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에 놓인 피아노 한 대, 문화를 부활시키다 | news | 2013-07-25 |
쇠퇴해가던 전주동문거리 ‘문화예술거리’ 변모…빈 점포 창작공간 조성 등 노력 결실
1970년대 전주 문화를 대표했던 동문거리가 40년 만에 ‘문화예술거리’로 변신해 화제다. 오래된 콩나물 국밥집 건물은 예술작가들을 위한 ‘창작지원센터’로 변신하는가 하면, 옹기종기 작은 가게들은 ‘문화센터’로 재탄생했다. 예전의 예술 향기가 다시 솔솔 풍겨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발길이 뜸하던 20~30대 청년들에게도 인기 명소가 됐다.
동문예술거리 조성 사업의 거점공간인 전주시민놀이터를 비롯해 창작지원센터 1·2호는 견학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 최근에는 지자체와 시민단체에서 벤치마킹을 하려는 움직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전주동문거리예술지원단 이수영 기획팀장과 함께 새로 조성된 동문예술거리 곳곳을 둘러봤다.
전주한옥마을과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한 동문예술거리. 일제시대 성곽이 철거되고, 횡관도로와 종관도로가 놓인 뒤 일본인들이 토지를 싸게 구입해 성 안으로 들어오면서 전주를 대표하는 상권을 이룬 곳이다. ‘동문예술거리’라고 불리는 이 주변은 도심구획 정리가 되기 전인 1970~1980년대만 해도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활력이 넘치던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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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과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한 동문예술 사거리의 상징물. |
홍지서림과 헌책방은 청년문학의 산실이었고, 각 건물의 옥탑방은 가난한 화가들의 꿈이 익어가던 아지트였으며, 클래식을 틀어주던 음악 감상실은 청춘 남녀들의 데이트코스였다. 1980년대 후반 토지구획 정리 사업과 함께 학교와 병원이 이전되면서 헌 책방과 미술학원들만이 그 명맥을 유지했다. 2000년이 넘어가면서는 244곳의 점포 가운데 빈 점포가 61개로 상권이 크게 쇠퇴했다.
변화의 씨앗은 2006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1월, 문화체육관광부의 ‘생활공간 문화적 개선 사업’에 선정되면서부터다. 이 사업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일정 공간에 대한 구조·형태·디자인·질감 등의 개선을 통해 공간의 심미적 쾌적성을 높이기 위한 사업이다. 동문거리는 외형을 새롭게 꾸미는 대신 기존 거리에 미술을 입히는 식으로 진행됐다.
전주시는 이와 더불어 동문거리를 비롯한 4대문 내외 구도심 활성화를 위해 ‘구도심 활성화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저렴한 임대료 등을 앞세워 서점과 인쇄소, 개인 창작 스튜디오 등을 불러 모아 문화와 창작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정책도 펼쳤다. 이어 2012년 예술거리 조성 사업으로 동문거리가 ‘동문예술거리’로 지정되면서 지역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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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예술가가 거리의 악사들을 위해 기증한 피아노가 창작지원센터 1호 입구에 마련돼 있다.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연주하며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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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지원센터 1호는 동문 문화예술의 정보 플래폼이자 젊은 작가의 활동을 지원하는 전시 공간이다. 젊은 작가들이 미술평론가를 초청해 강의를 듣고 있다. |
동행한 이수영 기획팀장은 동문거리 입구라 불리는 옛 전북은행 본점과 남문화방 사이로 필자를 안내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동문사거리 입구의 상징물이었다.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는 대표적인 명소다. 오른편으로는 지난해 ‘동문예술거리’로 지정되면서 탄생한 창작지원센터 1호가 눈에 띄었다. 입구에는 시민들이 24시간 연주할 수 있도록 피아노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 팀장은 “전주동문예술거리를 찾는 거리의 악사들을 위해 지역 예술가가 기증한 피아노”라며 “공개된 공간에서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악기를 연주하는 예술가로 변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끄는 장소”라고 소개했다. 최근에는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주말에는 미니 콘서트 장으로 변모하기도 하고, 특별한 이벤트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는 프러포즈 명소로도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따다다단~~~~따다다단~~~~”
서울에서 온 관광객 최현(32) 씨가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하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리듬에 몸을 맡기며 흔들기도 하고, 신기한 듯 사진 촬영을 하는 이들로 거리는 어느새 북새통을 이뤘다. 연주를 마치자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중학교 졸업 후 오랜만에 피아노를 연주해봤다는 최 씨는 “거리에 피아노가 덩그러니 놓여 있어 호기심에 건반을 눌러봤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들지 몰랐다.”며 “거리 곳곳에서 예술작품도 감상할 수 있고, 악기도 연주할 수 있어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간다.”고 수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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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예술거리 곳곳에는 예술작품들이 전시돼 있어 루할 틈이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지난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은 젊은 작가 20명의 땀이 베인 예술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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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전주 문화를 대표했던 동문거리가 40년 만에 주민과 지역작가들의 노력으로 문화예술거리의 명성을 되찾았다. |
