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경험을 읽고 싶어요”…‘사람책’ 인기만점 | news | 2012-1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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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책이 되는 ‘리빙 라이브러리’…인생 경험 나누며 타인과 교감
“‘사람책’을 읽어요!”
사람이 책이 되는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는 사람을 한 권의 책으로 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책’을 모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듯, 살아 있는 사람을 대출해 읽는 것을 말한다. 덴마크 출신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이 창안한 리빙라이브러리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도서관을 뜻한다.
일상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다양한 인생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한 권의 살아있는 책이 되어 ‘사람책’을 대출한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사람책’이 가진 인생과 경험을 나누는 활동이 바로 리빙라이브러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국회도서관에서 처음 시도한 이후 공공도서관, 대안학교, 시민단체 등에서 비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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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6일, 역삼도서관 4층에서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는, 함께하는 우리’라는 주제로 리빙라이브러리가 열렸다. |
지난 26일 강남구립 논현정보도서관에서 주최한 8번째 리빙라이버러리 행사가 ‘나, 너, 우리’라는 주제로 역삼도서관 4층에서 열렸다. 이번 리빙라이브러리에서는 시각장애인 마라톤 가이드러너 고영국 씨를 비롯해 난치병을 이겨낸 채식가 오가토리 김효진 씨, 파워블로거 김민영 씨, 오지여행가 양명숙 씨, 강남의 도시농부 엄지미 씨까지 총 5명이 ‘사람책’으로 참여했다.
인터넷을 통해 대출도서를 선착순으로 미리 예약을 받아 진행되는 리빙라이브러리는 약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사람책 한 권당 3~5명의 독자와 함께 약 4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며 하루에 두 권의 ‘사람책’을 대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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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빙라이브러리에 참여한 5권의 ‘사람책’과 대출신청을 한 독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논현정보도서관에서 주최한 리빙라이브러리는 그동안 인문사진작가, 게임중독을 극복한 학생, 독일어 번역가, 재수생, 레즈비언 등 다양한 인생 경험을 가진 명예도서들이 참여해 ‘다문화’, ‘웰빙’, ‘청소년’ 등의 주제로 진행되면서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2010년 3월 시작돼 이번이 8번째의 행사이다.
이 날도 많은 참여자들이 필요한 사항들은 꼼꼼히 메모를 하는 등 사뭇 진지한 분위기에서 리빙라이브러리가 진행되었다. 평소 독자로 리빙라이브러리에 참여했다가 이번에 ‘사람책’으로 참여한 엄지미(41·도시농부)씨는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뒤 관행적인 농업을 운영하는 회사에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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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동부 ‘사람책’을 대여한 독자들이 엄지미 씨가 준비해온 자료들을 보면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삼매경에 푹 빠졌다. |
엄 씨는 이전의 리빙라이브러리 행사에서 도시농업인 안철환 씨의 사람책을 읽고 순환이 되는 농업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됐다고 한다. 이후 함께 책을 읽었던 사람들이 모여 주말농장을 만들고 땅에서 받은 것을 땅으로 되돌려주는 건강한 순환의 농업을 직접 경험하면서 삭막했던 마음에 많은 위로를 받게 됐다.
‘사람책‘을 통해 삶이 변화되는 것을 느꼈던 엄지미 씨는 ‘사람책’ 안철환 씨가 자신의 경험을 나누었던 것처럼 자신 또한 ‘사람책’으로 신청해 삶의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엄 씨는 “사람이 태어나 땅으로 돌아가기 전에 작게나마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았다면 의미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오늘 이 자리가 그런 의미를 갖는 자리”라며 운을 뗐다.
엄 씨는 “내 경험을 나눈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오히려 독자들을 통해 내 삶에 또 다른 의미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며 “누구나 사람책이 될 수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리빙라이브러리에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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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들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됐다는 ‘사람책’ 엄지미 씨 |
파워블로거 김민영 씨를 대출한 정윤숙(52·가정주부)씨는 “가정주부로 50대를 넘기고 나니 ‘내가 정말 하고 싶은게 뭘까?’라는 고민과 함께 설렘을 느끼는 일을 다시 경험해 보고 싶던 차에 ‘사람책’을 접하게 됐다.”며 “저보다 나이도 많으신데 젊고, 열정적으로 사시는 모습에 어느새 자신감과 도전의식을 느끼게 된다.”며 의욕 충만한 모습을 보였다.
관심있는 책과 알고 싶은 책을 기준으로 ‘사람책’을 대출했다는 김주향(46·자영업)씨는 “책은 종이로만 읽는다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있었다. 책 한 권을 읽으려면 시간이 걸릴뿐만 아니라 책 내용만으로는 알 수 없는 다양한 정보들을 바로 물어볼 수 있고 ‘사람책’이 가진 정보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생한 경험, 인생까지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꼭 참석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의 메모장에는 깨알같은 내용들로 가득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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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책’이 들려주는 내용을 부지런히 메모하고 있는 김주향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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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책’ 김민영 파워블로를대출한 강윤영 씨, 정윤숙 씨, 이지영 씨 |
모든 책들이 인기가 많았지만 이번 행사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끌었던 ‘사람책’은 채식으로 난치병을 이겨낸 김효진 씨였다. 현재 비건 채식주의자로 채식요리를 연구하고 있는 그녀는 전직 미국회계사로 병명을 알 수 없는 난치병으로 고생하다가 채식으로 건강을 되찾은 케이스였다.
