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모니에도 장애가 있나요?” | news | 2013-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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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부르며 장애 극복 ‘전북여성장애인합창단’
“사랑해요~ 이 한 마디, 참 좋은 말. 엄마 아빠 일 떠날 때 하는 말. 나는 이 한 마디가 정말 좋아요~”
“13~14번째 마디 음이 안 올라갔어요. 알토 파트만 다시 해볼게요.”
매주 수요일 오후 2시, 전주와 완주군에 거주하는 재가 여성 장애인 45명은 휠체어와 목발 등에 의지한 채 전주시 경원동에 위치한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을 찾는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선사하게 될 합창 연습을 위해서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참 좋은 말’이란 노래를 연습하는 전북여성장애인합창단을 만날 수 있었다. 듣는 이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게 할 정도로 풍부한 성량을 자랑하는 이들은 관중들이 있었다면 몇 번이고 ‘앙코르’가 쏟아졌을 정도로 환상의 하모니를 자랑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번 달에만 행사가 5건이나 잡혀 있어 10여 곡의 가사와 반주를 익히느라 정신 없었다. 익숙해진 노래에는 율동을 덧붙여 앉은 채로 연습을 해보기도 하고, 행여 자신의 파트가 틀려 불협화음이 될까 노심초사하며 쉬는 시간도 반납한 채 연습하는 모습에서는 전문 합창단 못지않은 열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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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10일, 전주시 경원동에 위치한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사무실에 모인 전북여성장애인합창단이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
유영희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전북지부 대표는 “여성 장애인들은 여가시간은 많지만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중에는 생활 수준이 낮아 정규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며 “음악교과서에 나오는 기본적인 동요, 민요, 가곡 등을 배워보지 못해 아쉽다는 장애인들의 욕구를 조금이나마 해소해주기 위해 2009년 소규모 형태로 합창교실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작곡을 전공한 김정순 씨가 지휘를 맡게 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유영희 대표는 “처음에는 배우고 싶다는 곡목을 신청 받아 함께 배워보자는 취지였는데, 김정순 지휘자가 적극적으로 재능 기부를 해주시면서 알토와 소프라노로 나눠 화음을 이룰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이에 따라 자발적인 참여 의지를 밝히는 사람도 하나둘 늘면서 하나의 합창단이 구성됐다.”고 말했다.
휠체어나 목발에 의지해 이동하려면 장애인 전용 차량을 타야 할 정도로 한번 오기도 번거로운 데다 오랜 시간 착석하기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모니’에 푹 빠진 여성장애인들은 힘든 내색 하나 없이 성실하게 참여했다. 항상 받는 것에만 익숙했던 이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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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서비스를 받는 데 익숙한 여성장애인들은 합창단을 통해 하모니로 마음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
우연히 자선공연 요청으로 무대에 서게 되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알게 됐다는 유영희 대표는 “여성 장애인이라고 하면 ‘너무 약해’ ‘끊임없이 뭔가를 도와줘야할 것 같다’는 인식이 강했다.”며 “첫 무대에 섰을 때 ‘나도 누군가에게 하모니로서 감동을 줄 수 있구나’라는 자존감을 맛볼 수 있었다. 박수 갈채와 함성에 단원들도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귀띔했다.
이렇게 자신감을 얻은 뒤 2010년 첫 출전한 전국장애인합창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는 쾌거도 맛봤다. 이어 ‘2012 울산 전국합창대회’ 인기상, ‘2012 전국태백합창대회’ 은상, ‘전국장애인협회’ 동상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지체장애·뇌병변·시각·청각·지적장애 등을 겪는 45명의 인원이 한 곡을 배우는 데 길게는 수 개월이 걸릴 때도 비일비재했다. 왕복 15시간이 넘는 이동시간을 참아가며 빠듯한 일정 속에 리허설도 없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역경을 극복하고 받은 상들이었기에 이들에게 상패는 자신을 뛰어 넘는 도전의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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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초청 공연이 부쩍 늘었다는 말을 듣고 기쁨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전북여성장애인합창단의 모습. |
1993년 장루 장애(배변기능 장애로 직장암이나 대장암 등의 악성종양이 원인) 판정을 받은 오임선(59) 씨 또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도전자 중 한 명이다. 후천적 장애를 앓게 된 그는 “자녀들이 어린 상황에서 장애를 받아들이기까지 많이 힘들었다.”며 “밝았던 성격이 어느 순간 우울하고, 소심하게 변하더라. 그래서 거의 집안에만 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쉬는 시간에도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늘 기분이 좋다고 했다. 지인을 통해 합창단에 합류하면서 그는 “저도 모르게 마음에 담아뒀던 우울한 것들을 리듬에 맞춰 털어버리려고 노력하게 됐다.”며 “작은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마음을 나누는 하모니를 이룰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합창단에 들어오기 전까지 어두운 그늘 속에서만 살았다는 신정애(61·지체장애)씨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무수한 편견 속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지나가는 말로 툭툭 내 뱉는 동네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 속 좁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화도 내지 못하고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다보니 마음의 열병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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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휠체어를 탄 여성 장애인들은 교실 뒤편에 나란히 앉아 열심히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
집에서도 마땅한 대화 상대도 없다보니 외로움은 커져만 갔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어도 경제적인 이유로 포기하는 일도 많았다. 거동이 불편해 외출도 쉽지 않았다. 노래는 오래 전부터 배워보고 싶었던 일들 중에 하나였다고 말한 신 씨는 “노래를 부르면서 저는 한 줄기 빛을 찾은 셈”이라며 “노래하러 전국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다. 요즘처럼 행복한 적이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소프라노 솔로 파트를 맡으며 어딜 가나 주목을 한 몸에 받는다는 이정숙(51·소아마비) 씨는 “혼자서 외로움을 달래려 취미삼아 흥얼거리던 노래로 무대에 설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결혼 후에도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통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는 그는 “우연한 기회에 저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고난과 역경의 나날도 많았지만 노래를 부르는 순간 만큼은 몸도 마음도 자유롭고 행복하다.”며 “무엇보다 사회구성원으로서 뭔가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장애가 있다고 움츠려 들지 말고 밖으로 나와 함께 노래했으면 좋겠다.”라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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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전국태백합창대회’ 은상을 수상한 뒤 기념 사진을 찍은 전북여성장애인합창단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전북여성장애인합창단) |
중간에 해체 위기도 있었지만 다행히 지난해부터는 한국장애인재단에서 지원해줘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덕분에 합창단 결성 뒤 꿈에 그리던 첫 콘서트도 열 수 있게 됐다.
유영희 대표는 “올해는 자선공연 위주로 무대에 오를 것”이라며 “그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전국대회에 출전하면서 스스로 자존감을 찾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우리의 재능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일에 주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불러만 주신다면 어디든지 갈 준비가 돼 있다며 활짝 웃는 이들의 얼굴이 참 해맑아 보였다. 아름다운 하모니로 아픔을 극복한 이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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