창작지원센터 1호는 동문 문화예술의 정보 플래폼이자 젊은 작가의 활동을 지원하는 전시 공간이다. 미술을 공부하는 고등학생과 대학을 갓 졸업한 20~30대 예비 작가들이 주로 이용한다. 전시 특성에 따라 최소 3주 전에 대관 문의를 하면 기본 전시기간 2주동안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청년 작가 20명이 전시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술학을 전공한 이들은 최근 학과가 축소되거나 폐지되면서 설 자리를 잃은 예비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현장에 있던 김지현(28) 씨는 “작가로 등단하고 싶어도 작품을 전시할 공간조차 마련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며 “전시 공간을 무료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작지원센터 1호는 청년작가들에게 구세주 같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창작지원센터 1호가 ‘예술의 전당’이라면 창작지원센터 2호는 젊음과 열정이 넘치는 ‘홍대 거리’라고 할 수 있다. 충경로 지하에 위치한 센터 2호는 지난해 10월 ‘클럽데이’를 필두로 공연 지원이 시작됐다. 매월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주말 기획 공연을 제외하면 평일에는 공연 팀의 연습공간으로 활용된다. 다만, 대관비가 유료로 책정돼 있어 최소 1주일 전에 예약을 해야 이용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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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최대 서점이었던 홍지서림은 50여 년째 문학청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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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예술거리 중심에는 국내 최장수 다방인 삼양다방이 62년째 성업 중이다. |
거리의 중심은 역시 ‘홍지서림’과 ‘삼양다방’이다. 전북 최대 서점이었던 홍지는 50여 년째 문학청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국내 최장수 다방인 삼양다방은 62년째 성업 중이다. 동문예술거리 곳곳에는 예술작품들이 전시돼 지루할 틈이 없었다. 왱이콩나물국밥집 벽면에는 모나리자가 반쯤 얼굴을 내밀고 있고, 동문다방 벽면에는 1970년대 모습이 낡은 사진처럼 그려져있다.
옆 건물에는 가슴이 뻥 뚫린 한 남자가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가 하면 노란 호박엿처럼 보이는 실타래가 건물 벽면에 늘어져 있기도 하다. 풍전콩나물국밥집 벽에는 장미·해바라기 등 온갖 꽃들이 다 모여있다. 거리 곳곳에는 광나무 한 그루씩 심어진 폐드럼통이 화려한 그림을 입고 서 있었다. 이 모든 것은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은 젊은 작가 20명의 땀이 베인 미술작품이다. 동문거리 전체가 미술작품 전시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수영 기획팀장은 “가로 디자인 사업 후, 빈 점포 임대도 15%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콩나물국밥집이 모여 잇는 국밥 거리에는 ‘콩’이라고 쓰인 간판이 유독 눈에 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국밥 집이 아닌 지역 미술가들의 작업 전시 공간인 ‘두레 공간 콩’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작가들이 출장 중’이라는 팻말이 눈에 띈다. 전주동문예술거리추진단 이수영 기획팀장은 “두레공간 콩은 대관료 부담을 느낀 작가들이 직접 만든 공간”이라며 “젊은 작가들이 싹을 틔울 수 있게 도움이 되겠다는 의미로 ‘콩’이라 불린다. 특히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예술가들의 발길이 잦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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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연중 개방하는 생활예술 거점공간인 ‘전주시민놀이터’의 외관. |
동문사거리 서쪽에는 건물 옥탑방 등에서 창작 활동을 하던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동문문화센터가 있다. 이 거리에는 빈 점포를 임차해 작가들에게 재임대하는 ‘창작스튜디오 거리’도 조성돼. 작지만 아기자기한 공방부터 미니 갤러리까지 아기자기한 공간들이 많았다.
이처럼 동문예술거리가 활성화되자 주변 상인들도 하나둘 잃었던 웃음을 되찾고 있다. 이 거리에서 30년 넘게 인쇄업을 하던 최 모(59) 씨는 “동문거리 벽면에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할 때만 해도 과연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끌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며 “한낮에도 한산했던 거리가 이제는 피아노 소리로 넘쳐나고, 젊은 작가들이 작품을 전시하면서 예술거리의 본모습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한편, 동문사거리에서 길을 건너 3분 정도 걸으면 어른들을 위해 마련된 ‘시민놀이터’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전국 최초로 24시간 연중 개방하는 생활예술거점공간으로, 시민이 직접 참여해 운영하는 시민참여 운영모델을 제시해 주목받기도 했다. 전주시는 앞으로 역 예술가와 시민들의 예술 활동을 적극 지원해 동문예술거리를 문화예술 향유 거리로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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