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5일간의 세계일주가 이들 가족에게 남긴 것 | news | 2012-0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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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세상이 학교다 여행이 공부다’ 펴낸 옥봉수·박임순 부부
세 자녀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옥봉수, 박임순 교사 부부. 각각 고2, 고1, 중2가 되는 세 명의 자녀들은 언제나 짜증섞인 얼굴이었고, 그 나이 또래에 가질 법한 꿈마저 잃은 지 오래였다. 성적 이야기만 나오면 엇나가는 아이들에, 집은 점점 하숙집으로 변해갔다.
돌파구가 필요했던 이들 부부은 22년간 몸담았던 학교에 과감히 사표를 제출하고는 세 아이를 중퇴시킨 뒤 545일간 세계 여행을 떠났다. 최근 출간된 여행기 ‘세상이 학교다 여행이 공부다’에는 옥 씨 부부가 2008년 9월부터 33개국을 돌며 겪은 경험담과 여행에서 돌아온 뒤 세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후일담이 생생하게 녹아있다.
‘경쟁은 치열한데 경쟁력은 떨어지는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에 갈피를 못 잡는 부모들에게 이들 부부는 성적표에만 연연하지 말고 한번쯤은 20년 뒤 자녀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한편으론 무모해보이기까지 하는 이들 부부의 용기의 원천이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져 직접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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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여행을 통해 ‘가정의 행복’을 경험한 다섯 식구. 미국 서부 모뉴멘트밸리에서 석양을 감상하는 옥봉수, 박임순 부부와 세 자녀들 (사진=옥봉수 개인 소장용) |
“세계 여행은 ‘우리 가정의 회복’을 위해서였습니다.” 부부는 솔직하게 지난 시절의 가정사를 털어놓았다. 동갑내기 부부는 아들과 딸을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키우자며 어린 시절부터 학원 대신 산과 들로 데리고 다니며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밑바탕과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힘들 길러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맏딸 윤영이가 중학교 첫 시험에서 350명 중 215등의 성적표를 받아오면서부터 마음이 흔들렸다. 그 뒤 사춘기 아이들은 반항하기 시작했고 5년간 지독한 갈등을 겪었다. “교실에서 1등은 단 한명일 수밖에 없어요. 나머진 들러리죠. 문제는 내 아이가 1등의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부모들이 공부하라고 닦달을 한다는 거죠. 선생인 우리도 그랬으니까요.”
방향 없이 무작정 돌기만 하는 일상의 쳇바퀴를 멈추고 세 아이들에게 교과서 밖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쉰을 바라보는 부부에게도 가슴 속에 품은 꿈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제 꿈은 선생님이었어요. 때문에 교사란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최고였죠. 햇병아리 교사 시절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에겐 성적과 상관 없이 다들 자신들의 꿈을 재잘거리게 했어요.”
“하지만 20여 년이 흐르면서 똑같은 교실 안 십대들에겐 무기력감이 엿보이고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교육자로서 우리도 넓은 세상을 보며 해법을 찾고 싶었죠.” 박임순 씨가 속내를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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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환호하는 다섯 식구 (사진=옥봉수 개인 소장용) |
퇴직금 1억7600만 원으로 여비를 마련, 여행길에 올랐다. 취향도 기질도 모두 다른 다섯 식구가 24시간 내내 붙어 다니다 보니 다툼도 많았지만 점차 공감대가 생기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아프리카 세렝게티의 장엄한 일출을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는 아버지, 남미의 웅장한 이과수 폭포 앞에서 넋을 잃은 어머니, 이집트 홍해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만났던 기막히게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는 아이들. ‘옥패밀리’ 다섯 명은 각자의 시선으로 넓은 세상을 보면서 인생 설계도를 차근차근 그리기 시작했다.
33개국을 돌며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도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대를 살면서도 지구상에는 100년의 갭이 존재하더군요. 케냐, 미얀마 등에서는 대한민국의 30~40년 전 과거가 오버랩돼 보이고 우리나라의 30년 후의 모습은 북유럽 국가들에서 힌트를 얻었죠. 그러면서 우리 옥패밀리는 앞으로는 ‘학력이 아닌 실력이고 학벌이 아닌 능력’이 중요하다는 확신을 얻게됐죠.”
