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페스티벌에서 현대 아리랑 부른 카자흐스탄 김겐나지씨 가족]

옛 소련에 강제 이주된 고려인 2세, 기타·보컬·작곡… 온 가족 음악활동
각자 음악인생 살다 5년만에 한자리 "한국서 같은무대 서는 일 꿈 같아요"

김겐나지(67)씨는 사진을 찍자는 소리에 대뜸 기타부터 꺼내 들었다. 김씨가 기타 선율에 맞춰 직접 개사한 '현대 아리랑'을 부르자 아내 문공자(66)씨와 장녀 엘레나(36)씨, 차남 세르게이(26)씨도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면서 화려한 아침 나라를 알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이들은 카자흐스탄에서 유일한 고려인 예술 가족이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음대(音大)에서 기타를 가르치는 김씨를 비롯해 카자흐스탄 최고의 영예인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은 보컬리스트 문씨, 재즈 보컬리스트 김엘레나씨, 작곡가인 김세르게이씨 등, 자동차 엔지니어인 장남을 제외하고는 모든 가족이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가족들은 5일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 한민족 문화축제 '2013 코리안페스티벌'에서 함께 무대에 올랐다.

김씨와 문씨는 1937년 옛 소련이 벌인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온 고려인 2세다. 세 살 때부터 아버지가 부르던 한국 민요를 따라부르며 동네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문씨와는 달리, 김씨는 대학 1학년 때까지 한 번도 음악을 접하지 않은 채 살았다. 김씨는 권투를 전공하던 타슈켄트 체육대학 1학년 때, 기숙사 로비에 모여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동기들의 모습을 보고 음악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했다. "기타 선율이 한민족의 한(恨)을 담은 소리 같았어요."

김씨는 기타를 잡은 지 1년 만에 전도유망한 체육 교사의 길을 그만두고 기타 독학에 뛰어들었다. 연습에 몰두한 지 4년 만에 타슈켄트의 한국인 앙상블 '가야금'의 기타리스트로 데뷔했다. 카자흐스탄에서 성공한 연주가로 살던 김씨가 '한국에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1978년. "우연히 '가수 조용필'의 카세트테이프를 들었는데, 그 목소리에 담긴 한(恨)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꼭 한번 만나고 싶었지요." 김씨는 91년 옛 소련이 무너지자마자 한국을 찾아 조용필과 함께 공연하는 꿈을 이뤘다. "내 기타 연주에 맞춰 조용필씨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는데 정말 가슴이 벅찼습니다." 현재는 알마티대 교수로 바우르잔, 쟉스벡 등 카자흐스탄 최고의 기타리스트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씨 부부의 '음악 혈통'을 이어받은 자녀들도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다. 엘레나씨는 카자흐스탄 알마티 예술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현재 스웨덴에서 재즈보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이소라의 '사랑'이에요. 한국어로 부르는데도 스웨덴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지요." 막내 세르게이씨는 13세 때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해 단 1년 만에 '쇼팽'의 피아노곡 첫 소절을 따라 자작곡을 만들었다. 현재는 오스트리아 '그라츠연극음악예술대'에서 작곡 공부를 한다.

"한자리에 가족 모두 모이는 데만 5년 걸렸어요. 하지만 이번에 10월의 모든 일정을 미루고 한국에 왔습니다. 고국 땅에서 가족이 함께 노래할 수 있다니 꿈만 같아요."