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으로 시작된 절망도 다른 환자 섬기니 희망으로"

암으로 4년간 여섯 번의 수술을 받았다. 오른쪽 눈 뒤쪽 뇌의 수술할 수 없는 부위에는 아직 콩알만 한 종양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종양은 수시로 참기 힘든 두통을 몰고 온다. 암 재발을 막기 위해 난소를 제거했고, 거듭되는 수술로 자꾸만 구부정해지는 몸을 바로잡기 위한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미국 '아시안 암 환우회' 손경미(49) 회장을 최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을 때, 암 환자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너무 밝고 명랑해서다.

"머리도 일부러 길게 기르고, 밖에 나갈 땐 '분장' 수준으로 화장을 해요. 암 환자라면 당연히 머리 다 빠지고 야위어서 금세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란 편견을 깨주려고요. 저를 보며 다른 암 환자들도 '그래, 나도 이겨낼 수 있어' 하며 힘을 얻으라고요."

손 회장은 암 환자를 돕는 암 환자다. 그가 이끄는 아시안 암 환우회는 시카고 본부에 환자와 자원봉사자 등 회원 250여명이 있고, 워싱턴DC와 시애틀, 캐나다 밴쿠버 등에도 지부를 갖춘 미 연방정부 등록 비영리단체다. 주기적으로 암 극복 관련 세미나와 암 환자들을 위한 '희망 음악회'를 연다. 항암치료로 입맛을 잃은 환자들을 위해 식사 뒷바라지도 하고,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을 잃은 환자들을 위해 할머니 봉사자들이 털모자를 뜬다. 암 환자들은 다른 환자들과 치료 경험을 나누고, 편지를 통해 위로를 얻고, 회복된 사람들 모습에서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배운다. 손 회장은 최근 자신의 암 환우회 활동 경험 등을 담은 책 'With You - 당신에게 힘이 될게요'(생명의말씀사)를 펴내고 한국을 방문했다.

그가 암 진단을 받은 건 2003년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 갔다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손씨는 오른쪽 늑골 아랫부분에 진주 목걸이 알처럼 딱딱한 무언가가 짚이는 걸 느꼈다. 유방암이었다. "열 몇 시간씩 수술받은 적도 있어요. 살려고 꿈틀대는 것 같은, 벌레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죠. 누가 밥을 떠 먹여주지 않으면 먹지도 못하고, 화장실을 데려가 주지 않으면 용변도 못 보고…." 아이들은 "엄마, 이제 죽는 거야?" 하고 물었다.

죽음의 벼랑 끝에 몰려 여섯 번째 항암 치료를 받던 2008년, 손씨는 자궁암으로 입원한 30대 초반 여성 환자를 만났다. "그 여성은 이미 온몸에 암세포가 퍼진 상태였어요. 너무 힘드니까 치료도 거부하고 있었고. '포기하면 안 된다'고 설득했지요. 그때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자기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울어줄 사람이 필요한 환자들이 이렇게 많은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삶에 대한 소망을 얘기하기 위해 시작한 편지 쓰기였는데, 그 뜻에 동감한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소문으로 손 회장 얘기를 들은 환자들이 상담 전화를 걸어왔다. '아시안 암 환우회'의 시작이었다.

손씨는 "요즘도 매일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산소호흡기를 꽂고 숨을 쉴 때, 스스로 숨 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았어요. 임파선 제거 수술을 받고 팔을 올릴 수 없었을 땐, 손을 들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달았죠. 매 순간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살아가기로 마음먹으면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