옥 씨가 자신 있게 말하며 여행 중 경험한 에피소드 한 토막을 들려준다. “남미대륙을 두 달 반 여행하고 나더니 세 아이가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다고 조르더군요. 과테말라 안티구아에서 두 달간 집을 렌트해 스페인어를 가르쳤죠. 한국에선 공부에 젬병이었던 큰딸이 스페인어에 푹 빠져 공부가 재미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말하더군요. 그때 깨달았어요. 본인이 하고 싶은 걸 공부하게 해야 한다는 걸요. 그러면서 부모인 우리도 잘 몰랐던 아이마다의 개성과 장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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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미 이과수 폭포의 웅장함을 생생히 경험한 가족 (사진=옥봉수 개인 소장용) |
2010년 여행에서 돌아온 이들 가족. 6개월 뒤 세 아이는 고졸검정고시에 나란히 합격했고 지금은 각자가 정한 길을 걷고 있다. 큰딸 윤영(22세)씨의 꿈은 토털 미용 사업가. 병원코디네이터, 피부미용사, 비만관리사 자격증을 잇따라 딴 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영학 독학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곧 심리학에도 도전할 예정이다.
둘째 은택(21세)씨는 공간지각력의 장점을 살려 CAD자격증을 딴 뒤 충주 폴리텍대학을 다닌 뒤, 현재 방위산업체에 근무 중이다. 사이버대학에서 기술사가 되기 위한 공부도 병행하고 있다. 아프리카에 기술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인생 계획표를 세우고 차근차근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막내 은찬(19세)군은 글로벌 CEO가 꿈. 먼저 돈의 흐름을 파악해야겠다고 마음먹고 17살에 전산세무회계 자격증을 따 지금은 세무사에 취직, 직장인이 되었다. 2년간 실무를 익히고 돈을 모은 뒤 경영학 공부를 하러 미국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대학 졸업장이 평생을 책임지지 못합니다. 핵심은 내 적성과 좋아하는 분야가 뭔지를 정확히 아는 겁니다. 반드시 대학 먼저 다니고 그 뒤 취업이 정답은 아닙니다. 순서를 바꿔 취업을 먼저 해 사회를 경험한 뒤 본인의 적성에 맞춰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옥 씨는 북미, 북유럽 국가 젊은이들을 보며 확신을 얻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옥 씨는 그러면서, 여행 중 자주 만난 30~40대 한국인 배낭여행객을 보며 안타까웠던 사연도 들려줬다. “유럽에서 우연히 35살 젊은이를 만났어요. 서울대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다 뒤늦게 자신이 원하던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사표를 던지고 훌쩍 여행을 떠났데요. 조금 있으면 마흔인데 이제서야 뭘 하며 살아야 할지를 고민한다며 멋모르고 산 20대가 후회된다고. 여행 중에 우리는 이런 한국 청년들을 자주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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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세상이 학교다 여행이 공부다’를 펴낸 뒤 ‘가정과 교육 세움터’를 오픈, 제2의 교육자 인생을 살고 있는 옥봉수, 박임순 소장 |
세 아이뿐만 아니라 옥봉수, 박임순 부부도 세계여행기 ‘세상이 학교다 여행이 공부다’를 펴낸 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가정과 교육 세움터’를 세우고 청소년 진로교육, 감성코칭을 통한 부모 교육을 전국 각지에서 진행하고 있다. 교실 안 학생이 아닌 교실 밖 부모와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그들은 교사 시절보다 훨씬 폭넓은 제자를 갖게 된 셈이다.
“우리 다섯 식구는 지금 행복합니다. 학부모 강의 때마다 우리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말합니다. 자녀 교육에 올인하지 말고 일찌감치 자녀독립 프로젝트를 준비하라고. 부모는 진로의 방향만 가이드해 줄 뿐 노력과 실천은 아이들 스스로의 몫입니다.” 치열한 고민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두 부부의 충고에는 울림이 느껴졌다.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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