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대 오른 노숙인 발레리노 6명 “구름 타는 기분” | news | 2011-1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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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오후 경기 고양시 어울림누리 극장에서 노숙인 자활잡지 빅이슈 판매원 5명이 발레 <호두까기 인형> 최종리허설을 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
“구름 위에 떠다니는 기분이에요.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발레, 어렵지 않아요.”
29일 오후 7시30분 경기 고양시 어울림누리 극장에서 서울발레시어터와 빅이슈가 함께하는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이 열렸다. 31일까지 열리는 이 공연에는 노숙인의 재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 판매원(빅판) 6명이 참가했다. 공연시작 전까지만 해도 이들의 얼굴에는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임진희씨(44)는 “최종 리허설에서 실수를 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막이 오르자 아무런 어색함 없이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연기해냈다. 이들은 파티에 참가한 귀족 역할을 맡았는데 노숙인 출신임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다. 관객들은 이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큰 박수를 보냈다. 퇴장할 때는 환호를 하는 관객도 있었다.
제임스전 서울발레시어터 예술감독(52)은 지난 4월부터 이들에게 발레를 가르쳤다(경향신문 10월24일자 1면 보도). 발레가 이들이 사회에서 자신감을 얻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한 빅판은 20명이다. 일요일마다 3시간씩 구슬땀을 흘려가며 생소한 동작을 연습했고 마지막까지 남은 6명이 무대에 서게 됐다. 서울대 근처에서 1년쯤 빅판 생활을 한 강희석씨(36)는 “무대에 한번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며 처음 무대에 오르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공연에서 1막의 파티 장면에 나오는 교수 역할을 맡았다. 강씨는 최근에 서울대로부터 초청을 받아 학생들에게 빅이슈 판매와 자립에 대한 강의를 했다고 한다. 그는 “우연히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했지만 발레를 배우는 것이 신나서 웃음이 늘었다”고 말했다.
김수원씨(50)는 “몸을 컨트롤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소아마비에 관절이 좋지 않은 김씨는 몸이 불편해서 발레 동작을 익히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김씨는 “꾸준한 스트레칭으로 건강이 좋아졌다”며 “내 무대는 여기서 막을 내리지만 스트레칭은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이니 다른 빅판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연 참가자들은 “발레를 통해 새로운 희망이라는 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청복씨(43)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전에는 발레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는 “발레를 시작하면서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몸의 균형을 잡게 됐을 뿐 아니라 함께 대화하고 소통하며 무언가를 같이 만들어가는 기분을 평생 처음 느꼈다”고 말했다. 최씨는 “매일 땅만 바라보고 거리를 돌아다니던 습관이 사라지고,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며 “꽉 막혀있던 길이 뚜렷하게 보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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