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 주민들이 뭉쳐 ‘주식회사’ 만들었다 | news | 2011-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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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군 용담면에 있는 와룡마을. 10여 년까지만 해도 원와룡마을 70가구와 신정마을 30가구, 총 100가구가 모여 살던 곳이다. 그러다 지난 2000년 용담댐 건설로 마을이 호수 안에 잠기면서 10여가구 20여 명의 주민만 현재 와룡마을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주민들은 “고향을 잃는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컸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앞으로 먹고 살 길도 걱정이었다. 하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살길을 찾아보자며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작목을 정해 같이 농사를 짓고 가공도 하고 판매까지 해보자는 것이 주민들의 계획이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와룡마을의 마을살리기. 초반엔 어려움이 많았지만 2003년 진안군으로부터 으뜸마을로 지정받고 마을만들기팀의 교육과 컨설팅을 수시로 받으면서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산초와 더덕, 산나물 등으로 시작한 공동판매 품목은 시간이 흐르면서 인삼과 고추, 콩, 도라지 등 마을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특산물로 확대됐고, 시장의 반응이 좋자 농산물을 아예 홍삼, 된장, 간장, 참기름 등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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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담면 와룡마을 주민들은 마을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한해 4억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특산품 재배단지를 만들어 공동생산을 시작했고 ‘좋은 동네’라는 브랜드도 자체 개발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산골의 특성을 활용해 도시민을 유치하자’는 데 뜻을 모았고 대규모 민박시설과 함께 약초 캐기, 고구마 캐기, 고기 잡기, 별자리 체험, 된장 담그기 등 20여 개의 산촌 체험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와룡마을 강주현 마을만들기추진위원장은 “체험 행사가 많은 여름과 가을에는 많은 도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며 “마을 주민들 외엔 외지 사람을 볼 수 없었던 한적한 시골 마을에 활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와룡마을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2006년 800명에 불과했던 방문객이 지난해와 올해 무려 7배인 6,000명으로 늘었고, 이들의 숙박비와 식비, 농·특산품 판매액 등으로 4억 원 정도의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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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군 마을만들기 활동을 토대로 지난 7월 마을 주민과 위원장, 농가공 법인 등이 주주로 참여하는 진안마을주식회사가 출범했다. 진안마을주식회사는 마을 농산물의 공동 유통과 6차 산업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
진안에는 순수하게 100% 농민들이 출자해서 만든 주식회사도 있다. 진안 지역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지난 7월 출자금 1억 원을 모아 출범시킨 농업회사법인 ‘진안마을주식회사’가 그것. 진안마을주식회사는 21개 마을과 11개 단체, 그리고 농민 70여 명이 참여했다.
진안군 친환경농업과 최희섭 씨는 “농업회사법인 진안마을주식회사에는 진안군 마을만들기 10년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며 “마을별로 추진했던 주민주도의 상향식 마을만들기 사업이 마을간 네트워크를 형성해 한 단계 더 발전하는 단계에 와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산간지역 특성을 살린 산나물세트와 잡곡세트 등 주력상품을 개발했고, 내년부터는 농산물 꾸러미 배달사업과 약선식당·반찬가게 등을 차리며 전자상거래와 대도시 직판도 열어간다는 계획이다.
진안마을주식회사의 모태가 된 진안군마을만들기협의회는 지난 3년간 90여차례 군청 앞 광장에서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모아 파는 금요장터를 운영한 노하우가 있다. 일본 아야정 시찰, 진안시장 내 상설매장 개설 등의 경험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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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회사법인 진안마을주식회사는 농가 소득 향상을 위해 고사리 등 건나물 5종 세트를 상품화했다. 2011년도 추석부터 선물용으로 판매를 시작해 1,0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
‘마을만들기의 수도(首都)’, 진안 하면 수식어로 따라붙는 말이다. 진안군은 지난 10여 년 동안 마을만들기를 끈기 있게 추진해왔다.
이를 위해 마을이 원래 가지고 있는 고유한 자연환경과 전통문화를 지키면서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는 지역살리기 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농촌의 주인인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앞서 와룡마을의 성과와 진안마을주식회사의 출범은 이 같은 마을마들기 사업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주민들이 직접 계획하고 주민들이 참여해서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행정은 노선을 제대로 잡고 갈 수 있도록 뒷받침만 해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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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천면 노채마을에 있는 금굴. 일제 강점기에 금을 캤던 곳인데, 이곳을 와인저장고로 활용한다. 사계절 12도와 습도 90%를 유지한다. |
진안군 마을만들기는 특히, 각 마을의 고유한 문화, 자연, 풍습을 활용하면서 주민들의 생활환경 개선 및 마을 공동체 의식을 높여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단계별로 길러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와룡마을의 경우 4단계인 녹색녹촌체험마을 사업까지 왔다.
진안군은 마을에서 공모한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해 지원 대상 마을을 선정하고, 그린빌리지사업 명목으로 재료비 200만 원을 지원한다. 계획수립 및 시행은 주민들이 모두 맡는다. 재료비만 지원 받고 노동력과 장비 등 부대비용은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마을만들기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외부전문가 평가단이 마을을 직접 방문해 주민참여도와 친환경 생활실태 등을 점검해 우수마을로 선정하고, 주민숙원사업비(400~800만원)를 지원하거나 마을만들기 단계별 사업대상지 지정 우선권을 준다.
