히 깔아야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고 전했다.

최영섭씨가 지금까지 수리한 집만도 2000여 채에 이른다. 그는 “어려서 배운 보일러 수리기술을 이렇게 유용하게 써먹고 있는 것이 기쁘다”며 “돈을 기부하는 것보다 내가 가진 기술을 활용해 이웃이 포근하게 살 수 있는 집으로 수리해 주는 것에서 나름대로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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