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얼마를 벌면 행복한가요? | news | 2013-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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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고구마 3인방의 '행복의 조건'
불을 때고, 고구마를 넣고, 분주한 중에도 사람들에게 인사를 빼먹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순박하게 웃는 병오씨. 간질을 앓고 있는 그는 얼마전까지만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노숙과 무료 급식소를 전전했고, 배고픔에 취객의 지갑을 노리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배가고프니까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아저씨 가다가 자겠지 의자에 앉겠지. 그생각을 하고 20분을 쫓아다녔어요." - 이병오(33. 20대 중반 간질발병)
항상 오빠들을 웃게하는 홍일점 미진씨. 걸음이 힘겨운 오빠가 넘어질까 꼭 잡은 손을 놓지 않는 다정다감한 미진씨는 사실 새 아버지와의 불화로 집에 있는 날보다 거리를 전전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집에 들어갔다 나왔다 집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이랬었어요." - 전미진(32. 지체장애 2급)
머리를 멋지게 빗어넘긴 큰 오빠 현철씨. 큰 소리로 손님도 불러보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선뜻 고구마도 건네지만 그는 집안에 틀어박혀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었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지기 싫었고, 밖에 나가면 꼬옥 모자를 눌러쓰고 나갔어요." - 장현철(44. 뇌병변 장애 1급)
이렇게 배고프고, 슬프고, 외롭던 세 사람의 인생을 바꾼 건 바로 군고구마였습니다. 이글이글 장작이 타오르고, 구수한 군고구마 내음을 가득 담은 뽀얀 연기가 이내 골목을 채웁니다. 추운 겨울 그나마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장사 중에 군고구마 장사만한게 있을까요?
부산진구 전포동 새고개. 비탈길을 한참 올라간 그곳에 세 사람의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벽지에는 곰팡이가 피었고, 벽면은 페인트칠이 벗겨져 나갔지만, 현철씨의 집은 추운 겨울 방황하던 병오, 미진 씨에겐 그 어디보다 뜨뜻한 둥지입니다.
그저 하루를 의미없이 보냈던 병오, 미진씨를 현철씨는 선뜻 집으로 불러들였고 자기 앞으로 나온 장애인 보조금 40만원까지 털었습니다.
그렇게 군고구마 통을 사들고 나선 곳은 미리 봐둔 교회 앞 이면도로. 호기롭게 고구마통을 들고 나왔지만 고구마장수 노릇은 쉽지 않았습니다.
구청의 길거리 단속에 걸리기도 하고, 너무 알이 굵은 고구마를 사는 바람에 팔지도 못한 고구마를 억지로 삼킨 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엄동설한 그들의 사투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조용히 지켜본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어수룩하니 실수연발인 장애인 세 명. 장사를 하면 얼마나 하겠나 하던 주변 상인들이 조금씩 그들에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건너편 노래방 사장님은 따뜻한 커피를 갖다 주고, 바로 앞 고깃집에서는 종이컵에 고기를 담아 슬쩍 건넵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군고구마 3인방을 보며 오히려 힘을 받아가는 사람도 많은 모양입니다. 일부러 짬을 내 말동무를 하러 오는 사람도 하나둘 늘어만 갑니다.
"기분좋게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 나는 얘들보고 고민하고 살지 않기로 했어. 몸이 불편하고 해도 사람을 보고 웃고 이 노력하는게 이런 일이 대한국에 몇이나 있겠노." - 이등자 (71. 인근 주민)
때마다 밑반찬을 해서 건네주던 치킨집 아주머니는 이들이 파는 고구마에 '행복고구마'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몸이 불편해도 너무 열심히 사는거에요... 보기가 좋았습니다." - 문명희 (45. 치킨집 운영)
촬영이 있던 날, 날이 너무 따뜻해서 안 팔리면 어쩌나 걱정과 달리 평소 두 상자도 팔기힘든 고구마가 세 상자나 팔렸습니다.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현철씨.
"오.. 오늘 진짜 최.. 최고에요 최고!" - 현철 씨
어둠이 깔린 저녁, 고구마통을 정리하고서도 이들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팔고남은 군고구마를 노숙인들에게 나눠준 뒤 인근 공사장으로 이동해 내일 쓸 나무토막을 줍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이지만 장사가 잘 된 오늘같은 날은 손놀림도 가볍습니다.
후라이드 치킨에 소주 한 잔. 대박을 친 날에만 허락되는, 군고구마 3인방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호사스런 만찬이 시작됐습니다. 병오씨가 궁금해 못참겠다는 듯 오늘 매상을 꺼내 한 장 한 장 돈을 세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하루에 얼마를 벌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4만 8천원!"
오늘 이들을 이토록 행복하게 만든 수입은 '4만 8천원'이었습니다. 매상을 확인한 뒤 소박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불러보는 건배. 이 순간만은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행복이 술잔 속에 녹아듭니다.
하루 수입과 지출이 빼곡이 적힌 금전출납부, 그리고 만원, 이만원씩 꿈이 쌓이는 예금통장. 행복 고구마는 하루하루를 그냥 버리듯 살아왔던 이들에게 희망을 보게 해줬습니다.
병오 씨는 이제 작은 중국집을.
"항상 이렇게 말해요 중국집 사장이 될 거라구요." - 병욱 씨
미진 씨는 엄마와 화해를.
"엄마한테 자주 문자드리고. 엄마한테 자주 찾아뵙든가 해야죠." - 미진 씨
그리고, 현철씨는 시인이 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마음이 안정도 되고요." - 현철 씨
장애라는 조건을 타고나 세상을 원망하며 아무렇게나 자포자기의 삶을 살았던 행복고구마 3인방.
"시기와 질투 속에서 인간을 미워했고 /오만과 위선에 빠져 세상을 욕되게 했다./ 주여 시들어가는 나의 마음에 어서 들어오셔서/새 희망의 빛을 주소서" - 현철씨 자작시 낭독
이제 날이 더 따뜻해지면 이들은 군고구마 장사를 접어야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어떤 행복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그들의 뒷모습에서 걱정보다 기대를 발견합니다. 그저 고구마통을 밀고 나갈 힘과 용기만 있다면 행복은 멀지 않은 곳 바로 곁에 있다는 사실을 '행복고구마 3인방'은 잘 알고 있으니까요.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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