이 같은 단계별 사업 추진을 통해 마을간사제도, 마을조사단, 마을축제 등을 통해 민관이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는 점도 진안군 마을만들기 사업만의 특징이다. 마을마다 주민 조직이 있고 이를 근간으로 25개 마을이 참여하고 있는 ‘마을만들기지구협의회’가 민간협의체로 지난 2006년 9월 결성되기도 했다. 진안마을주식회사 역시 마을만들기지구협의회를 모태로 해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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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 마을축제 기간 동향면 용암마을에서 조성한 해바라기꽃길 걷기에 참여한 도시 관광객들과 마을 주민들 |
마을만들기와 도시민 인재 유치 사업을 결합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기존 귀농귀촌인을 존중하면서 농업외 전문성을 살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울러 현금 지원 배제, 주민 화합 및 지원시스템 중시 등 5대 원칙을 세우고 주민들과 공생하며 농촌의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시스템도 갖췄다. 직접적인 현금 지원은 없지만, 진안군에는 2007년 이후 407가구 1,069명이 정착했다.
곽동원 마을만들기담당은 “귀농인이 농사만 지어야 한다는 틀을 과감히 깨고 그들이 도시에서 쌓은 전문 능력을 농촌에서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며 “현재 50명에 가까운 귀농인이 농사 외의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진안의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곽 담당은 “귀농인 가운데에는 대도시에서 건축회사를 운영하다 귀농한 뒤 ‘농촌에서 집짓기’라는 책을 발간한 사람도 있고,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농기계나 오래된 골동품을 하나둘 모아 인근 폐교를 마을 박물관으로 만든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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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군 마을축제에서는 다양한 체험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용담면 감동마을에 가면 나무로 만든 뗏목을 탈 수 있다. |
이 같은 진안군 마을만들기의 시작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마을만들기 정책의 기초를 세운 유정규 박사(경제학·현 지역재단 이사)에 의해 전국 최초의 주민 주도 상향식 마을 사업인 으뜸마을가꾸기가 시작됐다.
유 박사에 이어 2004년 말부터는 지금의 구자인 박사(농학)가 전임계약직으로 일하며 마을만들기의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진안군은 지난 2007년 2월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먼저 마을만들기를 담당할 조직을 신설해 정책 추진의 안정성을 뒷받침했다.
민선 3기에서 4기로 넘어오면서 임수진 전 군수에 이어 현 송영선 군수가 본격적으로 확대 추진했다. 지역 정치에서 전임자의 사업을 이어 받는 일이 흔치 않다는 점에서 진안을 찾는 전문가, 사회단체 대표 등이 ‘특히 잘한 일’이라고 평가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 현재 마을만들기담당에 근무 중인 3명 중 곽동원 (공업6급)계장과 이호율 직원(농업7급)은 각각 10년, 7년 이상 장기간 근무하며 공무원 순환보직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박사급 농촌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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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오른쪽부터 곽동원 마을만들기담당(공업6급), 임홍택 직원(건축8급), 이호율 직원(농업7급), 구자인 박사(전임계약직). |
민간에서도 마을만들기지구협의회를 중심으로 뿌리협회(귀농귀촌), 마을축제조직위, 진안고원길, 한일교류협회 등 마을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중간지원조직이 많이 설립됐다. 지난 2010년 5월에는 행정과 민간 영역의 성과들을 모아 마을만들기 기본조례도 제정했다.
진안군 마을만들기의 성과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벤치마킹 행렬로 이어지고 있다. 올 한해(10월 말 기준)에만 전국의 농업, 농촌 전문가와 공무원 등 113개 팀, 1,900여 명이 진안군 마을만들기를 벤치마킹했다. 최근에는 일본 미야자키현 등 일본 연구자들의 방문도 잦아졌다.
2009년 농업·농촌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대산농촌문화상 농촌발전부문 대상을 받았고, 올 6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지방자치위원회와 풀뿔리자치연구소 이음이 공동 주최한 지방자치 20년 변화·혁신사례 공모전에서 ‘좋은 변화상’도 받았다.
그리고 12월 23일 한국마사회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1회 대한민국 농어촌마을대상’ 시상식에서 지자체부문 ‘대통령상’의 영예를 안았다. 여기에 강주현 진안마을 대표가 핵심리더 부문에서 국무총리상을 받고, 단체부문에서는 진안군 마을만들기지구협의회(회장 이춘식)가 농림수산식품부장관상을 수상하는 겹경사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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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한국마사회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1회 대한민국 농어촌마을 대상’ 시상식. 오른쪽부터 강주현 진안마을주식회사 대표, 송영선 진안군수, 진안군 마을만들기지구협의회 이춘식 회장. |
한편, 내년에는 마을만들기의 핵심 거점공간이 될 마을만들기지원센터가 설립된다. 진안군은 향후 마을만들기연구소도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구자인 박사는 “마을만들기는 읍면 단위의 주민자치위원회와 연대해 평생학습 및 주민자치 프로그램과의 결합도 시도하고 있다.”며 “특히, 행정과 민간의 협력체계 구축을 통해 마을만들기의 영역을 경제와 교육, 문화, 복지, 환경 등 전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마을과 마을, 행정과 민간, 마을과 단체 등의 사이에 협력과 적절한 경쟁의 시스템을 갖춰 가면서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며 “풀뿌리 마을이 살아야 지역이 살아날 수 있는 만큼 더디 가더라도 제대로 가는 길을 걷겠다.”고 말했다.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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