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춘이 되니 크게 길할 것이요~ | news | 2013-02-06 |
봄의 시작 ‘입춘’ 사라져가는 세시풍속 되살리는 사람들
“설령 어릴지라도 집안에서 붓을 들어 글씨를 쓸 줄 아는 아이라면 그 아이더러 입춘축을 쓰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최근에 종용된 TV 드라마 ‘바람의 화원’, ‘뿌리깊은나무’에서 붓글씨 대역을 했다는 초대작가 자암 김장현 선생을 입춘을 하루 앞둔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따사로운 겨울 볕이 그의 서실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어 봄이 다가왔음을 느끼게 했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동지 이후 음의 기운을 지니던 대지가 양의 기운을 갖기 시작하며 모든 사물이 왕성히 생동하기 시작하는 날이다. 입춘은 특히, 농사짓기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 번째 절기로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를 두고, 단순 미신이라며 펄쩍 뛸 사람도 있겠지만 실은 우리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세시풍속이다. 2월 4일, 입춘절을 맞아 사라져가는 세시풍속을 향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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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소망과 기원을 담은 글씨를 만들거나 가족들과의 대화에서 나온 글귀를 입춘서로 써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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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예가 자암 김장현 선생이 자신이 작성한 다양한 입춘서를 보여주고 있다. |
입춘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자암 선생은 대뜸 추사 김정희 선생의 일화부터 꺼낸다. 추사의 어린 시절 여섯살 난 어린 아이가 입춘서를 썼다는 내용인데, 이는 가장 센 양의 기운을 얻을 수 있는 집안의 어린아이를 통해 복을 받으려는 마음의 의지를 나타낸다.
입춘날 봄이 온 것을 기리어 축하하거나 기원하는 내용을 적은 글을 입춘축(立春祝)·춘축(春祝)이라 한다. ‘입춘날 봄에 글을 써서 문에 붙인다’는 입춘첩의 유래는 복숭아 나무조각에다 붉은색 ‘신다’와 ‘울루’ 상을 그려 문앞에 걸어 흉악한 귀신을 쫓았다는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도 이 두 글자는 잡귀를 쫓는 부적처럼 그려서 붙이는 풍속이 남아있다.
‘입춘대길(立春大吉)·건양다경(建陽多慶), 입춘이 되니 크게 길할 것이요, 따스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으리라.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건양다경의 한자 세울 건(建) 대신 사람 인(人) 부수를 덧붙여 건강할 건(健)으로 한자를 바꾼다고들 하지요? 세상 사람들이 이제는 건강을 앞세워 간절한 바람을 소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암 김장현 선생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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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4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계사년, 봄의 기운을 나눠드립니다’라는 주제로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에게 입춘첩 나누기 세시행사가 진행됐다. |
그런가 하면 입춘절인 4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계사년, 봄의 기운을 나눠드립니다’라는 주제로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에게 입춘첩 나누기 행사가 열렸다. 입춘 절기의 의미를 되살려 ‘입춘첩 부치기’라는 사라져가는 전통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국민의 건전한 세시문화 분위기로 정착시키자는 목적에서 마련된 세시행사이다.
지난해에 이어 입춘첩 행사장을 찾았다는 김혜정(38·가락동)씨는 “아이들 스스로도 재미있어 했어요. 입춘첩 한자를 하나하나 풀이하면서 새해 시작의 마음가짐을 달리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라며 계속해서 참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 날 행사를 마련한 하도겸 학예연구사도 “입춘절의 의미를 마음 속 깊이 되새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더 많아지고 있다.”며 “이는 미신적인 행사가 아니라 생활의 미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입춘첩을 받아 즐기는 관람자들의 표정에는 미더움과 두려움이 공존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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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춘대길’ 입춘첩은 입춘일에 각 집마다 대문이나 기둥 등에 붙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한편, 동작구 사당동 열상고전연구원(원장 이숭호) 회원들도 입춘을 맞아 사라져가는 세시풍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평촌에 사는 김현옥(52)씨는 “매해 입춘방을 직접 써서 이 방 저 방 문 앞에다 덧붙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켭켭이 달라붙은 낡은 입춘방이 그립다.”고 했다.
주부 이선희(60 서초동) 씨도 “친정아버지께서 ‘입춘대길’이라는 붓글씨를 쓰신 뒤 여덟팔자 모양으로 대문에 붙이셨는데 어린 마음에도 복이 가득 들어올 것 같은 기대감에 행복해졌다.”는 아련한 추억을 떠올렸다.
같은날 아파트 노인정에서 만난 조남이(86·잠원동) 할머니는 “반촌인 마을에는 입춘방을 붙이지 않는 집이 없었다.”며 “대문은 물론 사랑방, 부엌, 방앗간, 곳간에도 춘첩을 내다 붙였다. 일년 내내 가정이 무사하고 수명장수하며 부자가 되는 복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부적처럼 붙어져 있는 입춘첩 흔적을 집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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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춘을 앞둔 지난 2월 1일, 동작구 사당동 열상고전연구원 회원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전통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추억하고자 한 자리에 모였다. |
현재 서예학원을 경영하고 있는 최옥경(58·부천) 씨의 입춘 절기에 대한 추억은 더욱 각별하다. “친정 아버지, 할아버지도 그랬지만 시아버님도 어김없이 입춘첩을 써서 대문에 부치셨습니다. 시아버님의 입춘첩은 단지 복을 부르고, 묵은 해의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는 기원 외에도 자신이 자손에게 해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 살아있음을 과시하는 자랑이셨어요.”
최 씨를 따라가 그의 시부모 이강옥(78), 정인순(79) 옹을 만날 수 있었다. 과연 듣던대로 시아버지 이강옥 씨는 해마다 입춘첩을 새로 써서 대문 앞에 내다붙이고, 시어머니 정인순 씨도 섣달 동지가 돌아오면 팥죽을 쒀 온 집안 구석구석에다 뿌린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느냐는 매사 준비하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그냥 지키면 좋다니까, 자손이 잘 된다고 하니까 정성을 드리고 즐겼던 것 같다.”고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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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잊지 않고 입춘첩을 부치는 시아버님의 뜻에 따라 며느리 최옥경 씨가 자신이 직접 쓴 입춘첩을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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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입춘축을 써서 대문에 붙인다는 이강옥 옹 내외.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는 이강옥 옹은 해가 바뀌는 신년에는 손수 토정비결을 보고 자손에게 한 해의 운수를 들려주며 운수대통의 묘방을 일러준다. |
민속학자 김명자 문화재위원은 “그간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서는 안될 것까지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전통의 쓸쓸함, 안타까움을 느꼈다.”며 “딱히 설명할 순 없지만 우리는 어떤 질서에 의해 살아왔고, 이 질서는 영원히 지켜져야 한다는 무의식의 신념 같은 게 사람들의 머릿 속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이 새해 첫 절기 입춘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올 입춘첩에는 자신의 소망과 기원을 담은 글씨를 만들거나 가족들과의 대화에서 나온 입춘서로 적어보는 것이 어떨까? 현대 사회에서도 한 해를 의미있게 보내고자 하는 입춘첩 쓰기는 자녀 교육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며, 세대 간의 소통을 위해서도 유용한 일이 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해본다.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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