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세 탁구왕 김혜자 할머니 ‘핑퐁’ 소리 들으면 가슴 ‘쿵쾅’ | news | 2012-03-20 |
53세에 시작, 발목에 철심 박고도 탁구장으로…건강 허락하는 한 계속할 터
‘핑퐁 핑퐁’
영하를 웃도는 추운 날씨에도 수원시 행궁동에 위치한 열린탁구광장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열띤 탁구 연습으로 후끈거렸다.
“우린 난방 장치 하나 없어요. 심지어 지하인데도 별로 안 춥죠? 다들 반팔, 반바지 입고 연습하는 것 보세요. 우리 할머니 아닌 것 같지요?”
할머니들 사이에서 막내로 통한다는 74세의 김혜자(팔달구청 70대부 대표선수)할머니는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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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탁구 연습을 하는 수원시 행궁동 ‘열린탁구광장’ 입구 |
김 할머니는 2011년 ‘정현숙배 단양오픈탁구대회(한·중·일 친선탁구대회 선발전)’에서 우승을 시작으로 2010년 이애리사배 전국탁구대회 최강전과 홍천 무궁화배 전국오픈탁구대회에서 연거푸 우승을 거머쥔 실력자이다. 정현숙배 탁구대회 우승으로 김 할머니는 중국에서 열리는 친선 경기대회의 참가자격도 따냈다.
“아유, 나 같은 사람한테 그런 기회를 주는 게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렇지만 2위한 사람에게 (중국에 갈 기회를) 양보했어요. 한 살이라도 젊은 사람이 더 큰 대회에 나가도록 기회를 주는 게 맞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배워서 잘 하라고. 나는 운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이예요.”
53세에 탁구를 시작한 김 할머니는 그저 ‘탁구 좀 칠 줄 아는’ 생활 탁구인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탁구를 치다 보니 재미가 붙었고, 탁구에 푹 빠지다 보니 실력이 늘었고,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들의 경기도 봐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대한탁구협회에서 시행하는 심판 교육을 이수하게 되었고 3급 심판 자격증을 따냈다. 매년 심판 경력이 자꾸 쌓이면서 할머니는 2급, 1급 심판으로 승급하게 되었고, 1급 자격을 얻은 지는 벌써 10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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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세 탁구왕 김혜자 할머니. 정현숙배 탁구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김 할머니는 중국에서 열리는 친선 경기대회의 참가자격을 따냈다. |
“상 받은 경기도 다 기억하기 어렵지만 심판 본 경기들도 모두 기억 못 할 정도로 많지요. 그래도 70세가 넘으니까 힘에 부치더라고요. 심판 보려면 전국을 다 다녀야 하는데 1박 2일, 2박 3일 일정도 많고, 선수 선발 같은 경우는 정말 중요한 시합인데 혹시나 내가 잘못해서 한 젊은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잖아요?”
최고령자이지만 그동안 실수 한 번 없이 심판생활을 잘 이끌어온 김 할머니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신중해진다.”며 “나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경기에서 심판 볼 기회를 줘야죠. 실수하지 않고 잘 할 때 물러나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요.”라며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할머니가 처음 탁구를 시작한 건 충주에서 중학교를 다닐 무렵이었다. 잠깐 탁구부에서 클럽 활동을 했지만 현실은 열악했다. 흙마루 강당에 마땅한 탁구대와 라켓이 없어 굴러다니는 낡은 책상을 붙이고 송판을 깎아 라켓을 만들어야 할 정도였다.
“말도 마. 그 때 채 깎다 손도 많이 베었어요. 코치라고 할 선생님도 없었지. 그냥 육상 선생님이 가끔 와서 보고 가고 그랬어요.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는데 그저 재밌어서 애들끼리 치고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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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시 팔달동(현 행궁동) 주민자치센터로 부터 받은 감사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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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생활체육수원시탁구연합회 이사 임명장 |
할머니는 탁구를 정석으로 배우지 않아 손목 탁구를 치는데 오히려 선수들은 그런 공을 받아내지 못했다. 경우가 없이 들어가는 공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건 열심히 하는 거죠. 나는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예요. 대회에 나가서 3등하고 그러면 잠을 못 잘 정도로 오기가 생겨요. 그럼 더 열심히 연습하죠.”
얼마 전, 할머니는 다리를 수술해 발목에 큰 철심을 박았다. 그래도 하루에 2~3시간씩 꾸준히 운동을 한다.
“큰 수술했어. 다리가 많이 아팠거든요. 그래도 집에만 있으려니 갑갑하죠. 날이 추워도 나가서 사람들 만나 얘기도 하고, 햇빛도 쐬고 그래야 사람 사는 거지. 안 그래요? 수술하고 며칠 만에 나와서 집 주변 산책하다 결국 여기(열린탁구광장) 나와서 사람들 보고, 탁구 치고 그랬죠. 오히려 집에 가만히 있을 때 다 회복도 훨씬 빨라요. 의사 선생님도 잘 했다고 하더라고.”
김 할머니는 “탁구가 단점이 거의 없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탁구는 실내에서 하기 때문에 날씨에 관계 없이 늘 할 수 있고, 여성들의 피부미용에도 좋다. 탁구는 특히 혼자 할 수 없는 운동이라서 더 매력적이다. 사람들이 함께하는 만큼 더 재미있고 에너지를 배로 얻을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운동하는 데 드는 비용이 아주 적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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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세의 나이에도 힘차게 공을 받아치는 김 할머니 |
“일본에서 조사했는데 각 운동 별로 정신적, 체력적으로 좋은 점들을 비교했더니 1위가 탁구였대요. 치매 예방에도 좋고, 크게 힘들지 않기 때문에 나이든 사람한테 아주 좋죠. 또 생각보다 탁구가 스릴있다니까요.”
“탁구는 공이 살아있어요. 그 공처럼 나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마지막까지 힘차게 움직이는 게 내 꿈이예요. 사실 나이를 먹으니 해마다 마음가짐, 자세가 달라요. 겁부터 나고,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죠. 그런데 또 지나고 보면 그런 생각을 했던 때가 참 젊었더라고요.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해요. 우리 탁구 광장에는 88세 넘은 어르신도 탁구 열심히 치세요.”
할머니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말씀을 전하고 싶으실까. “탁구 치러 왔다가 공 잘 못 받고, 자꾸 공만 주우러 다니는 게 부끄러워서 조금 나오다 그만 두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나면서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다 부끄럽지만 열심히 공 주우러 다니다보면 잘 치게 되는 거죠. 자꾸 실패를 거듭하면서 내 것이 되고, 또 실력자가 되고, 남들이 인정하고 그러는 거예요.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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