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 할머니 또 언제 와요?”…책 읽어주는 어르신들 | news | 2013-0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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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문화봉사단 ‘북북’
“안녕하세요, 우리는 책 읽어주는 실버문화봉사단 ‘북북’이예요. 오늘 여러분과 함께 2권의 재미있는 동화책을 읽어볼 거예요. (책 앞표지를 가리키며) 이 책에 나와 있는 앵무새가 몇 마리인지 함께 세어 볼까요?”
지난 13일, 오후 2시 전주 효자문화의집 문화창작교실 문틈 사이로 어르신들의 맛깔스런 동화책 읽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20명의 어르신들은 다음 달 어린이집에서 있을 동화 공연 ‘앵무새 이야기’의 리허설로 모두들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들은 책 읽어주는 실버문화봉사단 ‘북북(Book-Book)’ 회원들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한국문화복지협의회가 주최하는 ‘북북’ 봉사단은 2009년부터 본격적인 공연을 시작해 그간 2,000회가 넘는 공연 실적을 쌓은 베테랑들이다. ‘책 읽어주는 봉사단’을 통해 제2의 행복 인생을 살고 있는 어르신들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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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3일, 전주 효자문화의집 문화창작교실에서는 책 읽어주는 실버문화봉사단 ‘북북’ 단원들의 공연 리허설이 한창이다. |
강현정 전주 효자문화의집 관장은 “평균 수명 100세 시대를 맞이했지만, 그간 어르신들의 문화 욕구를 채워줄 프로그램이 없었다.”며 “어르신들이 갖고 있는 연륜과 노하우를 활용해 어린이들과 세대 간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고자 실버문화봉사단을 기획하게 됐다.”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단원들은 만 60세 이상 남녀 어르신을 대상으로 면접을 통해 봉사활동에 열정을 가진 20명이 선발됐다. 선발된 어르신들은 동화구연 전문 강사를 통해 발성 연습, 책 읽어주는 자세와 요령 등을 교육받았다. 전주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아동센터와 유치원, 노인복지시설 등 어디든 달려가 말벗이 되어주며 책을 읽어줬다.
‘북북’ 봉사단이 다른 공연단과 차별화되는 점은 지역의 숨겨진 보물 같은 이야기를 어르신들이 직접 발굴해 제작한다는 것이다. 2009년 1년간의 공연을 통해 자신감을 얻는 어르신들은 이듬해부터 잊혀졌던 마을이야기를 중심으로 창작 동화 작품 만들기에 도전했다.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나이 지긋한 70~80대 어르신들을 찾아가 구술로 마을 이야기를 듣고 녹취해 책으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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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년간 실버문화봉사단 ‘북북’의 회원들이 만든 창작동화들. 벌써 10권이 넘는다. |
지난해에는 10가지 테마가 담긴 전래동화를 직접 각색해 그림자 연극으로 발전시켰다. 강현정 관장은 “단순히 책만 읽어주는 것에 한계를 느낀 어르신들이 자발적인 아이디어로 그림자 연극을 기획했다.”며 “직접 주인공 인형을 만들고, 무대 설치까지 하는 등 열정이 대단했다. 그림자 뒤에서 다양한 목소리로 동화를 읽어주니 반응도 무척이나 뜨거워 공연 문의가 쇄도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올해는 베테랑 봉사단 10명에 신입 봉사단 20명이 더해져 총 30명이 활동 중이다. 베테랑 봉사단들은 지역예술작가 및 연극 강사와 함께 대본을 만들어 전문적인 그림자 연극을 준비 중다. 연습을 마치고 나온 4년차 봉사단원 박해년(68·여) 씨는 “무료한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 참여했다.”며 “동화 구연 연습을 하고, 각본을 짜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다. 특히 ‘동화 구연 할머니 언제 와요?’라며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매년 회가 거듭될수록 성취감이 크다고 말한 베테랑 봉사단 막내 정미라(60·여) 씨도 “누군가 앞에 선다는 것이 제겐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동화 공연을 통해 제 스스로 벽을 깨고 뭐든지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손자 같은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림자극을 열심히 경청하는 모습을 볼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다. 아이들의 밝은 미소 덕분에 하루하루 나이를 거꾸로 먹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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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들이 직접 기획해 만든 그림자극의 한 장면. (사진=전주효자문화의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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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극을 보고 난 아이들이 최고였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사진=전주효자문화의집) |
지난 6월부터 신입 단원으로 활동 중인 어르신들의 열정 또한 베테랑 봉사단 못지않았다. 2권의 동화책을 토씨 한 자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외워온 김관웅(73·남) 씨는 “아이들과 교류하며 인생 2막을 보람차게 보내고 싶었다. 연습하러 오는 금요일이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설렌다”며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었다.
책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다는 이필로(69·남) 씨는 “빠른 것에 익숙해져버린 아이들이 독서가 주는 즐거움을 놓치고 지나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책 읽어주는 봉사단을 통해 저 또한 다양한 책을 읽으니 젊은 에너지가 샘 솟는 것 같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무척이나 들떠 있다.”고 말했다.
동화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어느새 우울한 생각도 없어졌다는 진혜대(72·여) 씨 역시 “우리 나이 때는 집에만 있으면 아픈 곳만 늘어난다.”며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책을 읽고, 노래도 부르다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솟는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불러만 준다면 어디든 달려가 봉사해야겠다는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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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6월 신입단원으로 선발된 어르신들이 공연 리허설을 마치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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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입회원들이 다음 달부터 이어질 본격적인 현장 공연에 들뜬 마음을 표시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4년째 동화구연 강사로 활동 중인 권옥(49) 씨는 “어르신들의 열정에 저 또한 한시도 게으름이 피울 수가 없다.”며 “리허설 때는 쑥스러워하다가도 현장에 나가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전문가 못지않은 순발력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볼 때면 제가 더 뿌듯하다. 벌써 4년 째 활동하는 어르신만 8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날이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면서 전주 지역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초청 공연을 요청할 정도가 됐다. 전주효자문화의집 ‘북북’ 봉사단은 매년 4월 단원을 모집한다. 만 60세 이상 문화 봉사활동에 재능이 있거나 교육을 통해 봉사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한편, 정부는 어르신들이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어르신들이 행복한 인생 2막을 위해 문화예산 사업을 지난해 20억 원에서 올해 47억 3천만 원으로 늘리고 어르신들이 자립해 지속적으로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고령화 시대를 맞아 어르신들에게 바람직한 사회적 역할 정립 및 자아 실현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어르신들이 주체적인 문화 활동을 통해 인생의 황금기를 누릴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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