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실 안의 작은 혁명 ‘시작 교실’ | news | 2011-04-29 |
- 수업으로 연대 맺으며 교내 비정규직 문제 고민
“컴퓨터교실 하면서 동료들과 메일도 주고 받아요. 오늘은 사진을 메일로 보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요. 어렵지만 정말 재밌어요.”
‘시간을 돌리는 작은 교실(이하 시작교실)’에서 컴퓨터를 배우고 있는 이 모 씨가 동료에게 온 메일에 답장을 보내며 말했다.
시작교실은 교내 근로자 노동조합 조직화 과정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노동자와 학생간의 연대를 고민하던 중 한글을 모르는 노동자분들에게 학생들이 직접 나서 강의를 해드리자는 취지로 지난 2010년 문을 열었다.
50~60대 연세 드신 분들이 대다수인 미화 노동자분들이 학교를 다니던 옛 시절로 되돌아가 한글도 배우고, 컴퓨터도 배워보시라는 의미에서 이름도 ‘시간을 돌리는 작은 교실’로 지었다.
이렇게 시작된 ‘시작교실’은 2010년 연세대학교에서 처음 문을 연 뒤 현재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싹을 틔워가고 있다. 노조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이화여자대학교는 ‘교실’을 통해 노동자와 학생이 연대할 수 있게 만들자는 뜻에서‘한글교실’과 ‘컴퓨터교실’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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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교실’ 수업 장면. 컴퓨터교실에서 학생과 노동자들이 노트북을 이용해 인터넷 수업을 하고 있다. |
이화여대 시작교실은 일주일에 두 번씩 한글교실과 컴퓨터교실을 연다. 수업시간은 1시간 30분~2시간이다. 한글교실 교재비를 제외하고는 수강료가 무료로 운영된다.
한글교실은 6명의 학강과 12명의 선생님으로 구성된다. 이 수업에서는 배우는 사람 모두를 일컬어 ‘학강’이라 부르는데, 학강이란 말은 원래 야학에서 쓰였던 말이다. 한글교실은 학강별 학습 수준을 고려해 일대일 수업으로 진행된다.
컴퓨터교실은 현재 10명의 학강과 4~5명의 선생님이 진행하고 있다. 수업은 메인 교사가 앞에서 프로젝터 화면을 통해 설명을 하고 보조교사들이 도움이 필요한 학강에게 직접 가서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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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교실은 학강들의 수준별 수업을 위해 일대일 수업이 진행된다. |
시작교실의 운영진은 총 4명. 교사는 이화여대 학생뿐만 아니라 연세대학교 학생, 졸업생, 대학원생, IT노조 활동가, 서부 비정규센터 등으로 구성된다.
한글교실 교사인 홍민희(이화여대, 23세) 씨는 “교사가 꿈인 저에게 시작교실은 정말 뜻 깊은 활동”이라며 “한글을 가르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오히려 더 많이 배우고 간다.”고 말했다.
컴퓨터교실 교사인 대학생 전지원(이화여대, 22세)양은 “컴퓨터 사용이 젊은 세대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나이 드신 분들에겐 생소한 일이라 일일이 설명드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며 “그래도 학강분들의 배움의 의지가 강해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시작교실 회장을 맡고 있는 김문진 씨는 “신입교사가 들어오면 바로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강들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1년에 두 차례씩 오리엔테이션과 워크샵을 진행한다.”며 “시작교실에 대한 이해와 학강들과 교류하려는 정서가 갖추어졌을 때 실무에 투입한다.”고 말했다.
한글교실 교사 정상현(연세대, 22세)씨도 “처음 한글교실을 시작했을 때 학강들에게 강의실과 시간을 문자메시지로 보낸 적이 있는데 아무도 답변을 주지 않아 당황했다.”며 “저희들에겐 간편한 문자 메시지가 한글을 모르는 분들에겐 불편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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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교실은 학생들과 노동자분들의 소통의 장으로 활용된다. |
한글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박점례 씨는 “일을 하면서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기쁘다.”며 “대학생 선생님과 일대일 수업을 하니 더 많이 배울 수 있고 글쓰기에도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컴퓨터를 배우는 이주현(가명)씨도 “선생님이 하나하나 너무도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셔서 늘 고맙다.”며 “앞으로 더 많이 배워 인터넷 쇼핑과 은행업무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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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학강이 배운 내용을 꼼꼼히 적으며 컴퓨터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
시작교실이 처음부터 순탄하게 진행되었던 것만은 아니다. 회장 김문진 씨는 “수업을 위한 장소가 없어 매번 학생들이 강의실을 빌려서 사용했던 데다, 매번 달라진 강의실 탓에 학강분들이 찾아오기 힘들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컴퓨터교실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경진(이화여대, 24) 선생님은 “학교 컴퓨터실을 사용하지 못해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행히 한 기업체에서 노트북을 기증해준 덕분에 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인터넷 사용도 여의치 않아 곤란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현재는 이화여대에서 시작교실을 위한 강의실과 컴퓨터실을 제공하고 있다. 고정 강의실과 인터넷 시설이 구비된 컴퓨터실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학강들의 수도 더 늘고, 수업 분위기도 한결 안정적으로 변했다.
이렇게 노동자와 학생들간의 연대를 위해 생겨난 시작교실에 힘입어 지난 3월 말에는 작지만 큰 성과를 얻기도 했다. 교내 미화 노동자들 시급인상 및 식대인상,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는 시위에 나서자 학생들이 이들의 고민에 동참하게 된 것.
학생들은 서명운동과 학내 건의 등을 통해 이들 교내 비정규직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적극 동참했고, 그 결과 지난 3월 25일 이들의 요구안이 타결되는 성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는 평소 교내 근로자의 문제에 무관심했던 다른 학생들에게도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
한글과 컴퓨터 수업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소통하고, 이들의 삶의 질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시간을 돌리는 작은 교실’이 꿈꾸는 목표이다. 이들의 작은 노력을 공존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교실 안의 작은 혁명’이라 불러보면 어떨까.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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