약과 보조식품에 의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몸이 근본적으로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먹거리(유기농 야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사람책’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건강을 되찾기 위해 힘들게 겪었던 소중한 경험과 어느 곳에서도 얻지 못하는 다양한 정보를 기꺼이 나누던 그녀는 “난치병으로 고생했던 것이 계기가 돼 다른 사람에게 건강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건강’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낯선 타인들과도 바로 공감대 형성이 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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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식으로 난치병을 극복한 김효진 씨는 인터넷상에서도 ‘오가토리’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현대인들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노력중이다. |
사람책 ‘오가토리(닉네임)’는 특히 주부들에게 인기가 많은 책이었는데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로 경청을 하고 있는 윤여명(33·대학원생)가 눈에 띄었다. 중랑구에 살고 있는 윤 씨는 미국과 캐나다 여행에서 채식에 관한 책을 읽고 난 뒤 채식주의자가 된 동생의 생각이 공감되지 않아 ‘오가토리 사람책’을 읽고 싶어 일부러 시간을 내 리빙라이브러리를 찾았다고 했다.
윤 씨는 “‘사람책’의 경우 이미 여러 권의 책이 합해진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어 그 분들의 경험을 통해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활자로 된 책은 독자와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지만 사람책은 질문과 답을 하는 형식이 가장 큰 강점”이라며 사람책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수 십권의 책 중에서 중요한 부분만 요약해서 읽은 기분이 드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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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책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유익한 시간이었다는 윤여명 씨 |
도서관에 자원봉사를 하러 왔다가 리빙라이브러리에 참여한 안여원, 이연경 학생은 이구동성으로 “평소에 책을 별로 안 읽는데 ‘사람책’을 읽어보니 활자로 된 책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특히 이연경 학생은 “시각장애인 마라톤 가이드러너 고영국 씨의 책을 통해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 불우한 환경을 극복한 사람책을 통해 희망을 배우고 싶다.”며 희망 도서목록을 신청했다.
리빙 라이브러리를 담당하고 있는 논현정보도서관의 김민정 사서는 “리빙라이브러리가 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왔다가도 막상 대화를 시작하면 나중에는 이야기가 봇물이 터져 책 대여시간 40분이 늘 모자라 진행에 다소 어려움을 겪는다.”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람책을 읽고 만족해 하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사서는 특히 “상처를 가진 ‘사람책’들이 있는데 독자들이 책을 읽고 감명을 받기도 하지만 독자들로 인해 ‘사람책’이 오히려 위로를 받는 경우도 있다. 즉, 서로에게 힐링을 느끼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고 했다. 이어 “리빙라이브러리를 통해 참여한 사람들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볼 때 보람을 느끼는 한편 사서로서 책임감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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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책’에게 자신의 경험을 과장하지 않고 독자들과 솔직하고 진솔하게 나누어 달라는 부탁을 할 뿐 모든 것은 독자들과 ‘사람책’에게 자율적으로 맡긴다는 김민정 사서. |
‘특별한 경험, 남다른 인생,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사람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화로 자신의 경험을 나눠야 하는 특성상 유익하고 재미있는 주제를 가진 ‘사람책’이라고 하더라도 소통 능력이 떨어지면 곤란하다.
현재 약100여 권의 ‘사람책’을 보유하고 있는 논현 정보도서관은 사람책의 경험을 소중히 여겨 ‘명예장서’로 등록해 관리를 하고 있다. ‘사람책’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특별한 제한이 없으며 신청절차도 간편해 스마트 폰으로 QR 코드를 찍으면 바로 등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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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책’이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간편하게 등록할 수 있다.(출처=논현정보도서관) |
처음 생각과 달리 2시간여 동안 진행된 리빙라이브러리는 무척이나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번번이 대출시간을 넘기면서 ‘사람책’과 독자들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진심어린 소통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매우 유익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가졌다.
논현정보도서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리빙라이브러리는 입소문을 타고 이미 많은 대기자들이 있을 만큼 인기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다만, 매우 알차고 유익한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사서 한 명이 도서관의 모든 행사를 도맡아서 진행하다보니 정례화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이 세상에서 단 한 권밖에 없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한 권의 책, 리빙라이브러리가 직접 소통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삭막한 현대사회에서 진솔한 대화를 통해 타인과 인간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색다른 독서문화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해본다. ‘제9회 리빙라이브러리’는 12월 셋째 주에 예정돼 있으며, 자세한 사항은 논현정보도서관(02-515-1178)로 문의하면 된다.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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