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엄마 손을 떠나 혼자 버스를 타기 시작한 어린 시절, 혹은 처음 찾은 낯선 곳에서 반대 방향으로 버스를 타 낭패를 봤던 기억,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방향 표시가 없는 버스 노선도에 빨간색 화살표로 방향을 표시해 ‘화살표 청년’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민호씨(23) 역시 1년 전까지만 해도 초행길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잘못 타지 않기 위해 긴장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제가 ‘방향치’예요. 어렸을 때부터 버스를 역방향으로 탄 적이 많아 항상 노선도를 유심히 살펴보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방향 표시가 없는 버스 노선도가 눈에 많이 띄더군요. 요즘은 스마트폰 어플을 사용하면서 실수가 많이 줄긴 했지만 어르신들은 여전히 불편해하시더라고요. 저한테도 많이 물어보시고 버스 기사님에게도 이 방향으로 타는 게 맞는지 확인하시는 모습을 보고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다산콜센터에 전화해 버스 방향을 표시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처리하는 데 2, 3주가 걸렸고 방향 표시가 누락된 노선도를 찾을 때마다 일일이 전화해 신고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마침 자전거를 산 그는 직접 자전거를 타고 서울 시내 버스정류장을 돌며 빨간 화살표로 버스 진행 방향을 표시해 나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엔 친구들과 같이해볼까 했는데 봉사활동 시간을 주거나 취업에 도움 되는 스펙을 쌓는 일도 아닌데 왜 하느냐는 반응이었어요. 버스 정류장에서 스티커를 붙이고 있으면 노선도에 장난을 치거나 불법 전단지를 붙이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분들도 계셨고요. 나름 좋은 의도로 하는 일인데 그런 시선을 받을 때면 머쓱했죠. 요즘엔 화살표 덕분에 헤매지 않았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해오는 분들이 많아요. 귤이나 빵 같은 걸 챙겨주는 분들도 계시고요.
저로서는 개인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절약하고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 재미있고 신나더라고요. 비 올 때는 우의를 입고, 눈이 올 땐 나름 낭만적인 기분을 느끼며 자전거를 타고 나가게 됐죠.”
SNS와 네티즌들 사이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타고 버스 정류장에 화살표를 붙이는 화살표 청년’이 알려지며 얼마 전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표창도 받았다. 처음에는 엉뚱하게만 생각됐던 그의 작은 행동이 천만 서울 시민의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아이디어가 된 것이다.
“화살표를 붙이다 보면 폐지된 노선도가 그대로 붙어 있거나 있어야 할 노선도가 빠져 있는 정류장들이 있어요. 플라스틱 보호막이 설치되지 않아 찢어지거나 훼손된 노선도도 많고요. 처음에는 방향 표시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 다른 문제점들도 보이더라고요. 제가 할 수 없는 일은 신고를 해서 꼭 수정되도록 하고 있어요. 버스는 서민들의 발이잖아요. 저 역시 버스를 이용하는 서울 시민 중 한 사람이고요.”
전보다 민원이 처리되는 속도가 빨라졌고 다른 지자체에서도 이러한 일을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분위기가 생겼다. 생각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끼며 ‘시작하길 참 잘했다’라는 생각을 한다고. 올 여름 평생교육진흥원에서 전자공학 학사를 받고 취업 준비생이 되는 그는 취업 활동을 하는 틈틈이 화살표 붙이는 일도 계속할 생각이다.
 |
| ‘Smile in Your life’에서는 숨 가쁜 일상 속 비타민이 돼줄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 잠시 주변을 돌아보며 쉼표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지친 하루에 기분 좋은 미소를 부르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입니다. | |
“서울과 수도권에 버스 정류장이 3만 곳이 있어요. 지난해 11월부터 지금까지 제가 화살표를 붙인 서울 시내 버스 정류장은 천 곳 정도인데, 우선 서울 시내 버스 정류장을 ‘정복’하고 수도권, 전국으로도 가볼 생각이에요. 얼마 전에 8장에 5백20개가 들어 있는 화살표 스티커 값이 8백원에서 천원으로 올라 살짝 걱정이 되긴 하지만 단돈 천원으로 많은 사람들이 편리해질 수 있잖아요. 이 정도는 손해 보는 일도 아니죠(웃음).”
레이디경향
|
#1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