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초 6·25박물관이며 '설마리 전투' 영웅들 기리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먼저 나서서 하셨습니다. 파주 시민들이 뜻을 모아 박물관 건립에 힘을 보탭니다."

지난 12일 오전(현지시각), 이인재 파주시장은 영국 글로스터(Gloucester) 시가 건립 준비 중인 '6·25전쟁 박물관'에 성금 1억5600만원을 기탁했다. 이 성금은 유럽 최초의 6·25 박물관이 건립된다는 소식을 접한 파주 시민들이 힘을 합쳐 모은 돈이다.

파주 시민들이 글로스터 시의 박물관 건립에 팔을 걷고 나선 것은 6·25전쟁 때 중공군에 맞서 파주를 지켜낸 부대가 바로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 연대' 제1대대(이하 글로스터 대대)이기 때문이다. 1951년 4월, 중공군은 수도 서울을 빼앗기 위해 서부전선에서 춘계대공세를 감행했다. 글로스터 대대 652명 장병은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인 파주 감악산 자락에서 중공군 3개 사단 4만2000명에 맞섰다.

수적인 열세에 겹겹이 포위돼 외부 지원도 끊어졌지만, 이들은 투항 대신 결전을 택했다. 글로스터 대대가 감악산 설마리에서 3일간 중공군을 잡아둔 덕에 임진강 이남을 지켜낼 수 있었다.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귀환한 병사는 67명에 불과했다. 6·25전쟁의 중요한 고비 중 하나였던 '설마리 전투'다. 영국 정부는 글로스터 대대원 6명에게 영국 최고 무공훈장인 빅토리아크로스(Victoria Cross)를 수여했다.

글로스터 시 데이비드 브라운 시장은 "글로스터 대대의 용맹함은 지역의 자부심"이라고 했다. 2010년부터 글로스터에 주둔 중인 나토(NATO) 신속대응군(ARRC) 본부의 명칭은 '임진 기지'다. 나토군은 지역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기지 명칭을 임진강에서 따왔다.

글로스터 시는 글로스터셔 연대 출신 기업인·참전용사들과 힘을 합쳐 2011년부터 250만파운드(약 41억원)의 기금 조성 사업을 추진했고, 기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을 접한 파주시도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이날 성금 전달식에는 백발이 성성한 머리에 검은 베레모를 쓴 참전용사들도 참석했다. 톰 클러프(82)씨는 "우리 대대의 희생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볼 때마다 뿌듯하다"고 했다.

영국군은 글로스터 대대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1968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에 전적비를 건립해 매년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파주시는 이 전적비 근처에 글로스터 대대 추모공원을 조성해 올해 중에 완공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