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순 노구에 손자 양육까지… 나이보다 무거운 삶의 무게여 | news | 2012-0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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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 줍기로 한 달 20만원씩 생활비를 버는 양순희(사진 위) 할머니는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손자 민식(13)군에게 “용돈도 못 주고, 젊은 부모처럼 못해주는 게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양평=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
From : 시인 문정희
To : 祖孫가정 지키는 74세 양순희 할머니
남편은 5년째 병상에 아들은 4년 전 죽고
며느리는 집 나가 손자는 사춘기 반항… 쓰레기 주워 입에 풀칠
양순희(74) 할머니는 5년째 병상에 누운 남편(84)과 손자 민식(13)군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2008년 4대 독자였던 아들이 심장마비로 숨지자 집 나간 며느리가 민식이를 데려갔지만, 이듬해 민식이는 다시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이들 가족의 한 달 수입은 기초생활수급금과 노인연금 등 56만원. 이 중 40만~50만원이 할아버지 치료비로 나간다. 할머니는 동사무소에 신청해 쓰레기 줍는 일을 하고 한 달에 20만원을 받아 생활비에 보탠다. 할머니는 "혼자 아무도 안 보는 데서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사춘기가 오기 시작한 민식이는 요즘 부쩍 할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는 일이 잦아졌다.
젊은 부모처럼 못해준다고 슬픔을 얘기하시지만
당신 돌아가실까 걱정하는 손자, 속깊은 사람으로 자랄 거예요
민식이와 할머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남한강의 바람은 차가웠습니다. 차창 밖으로 벗은 나무들이 앙상하게 서 있었습니다. 저 벌판에도 봄은 꼭 오겠지요. 온갖 잡일을 하며 8남매를 키우고 이제 또다시 아들이 두고 간 손자를 칠순의 노구로 키우고 있는 민식이 할머니에게 저는 쉽게 희생의 위대함, 또는 모성애의 성스러움 같은 말을 할 수가 없어 지금 당혹스럽고 괴롭습니다.
더구나 제가 그런 말을 잠깐 드린다 해도 순간의 위로는 될지언정 당장 할머니와 민식이의 삶에 구체적인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 진심으로 언어의 무력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식 할머니, 저는 이런 마음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가족을 위해 온 생애를 바치고, 마지막 남은 뼈까지를 손자를 위해 바치고 있는 할머니를 보는 순간, 아궁이에서 활활 타는 군불을 연상했었습니다. 할머니의 표정은 절절했고 할머니의 방은 아주 편안했습니다. 세상에 그보다 더 귀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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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문정희씨. |
그 중에도 외아들이 떨구고 간 유일한 혈육 민식이가 태권도복을 입고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은 할머니의 삶에서 뺄 수 없는 최종의 의미요, 보배임이 분명했습니다.
엄마도 없는 아이라고 놀려대어 민식이가 잠깐 엄마와 살다가 다시 할머니에게 돌아온 뒤로 더욱 걱정이 늘었다 했고, 곧 사춘기가 시작될 것인데 젊은 부모처럼 못해주는 슬픔을 얘기했습니다만 할머니와 사는 것은 또 다른 선물도 끼워 준다는 말씀을 감히 그 자리에서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민식 할머니, 조부모와 사는 아이는 어떤 면에서 아주 좋은 것을 남보다 먼저 배운다 합니다. 인간에게 반드시 늙음과 죽음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자연스럽게 배워서 누구보다도 깊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빨리 죽을까 봐 걱정이라며 맑게 웃는 민식이의 표정 속에서 저는 이미 그것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자식들에게 학교를 맘껏 못 보낸 한을 가진 엄마로서 손자인 민식이만은 꼭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은 마음 간절하시다는 말이 어떤 대목보다 뭉클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기주의 사회이고, 물질 가치로만 치닫는 면도 있지만 이제는 그늘을 외면하고, 사회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사회가 안 된다는 것을 많이 인식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국에 조손 가정이 6만9175가구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두가 함께 껴안아야 할 문제입니다. 당연히 국가 차원에서 근본적인 경제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시점입니다. 아마도 민식이가 대학을 갈 때쯤에는 여러 조건이 개선되리라 믿어봅니다.
민식 할머니,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젖이 그 나라 미래의 국민을 기르는 양식이듯이 우리 민식이를 기르는 일도 그렇습니다. 할머니가 폐지를 줍고 식혜공장이나 골프장이나 세차장 일을 해서 키우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식이를 잘 키우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를 잘 키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흑인 대통령도 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세계를 정보 사회로 바꾸어 놓고 얼마 전 타계한 스티브 잡스도 남의 집에 입양된 아이였다는 사실을 아시지요. 민식할머니가 힘든 삶을 살아낸 집 주소가 마침 청운면 와룡리라는 것을 보며 홀로 미소 짓습니다. 우리 민식이가 용처럼 일어설 때를 진심으로 기다려 봅니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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